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제재 속 자동차산업 지탱 안간힘…"수십년 낙후에 수요 급감"
기사내용 요약
오토매틱, ABS, ECU, 사륜구동 기술 자체 개발 시도
수십년 낙후 기술로 생산한 차량에 대한 수요도 급감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서방의 제재로 큰 타격을 받은 러시아의 자동차 산업이 다시 가동되기 시작했지만 생산량도 적고 기술적으로도 낙후해 러시아 경제 전반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서방의 제재로 부품 공급이 중단되면서 러시아 자동차 공장들이 차례로 문을 닫았었다. 지난 5월의 자동차 생산량은 지난해 5월 대비 97%가 줄었다.
일부 자동차 공장들이 재가동되기 시작했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라다 자동차를 생산하는 아프토바즈사는 내년에 50만대를 생산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생산량은 40만대였다.
이 회사에서 생산하는 차는 제재 이전 모델과는 천차만별이다. 자동차 산업에 표준이 된 에어백도 없고 브레이크 잠금 방지 장치도 없으며 전자식 제어 기술도 없다.
라다는 자체적으로 기술을 개발하거나 해외에서 간신히 부품을 들여와 부족한 대목을 채우는 중이다. 2024년부터 위의 표준 장비들을 갖춘 차량을 생산할 계획이다.
그러나 막심 소콜로프 아프토바즈사 사장은 타스 통신에 "오토매틱, 4륜구동, 첨단 엔진 등도 가능하겠지만 많은 투자와 비용이 든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자동차 산업은 소련 붕괴 이후 정부가 가장 집중 투자해온 분야다. 그러나 제재 속에서 수십년 동안 첨단 부품을 제공해온 서방 회사들이 대부분 철수했다. 이에 따라 러시아 자동차 회사들은 수 십 년 뒤진 기술의 차량을 생산하고 있다.
러시아의 오토비지니스리뷰 책임자 에프게니 에스코프는 한 인터뷰에서 "정부 발표만 들으면 자동차 산업이 재건된다지만 확실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같은 생산 차질은 자동차 산업을 넘어 전 산업 분야에서 볼 수 있다. 런던 국제전략연구소(IISS)의 마리아 샤기나 연구원은 "산업 충격이 다른 분야에도 똑같이 미치고 있다. 기술이 뒤쳐지고 품질도 낮은데 생산량도 부족한 상태"라고 말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제재로 인한 피해를 인정하면서도 러시아 경제가 대처할 수 있고 정부 뒷받침으로 더 강력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러시아 정부는 지난 9개월 동안 재정 수입이 1980억달러가 늘어나 올해 역대 최대에 달할 예정인 덕분에 제재가 러시아 국민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은 내년에 러시아 경제가 크게 침체될 것으로 전망한다.
반도체칩, 유정 채굴장비가 부족해 국내 산업이 발목이 잡혀 있다. 유가가 떨어져 정부 수입도 줄고 있다. 지난 달 재정이 적자를 기록했고 연간 흑자 규모도 크게 줄고 있다. 푸틴이 지난달 부분 동원령을 발한 것이 노동력 부족을 촉발할 것이라고 분석가들이 말한다. 12월 세탁기 생산량이 지난 5월 대비 10만대 줄어든 60만대로 예상된다. 세탁기 생산은 전면 중단됐다가 서서히 회복해 지난 8월 19만대였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낙후된 기술로 회귀하는 "역산업화"가 새로운 현실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자동차 산업이 가장 두드러진다. 자원 수출 중심 경제를 다변화하기 위해 육성한 자동차 산업 종사자가 전쟁 전 30만명, 연관산업 분야 종사자가 350만명에 달해 전 노동력의 5%를 차지했고 2020년 생산량이 2조6000억루부(약 60조원)에 달해 국내 산업 생산의 2.4%를 차지했었다.
자동차산업은 세계적 분업화가 가장 복잡하게 이뤄지며 사전 부품 비축도 거의 없는 분야다. 이 때문에 제재가 시작된 직후 러시아 자동차 산업은 반도체칩 등 핵심 부품을 공급받지 못했다.
수요자도 급감했다. 지난 5월 러시아의 물가가 급등했지만 임금은 정체해 신차 판매가 전년 대비 8.35% 줄었다. 9월의 수요 감소폭은 60% 수준이다.
소수 부유층만 자가용을 가졌던 소련이 붕괴된 뒤 중산층의 자동차 보유가 일반화되면서 러시아 인구 1000명당 자동차 보유대수가 328대로 늘어났다. 미국은 406대다.
라다 생산공장은 서방의 부품 공급 중단을 대체하기 위해 중국에 의존하지만 내년까지도 중국에서 부품이 공급될 전망은 희박하다. 라다를 생산하는 아프도바즈사의 대주주인 프랑스 르노사는 자동차 수요가 급감함에 따라 철수를 검토중이다.
러시아 정부는 자동차에 대한 안전, 환경 규제 등을 대폭 완화해 판매를 촉진하고 있지만 서방 브랜드의 자동차를 생산하는 공장 라인은 가동을 멈춘 지 오래다. 지난 7월 서방 자동차 생산 공장 노조 대표가 푸틴에 편지를 써 "고숙련 전문가가 공장 벽 페인트 칠을 하고 있고 잡초를 뽑으며 쓰레기를 치우며 돈을 받고 있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편지는 또 "러시아 최고 자동차의 국산화율이 40%에 불과하다"면서 부품이 없어 일을 못한다고 강조했다.
라다사가 오토기어를 개발하는 비용만 300억 루불이며 사륜구동은 200억 루블이 든다.
한편 러시아에서 판매되는 중국 자동차의 시장점유율이 빠르게 늘고 있다. 중국제 SUV 하발의 판매량이 지난 8월 작년 대비 26% 늘었다.
라다 공장에서 생산되는 러시아 차량에 대한 소비자 반응도 차가운 상황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yjkang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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