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코로나 3년에 가슴 아픈 이태원 재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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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반복되는 무미건조한 일상에서 작은 이벤트, 축제나 파티 등은 지루한 삶에 작은 쉼표가 된다.
그날을 위한 장소·음식·의상을 준비하고 같이할 친구들과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는 과정에서 기대감은 고조되고 정작 당일보다 더 큰 즐거움을 느끼기도 한다.
특히나 즐겁고 행복한 표정을 파악하는 것이 슬프거나 화가 난 표정에 비해 더욱 어렵다.
코로나19로부터 벗어났다는 해방감이 더해져서 10월의 마지막 주말 밤에 대한 기대감도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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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매일 반복되는 무미건조한 일상에서 작은 이벤트, 축제나 파티 등은 지루한 삶에 작은 쉼표가 된다. 그날을 위한 장소·음식·의상을 준비하고 같이할 친구들과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는 과정에서 기대감은 고조되고 정작 당일보다 더 큰 즐거움을 느끼기도 한다. 이런 작은 이벤트들을 만들어 즐길 수 있는 것도 건조한 삶을 윤택하게 만들 수 있는 지혜라는 생각을 해왔다. 그러나 이런 평소 생각에도 불구하고 지난 29일 밤 서울 이태원에서 핼러윈 축제 기간에 발생한 참사에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다.
3년 만에 마스크를 벗고 축제다운 축제를 할 수 있게 됐다는 기대감은 그간 억눌러 왔던 사회적 관계 욕구를 자극했다. 이제까지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사회적 고립과 격리에 익숙해진 기간이었다. 마스크를 쓰고서는 상대의 표정을 쉽게 알아채기 어렵다. 특히나 즐겁고 행복한 표정을 파악하는 것이 슬프거나 화가 난 표정에 비해 더욱 어렵다. 기분 좋을 때 짓는 웃음은 눈보다는 입 주변의 근육을 더 많이 움직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마스크 사회는 신체적·물리적 답답함에 더해 우리 사회 전체를 답답하고 가라앉은 암울한 분위기로 몰아갔다. 메타버스 등 SNS의 시각적 교류만으로는 인간의 사회적 욕구가 충분히 채워지기 어렵다. 인간은 다른 이들과 직접 만나고 부딪치며 생활하도록 오랜 기간 진화해 온 지극히 사회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제 차차 마스크를 벗기 시작하면서 여러 사람, 군중이 모일 수 있는 축제는 인간 본유의 흥분감을 자극하기 충분하다. 특히나 핼러윈은 평상시와는 다른 분장을 하고 가면을 씀으로써 심리적으로 억제하고 있었던 자신에게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아주 소소한 일탈의 기회였을 것이다. 코로나19로부터 벗어났다는 해방감이 더해져서 10월의 마지막 주말 밤에 대한 기대감도 커졌다.
새벽을 향해 어둠이 밀려오면서 친밀 욕구는 더욱 커지게 된다. 실제로, 제한된 공간에서 모르는 사람들을 모아 놓고 조명을 조절한 실험 결과가 있다. 조명을 밝게 한 경우보다 어둡게 한 경우에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걸거나 가까이 다가가는 행동이 더 빈번하게 나타났다. 이렇게 어둠은 더욱 가까이서 친밀감을 나누려는 욕구를 자극한다.
거기에 많은 군중이 밀집하면 상황은 또 달라진다. 군중의 보이지 않는 힘과 에너지가 만들어진다. 군중이 많으면 많을수록 감정은 더욱 격렬해져, 이성을 마비시키는 흥분감으로 몰아가는 에너지를 갖게 된다. 이 모든 요소가 아마도 그날 밤 그곳으로 젊은이들이 모이게 했고, 자정이 가까워지면서 수많은 군중이 모처럼의 흥분된 축제 분위기를 만끽하게 됐을 게다. 게다가 매우 좁은 골목길에 많은 사람이 동시에 몰리면서 2006년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에서 발생한 압사와 같은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그 누구의 잘못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사고였다. 모처럼 감염병 유행 이전의 일상을 찾고 싶고, 모처럼의 축제를 즐기고 싶은 평범한 바람이었다. 군중 속에서 지친 자신을 달래고 싶은 작은 소망이었을 것이다. 그 작은 바람도 이렇게까지 처참한 결과로 이어지는 시대를 살아가는 현실을 탓해야 하나. 절대 잊을 수 없는 코로나 3년째의 가슴 아픈 가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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