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역 1번 출구 수많은 국화꽃...이어지는 추모 발길[이태원 참사]
술과 메모, 꽃송이 틈에 스낵도
국화꽃 앞에서 무릎 꿇고 애도
사망자 수만큼 헌화한 사람도
시민 “늘 지나치던길...마음 무거워”
핼러윈을 이틀 앞둔 지난 10월 29일 늦은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서 전례 없는 대규모 압사 사고가 발생했다. 희생자들은 모두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현장에는 이들을 기리기 위한 추모장소가 마련됐다. 31일 오전 일대 상인들부터 출근길에 오르던 직장인 등 수많은 시민이 추모 현장에 멈춰서 진심 어린 애도를 표하는 모습이 수시로 반복됐다.
이날 헤럴드경제가 찾아간 서울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 바깥에는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하얀 꽃다발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이날 오전 7시부터 시민 한두 명이 현장을 찾아 꽃들 앞에 메모를 남기거나 묵념을 하는 모습이 연출됐다. 시민 일부는 헌화 한 꽃 앞에서 무릎을 꿇고 목 놓아 울기도 했다. 떠나간 이들의 마지막 길을 기린다는 의미로 소주와 막걸리 등 술과 종이컵, 과자와 같은 스낵이 꽃송이 틈으로 놓여 있었다. 현장에서 숨진 이들에게 전하지 못한 말을 남긴 메모도 화분과 역사 밖 구조물 곳곳에 부착돼 있었다.
한 메모에는 “정말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며 “제 친구, 동생 언니 오빠였을 사람들이 이렇게 허무하기 가시다니 너무 안타깝습니다. 부디 그곳에선 아프지 말고 행복하길 바란다”고 적혀 있었다.
참사 현장으로 들어서는 골목 바로 옆 상점 앞에 한 시민은 참사로 사망한 시민의 수 만큼 154 송이의 새하얀 국화를 화분에 담아 두고 가기도 했다. 화분에 붙은 노란 종이에는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것을 해보려 이 거리에 온 순수하고 열정 넘치는 젊은이들에게 닥친 불의의 사고에 마음이 미어진다”며 “더 이상의 희생자가 나오지 않았으면 하며 딱 154송이의 국화 꽃을 헌화합니다”는 글귀가 남겨져 있었다.
오전 9시가 가까워지자 출근길에 오른 시민들이 지하철에 들어서기 전에 현장에서 잠시 애도하는 모습이 연출됐다. 몇몇 시민은 헌화를 하기 위해 “꽃은 어디에서 구하면 되느냐”며 꽃을 미리 챙겨 온 다른 시민들에게 묻는 모습도 있었다.
이태원동 인근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연모(60) 씨는 “늘 익숙하게 지나다니는 길인데 오늘은 유달리 분위기가 무겁다”며 “사고가 벌어졌다는 소식만 접하고 마음이 아파 사망자 수 등 구체적인 소식은 애써 피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서울 이태원동에 거주하는 고모(33·여) 씨는 이날 꽃들을 말없이 바라보다 발길을 옮겼다. 그는 “핼러윈 분위기를 보려 그저께(29일) 밤 9시45분께 잠시 이태원역을 찾았지만 너무 많은 인파로 출구 밖을 나오지도 못하고 다시 돌아갔다”며 “1번 출구와 사고 현장까지는 불과 50m 거리였는데, 사고가 발생하기 직전이었음에도 상황 파악도 어려울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고씨는 “‘심정지 30명’이라는 기사까지 보고, 밤새 사이렌 소리를 들으면서 잤다”며 “(하지만) 사고 수습이 잘 되고 있다고 생각했지, 이렇게 사망자가 많아질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10년 전까지만 해도 이태원에서 핼러윈 축제가 있으면 일대 차량을 통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그런데) 올해는 왜 차량 통제를 하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통제만 했더라도 골목에 지나치게 사람 밀집하는 것은 막을 수 있었을 텐데...”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이른 아침부터 친구와 현장을 찾은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건국대 재학생 존 마맛저닙(22) 씨는 참사사건이 발생한 골목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그러나 그날의 참상이 잊혀지지 않아 며칠 밤을 지세다 이날 오전 현장에 다시 찾게 됐다고 했다.
마맛저닙 씨는 그날의 현장에 대해 “차마 보았으면 안 됐을 광경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말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사람들이 줄줄이 넘어지면서 거리 여기저기에서 ‘살려주세요’라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인근 클럽에서 나오는 음악 소리 때문에 모두 묻혔다”며 “한국말이 서투르지만 사람들이 도움을 구하려 외치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해 목이 쉬도록 따라 불렀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중심을 잃어 우왕좌왕하는 상황에서 마맛저닙 씨와 친구들은 골목에 붙어있던 한 상점 입구에 작은 공간을 발견해 목숨을 부지했다고 했다. 그는 “경황이 없었지만 순간 한 상점으로 들어가는 계단에 몸을 비집을 정도의 작은 공간이 있어 친구들과 그쪽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있었다”며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기도 어려울 정도였지만, 인파들 속에 계속 있었다면 나도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오전 중으로 병원을 찾아갈 생각이다”며 “아직도 눈앞에서 사람들이 소리치다가 세상을 떠나는 모습이 머릿속에서 선하다. 그날의 참상을 머릿속에서 떨쳐낼 수 없다”고 힘들어했다. 김영철 기자
yckim6452@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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