<박민의 시론>대장동 ‘그분’과 사탕 한 알

2022. 10. 31.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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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 논설위원

‘그분 600억 챙겨’ 녹취록에

‘유동규 윗선’ 진술 나왔는데

文 검찰 축소 수사로 오리무중

尹정부 들어 손절 당한 일당들

민간 폭리 설계·지분 법정진술

거짓으로 진실 끝까지 못 숨겨

대장동 의혹의 실체적 진실 규명은 ‘그분’을 밝히는 데 달려 있다. 통상의 권력형 비리 사건에서 ‘몸통’이나 ‘윗선’으로 표현되는 존재다. 대장동 일당으로 불리는 민간업자들이 1조 원대의 폭리를 취하도록 개발 계획을 확정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 그 대가로 민간업자가 얻은 폭리의 상당 부분을 넘겨받아 은닉했거나 추후 넘겨받기로 한 사람이다. 최근 ‘그분’에 대한 진술과 언급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

‘그분’이 처음 등장한 것은 대장동 일당 정영학 회계사가 지난해 9월 검찰에 제출한 녹취록에서다. 김만배 씨가 “천화동인 1호 절반은 ‘그분’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 대장동 일당이 배당으로 챙긴 수입은 4041억 원. 김만배가 대주주인 화천대유가 1% 지분으로 577억 원, 천화동인 1∼7호가 6% 지분으로 3464억 원을 챙겼다. 녹취록대로라면 천화동인 1호 수입 1208억 원의 절반인 604억 원은 ‘그분’ 것이다. 녹취록의 신빙성은 녹취록의 다른 진술로 뒷받침된다. 2014년 11월 5일 자에서 김만배는 남욱 변호사와 정영학에게 “4000억짜리 도둑질하는데 완벽하게 하자. 이거 문제 되면 게이트 수준이 아니라 대한민국 도배할 거다”고 말했다. 대장동 공모지침서가 배포된 것이 2015년 2월 13일이니 김만배는 공모 3개월여 전에 사업 수주를 확신한 것은 물론 예상 수입 규모까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분’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녹취록 제출 후 ‘그분’이 누구인지에 대한 진술들도 잇따랐다. 남욱은 언론 인터뷰에서 “김만배 씨가 (연하의) 유동규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에게 ‘그분’이라고 지칭할 수 있나”는 질문에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분’은 최소한 유동규 윗선이라고 밝힌 것이다. 더구나 김만배는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그분은 최선의 행정을 한 거고, 저희는 그분의 행정지침과 성남시 정책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문맥상 ‘그분’은 당시 성남시장이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다. ‘그분’에 대해 몇 차례 말을 바꾸던 김만배가 굳이 ‘그분’이란 표현을 사용한 것은 ‘몸통 압박용’이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 수사가 진행될수록 ‘그분’은 오리무중에 빠져들었다. 검찰은 김만배가 배당금 중 700억 원을 유동규에게 약정했고 그 일부로 5억 원을 건넸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특혜 주범 유동규, 로비 주범 김만배, 설계 주범 남욱’으로 사건을 마무리하겠다는 의중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성남시청 늑장 압수수색, 유동규 휴대전화 방치 등으로 축소 수사 비판이 거세지면서 의혹은 증폭됐다. 그런 가운데 윤석열 정부에서 검찰이 대장동 의혹에 대한 전면 재수사에 들어갔고 유동규와 남욱은 자신들을 손절하려는 ‘그분’에 대해 배신감을 느껴 새로운 사실을 진술하기 시작했다. 유동규는 검찰에서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8억4700만 원 대선 경선자금 수수 사실을 진술했다. 이어 지난 24일 재판에서 ‘민간업자 이익이 늘어난 것은 당시 시장인 이 대표가 정한 것으로 제가 독단적으로 결정한 일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사업 계획 확정에 결정적 역할을 한 ‘그분’이 이 대표임을 처음 지적한 것이다.

남욱은 28일 법정에서 “김만배 씨가 2015년 ‘(대장동 관련) 남욱 지분은 25%, 김만배 지분은 12.5%, 나머지는 이재명 성남시장 측 지분’이라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대장동 사건 재판에서 ‘이재명 측 지분’이 언급된 것도 처음이다. 당시 함께 있었던 정영학은 이날 법정에서는 “기억이 없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민간업자들이 올린 배당 수입 4041억 원 중 남욱이 대주주인 천화동인 4호의 수입은 1007억 원(24.9%)으로 녹취록과 일치한다.

유동규 입을 막으려던 김용은 구속됐고 정진상 민주당 대표 정무조정실장도 구속 위기에 처했다. 이 대표는 김용이 측근이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못한 채 ‘나는 사탕 하나 받은 것도 없습니다’는 말로 또 한 번 손절을 시도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유동규와 남욱의 진술이 김만배와 정영학의 입을 열게 하고 끝내 김용과 정진상을 흔들 것이다. “죄지었으면 다 밝혀진다. 흔적이 남을 것이니까”는 유동규의 말처럼 인간의 힘으로 끝까지 진실을 가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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