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이태원 참사 이제라도 국민에게 사과하라
[기고] 정부의 예방조치 소홀 책임 막중
[미디어오늘 고승우 민언련 고문·언론사회학 박사]
이태원 참사 사건은 너무 충격적이어서 지구촌의 가슴 절절한 관심과 슬픔이 집중되고 있다. 국내 언론도 그렇지만 해외 주요 언론도 이번 사건을 수많은 현장 사진과 함께 비중 있게 보도하고 있다. 31일 오전 7시 현재 사망자 154명, 중상자 33명, 경상자 116명 등 총 303명으로 외국인 피해 상황은 14개국 국적 사망자가 26명 부상 15명이다. 이번 참사의 원인 규명과 처리에 정부가 만전을 기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사고는 대통령 집무실에서 수km 정도 떨어진 지역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모은다. 만약이라는 가정을 할 필요도 없이 대통령 안위와 관련해 소홀히 넘길 수 없는 막중한 요인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 경호와 함께 정부는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할 무한 책임을 진다는 점은 말할 필요가 없다. 결코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이번 참사 발생 하루가 지나는 동안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정부의 사건에 대한 태도로 그 주요내용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30일 사고 당일 인파가 10만 명에 육박할 것이라 예상됐지만 '압사 사고' 예방책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는데도 “경찰·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② 윤석열 대통령은 30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발표한 대국민 담화에서 “정말 참담하다. 서울 한복판에서는 일어나서는 안 될 비극과 참사가 발생해 소중한 생명을 잃고 비통해할 유가족에게도 깊은 위로를 드린다. 사고 수습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윤 대통령의 참사관련 발언은 이 장관의 사건 성격 규정의 틀 속에서 이뤄진 것으로 해석된다.
③ 사고 지역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용산경찰서는 30일, 당일 현장에 130여명이라는 역대 가장 많은 경찰인원을 투입했다는 보도 자료를 내놓았다. 그러나 당시 경찰 인원은 대부분 마약 단속 등 범죄 예방에만 집중됐고, 보행 경로 관리 등 압사 사고 예방을 위한 인원 배치는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상에서 소개한 정부 측의 입장을 보면 이번 참사는 불가항력적인, 예방이 불가능한 사고였다는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소중한 생명이 끔찍하게 희생당한 것에 대한 정부의 사과 태도는 읽히지 않는다. 이런 태도는 참사 이전의 예방조치가 불가능했다는 논리와도 연결되어 있는데 이에 대해 일부 언론은 전문가들의 견해를 앞세워 '막을 수 있었던 인재(人災)'라고 반박하고 있다.
이번 참사에 대해 일각에서는 행사 주체가 명확치 않아 사전 안전조치 미흡 등에 대한 책임소재가 가려지기 어렵다는 식의 해석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이는 사회 안녕과 질서 등 치안에 대한 최종 책임은 정부에 있다는 점에서 적절치 않다. 치안을 담당한 정부 부처는 예상되는 모든 위험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할 책무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참사의 발생 가능성은 서울 용산경찰서가 참사 이틀 전인 지난 27일 배포한 '이태원 핼러윈, 시민 안전과 질서 확립에 총력'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에 언급되어 있다. 이 자료는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된 이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핼러윈은 10만 명의 인파가 이태원 관광특구에 집중되면서 범죄가 빈발, 교통체증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언급했다.
사건 발생 당일 수많은 인파가 초저녁부터 밤 10시 경까지 수 시간 동안 이태원 관광특구에 물밀 듯이 몰려드는 동안 경찰이 현장을 모니터링하고 상부와 협의하면서 통행제한과 교통통제 등의 예방 조치를 취했다면 사건 발생을 예방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런 점을 도외시한 채 “왜 그런 곳에 인파가 몰려 사고가 나게 했단 말이냐”고 하는 것은 이른바 '피해자 사고 유발론'의 부적절한 행태라는 비판을 자초한다. 관광특구는 누구나 출입할 수 있고 내외국인이 뒤섞일 가능성 등에 대비해 경찰, 소방인력이 투입되어 치안유지를 담당하는 것이 원칙이다. 사전 예방조치를 철저히 하지 않은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참사가 발생한 장소는 이태원동 중심에 있는 해밀톤호텔 뒤편 세계음식거리에서 이태원역 1번 출구가 있는 이태원로로 내려오는 좁은 골목길이다. 특히 내리막이 심한 이 골목은 길이가 45m, 폭은 4m에 불과해 대규모 인명피해로 이어졌다. 이 지역의 특성을 고려해 경찰이 골목 두 개 큰 입구에서 출입통제와 같은 비상조치를 취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사고 당일 서울 시내 다른 지역에서 집회시위가 발생해 경찰력이 분산되어 있었다는 점을 변명처럼 앞세우는데 이는 부적절하다. 이태원 참사현장은 대통령 집무실에서도 멀지 않은 지역이고 외국인 다수가 동참할 수 있는 관광특구라는 점을 고려해서 치안 유지에 만전을 기해야 했다. 이런 점에서 정부는 이번 참사에 대한 진솔한 사과와 국민적 용서를 비는 일을 더 늦기 전에 해야 할 것이다.
참사가 발생하면 핵심적인 사안보다 주변부를 부각시켜 관심을 흩어놓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다. 핼러윈 행사가 원래 취지와 달리 술집을 찾아가는 것으로 한국에서 변질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적절치 못한 지적이다. 문화현상은 그것이 다른 지역으로 이전되면서 갖가지 형태로 변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참사 발생 당시 현장 부근에서 고성 방가한 시민들이 있었다는 것을 비판하는데 순간적으로 발생한 비극의 내용이 정확하게 전달되지 못한 상황에서 벌어질 수 있는 불가피한 현상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이번 참사는 너무 비극적이어서 향후 정부 대응이나 언론 보도 등이 특히 주목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외국에서 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는 점에서 국격과 직결되어 있기도 하다. 만약 세월호 당시처럼 말만 앞세운 무책임한 정부 당국의 태도나, 관리들이 넘겨주는 자료를 베껴 쓰는 언론의 작태가 반복된다면 엄청난 비난에 직면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언론이 기레기로 지탄받는 일이 생겼던 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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