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곡물 협정 파기에 선박 218척 발묶여…튀르키예 설득 나서
러시아 “흑해 함대 공격 사태 규명이 우선”
내부선 “협정 허점 때문에 크림대교 폭파 발생”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 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면서 곡물 가격 폭등 우려가 높아지는 가운데 튀르키예(터키)와 유엔이 협정 파기 번복을 위해 러시아 설득에 나섰다.
튀르키예 국방부는 30일(현지시각) 훌루시 아카르 국방장관이 곡물 수출 협정을 살리기 위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등 관련 당사국들과 접촉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보도했다. 이들은 이날 트위터에 올린 성명을 통해 아카르 장관이 관련국들과 접촉했다며 “곡물 수출 협정은 전체 인류를 위한 것이며 현재의 위기는 선의와 대화를 통해 해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튀르키예의 한 관계자는 “모든 대화 수준에서 러시아와 전화 외교가 진행되고 있다”며 아직 희망이 있다고 전했다.
유엔과 유럽연합(EU) 등도 러시아에 협정 파기 번복 등 대응책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주제프 보렐 유럽연합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는 트위터를 통해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과 전화 통화를 하고 흑해 협정 및 우크라이나의 곡물·비료 수출을 보장하기 위한 조처의 조율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교차관도 조만간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튀르키예, 유엔과 접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고 <타스> 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루덴코 차관은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흑해 함대에 대한 공격 상황이 분명히 규명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이 문제를 논의한 뒤에야 향후 곡물 협정 관련 조처에 대한 논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잔인한 행동(흑해 함대 공격)은 기존의 모든 합의를 깨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29일 러시아 국방부는 성명을 내어 “키이우 정권이 러시아 흑해 함대와 곡물 통로 보안 관련 민간 선박에 테러 공격을 가한 점을 고려해, 농산물 수출 협정 참여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지난 7월 22일 유엔과 튀르키예를 포함한 4자 공동 감독 아래 오데사 등 흑해 연안의 우크라이나 3개 항구를 통한 곡물 수출을 재개하기로 합의했고, 8월 1일부터 곡물 수출이 재개됐다.
러시아가 협정 파기를 선언한 이후 곧바로 곡물 수출 선박들의 출항이 막혔다고 <에이피>(AP) 통신이 전했다. 우크라이나 인프라부는 곡물과 관련된 선박 218척의 발이 묶였다고 밝혔다. 인프라부는 현재 22척이 곡물을 실은 채 항구에 머물고 있고, 95척은 이미 항구를 떠났으며, 101척은 흑해를 빠져나가기 위한 검사를 기다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올렉산드르 쿠브라코우 인프라부 장관은 “발이 묶인 선박 중에는 유엔의 식량 지원 계획에 따라 에티오피아로 밀 4만t을 싣고 가던 선박도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흑대 함대에 대한 공격을 협정 파기의 직접 이유로 거론했지만, 내부적으로는 지난 8일 벌어진 크림대교 폭파 사건이 이 협정의 허점 때문에 발생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브즈글랴드> 등 러시아 언론들은 최근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수사 결과를 인용해, 지난 8일 크림반도와 러시아를 잇는 크림대교 폭파 사건은 우크라이나의 오데사에서 폭발물 등 2만t의 화물을 싣고 출발한 선박이 불가리아에 도착한 뒤 여기서 출발한 선박인 것처럼 위장한 채 흑해를 가로질러 조지아까지 갔다고 보도했다. 폭발물은 조지아에서 육로를 통해 유라시아경제연합(EAEU) 회원국인 아르메니아를 거치면서 별다른 검사 없이 러시아 남부로 유입됐다고 언론들은 전했다.
이 선박이 폭발물을 운송할 수 있었던 것은 유엔 등 4자가 튀르키예에 설치한 곡물 수출 ‘공동조정센터’는 흑해를 빠져나가는 선박에 대해서만 검사를 실시하기 때문이라고 러시아 언론들은 지적했다. 곡물 협정에 따라 오데사 항구에서 출발하는 선박은 우크라이나 당국이 통제하기 때문에, 흑해를 빠져나가지만 않으면 아무런 제약 없이 무기 등을 주변국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를 계기로 러시아 내부에서는 곡물 협정 파기 또는 수정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 때문에, 러시아 정부가 곡물 협정에 다시 참여하더라도 크림반도에 대한 공격 중단과 함께 우크라이나 흑해 항구에 대한 공동 통제를 요구하고 나설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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