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놀이와 뒤풀이가 지닌 넓고 깊은 연행적 기획 마인드

2022. 10. 31.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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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춤과 나] 채희완의 탈춤 10

[채희완 서울대 민속가면극연구회 1기 , 70학번 ]
8월 1일 낮 12시부터 한 시간 오십분에 걸쳐 화상회의를 통하여 서울에 와 있는 제니퍼 권 돕스(Jennifer Kwon Dobbs) 교수와 경주에 사는 채희완 사이에 탈춤에 관한 대담이 있었다. 두 사람 사이의 만남을 주선하고 원만한 소통을 이끌어 낸 이는 국제입양아문제에 가장 정통한 김도현 목사이다.

김도현 목사는 해외입양인과 함께하는 <뿌리의 집> 대표이며, 대학 시절에는 맹렬하게 탈춤 부흥운동(서울대 사대 민속가면극연구회, 73학번)을 벌인 바 있다. 그는 차분하게 정성들여 우리말과 영어로 두 사람 사이의 통역을 맡아주었다. 이 글은 지난 10월 10일자 대담 '탈춤 전승은 현대 세시 축전의 하나로 나아가는 것'에 이은 두 번째 글이다.

김도현: 제니퍼 권 교수의 다음 질문입니다.

탈춤이 지니고 있는 구조를 활용하는 문제, 특별히 말뚝이가 양반을 이렇게 비판하는 그런 장면들, 그리고 고사를 지내는 장면, 이런 것들을 가지고 어떤 문화운동을 해나가고 정치운동을 해 나가고 그러는 것 같은데요. 그러니까 탈춤의 이런 구조를 활용해서 직접 새로운 작품을 만든 경험, 음 그런 거를 창작탈춤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 부분에 대해서 좀 궁금하다고요

채희완: 저의 개인적인 경험 속에서 국한해서 이제 얘기를 드린다면요. 아까 고사 지내는 거, 조금 더 보태면은 지금은 좀 의례적인 것으로 포함 시킵니다마는 길놀이라고 하는 거. 이런 것은 어떻게 보고 어떻게 해석을 해서 새로운 양식의 표현을 하는데 활용을 했는지, 그런 질문으로 하나 받아들이고요. 또 한 가지 탈춤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가 당시 당대의 지배 세력에 대한 비판이라고 보고 그것의 극중 인물로서 말뚝이에 주목을 하고 말뚝이와 양반 간의 어떤 그런 갈등 또는 대결 상황이 어떻게 표현돼 있는데 그것이 새로운 양식의 탈춤이거나 새로운 연행 예술에 어떤 식으로 작동을 했는지, 아마 그런 질문이라면 거기에 국한시켜서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맞나요?

김도현: 네.

채희완: 탈춤은 그야말로 농촌 공동체 사회의 산물인 동시에 우리 한국 땅으로 치면 17 ~18세기 신흥 민중 예술 발흥기 또는 중세 사회의 해체기, 또는 근세 초입이라고 하는 시기에 여러 양태의, 말하자면 여러 예술 양식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민중 근대 예술의 표현 양식으로 전환되는 시기에, 중시조적 과정으로서 당대의 탈춤이라고 봅니다. 탈춤의 역사에서 본다면.

전승탈춤은 봉건 사회 해체기의 신흥민중예술 발흥과 함께 새로 생겨나

김도현: 중시조라고 하셨는데...

채희완: 중시조(中始祖), 그러니까 스러진 것을 새롭게 다시 일으킨 이를 일컫습니다. 시조에 해당되는 건 한참 상고대 제천의식 때까지도 올려 보는 사람도 있지만 적어도 삼한, 삼국시대 때의 흔적을 보이고 있는 탈춤에서 비롯되어 그렇게 내려오다가 17~18세기니까 우리 한국 역사에서 봉건사회 해체기 또는 근세 초입에 해당되는 영정조 시기에 여러 예술 장르가 한꺼번에 폭발적으로 새로 생겨나고 그 앞 시기와는 크게 전변된 민중 예술 발흥이 있었습니다. 문학에서 평민소설, 평민가사, 사설시조가 나타나고, 미술에서 실경산수와 민화가, 음악에서 민속악과 산조, 연행에서 갖은 유랑예인연희, 그리고 판소리가 새로 생겨났지요. 이들과도 견주어서 탈춤이 그 이전의 모습과는 거의 다른 모습으로 새로 생겨나다시피 할 정도로 전환됐다고 봅니다.

그것이 20세기 후반까지 물론 그 사이에 새로운 탈춤들이 더 많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마는 그 흐름이 일제를 맞아 한편 쇠퇴하면서 복 원되기도 하고 민중의식의 성장과 함께 부흥되기도 하고 존속하여 그게 전해졌습니다. 왜 이렇게 좀 장황하게 얘기하냐 하면 우리에게 전해진 탈춤은 그 안에 여러 시기를 지내온 그 흔적이 적층되어서 쌓여진 그런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이렇게 길게 얘기했습니다. 그 안에는 고대적인 것도 있고 중세적인 것도 있고 근대적인 것도 있고 어떤 면에서는 포스트 모더니즘적 시각으로 보면 거기에도 적합한 그런 양태를 같이 보여주고 있거든요. 그 여러 세기를 지나오면서 그것이 전면적으로 전환되거나 전면적으로 극복되거나 전혀 새로운 식으로 나간 것이 아니라 옛 것은 밑에 깔려서 깔려져 있는 대로 진행돼 오고 그 위에 또 뭐가 얹어지고 근대적 민중의식의 성장과 함께 내용의 변화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안에는 저의 표현으로는 굿적인 것도 있고 놀이적인 것도 있고 극적인 것도 있다, 굿적인 것, 놀이적인 것, 연극적인 것, 거기에 더해 19세기에 새롭게 일어난 총체연행적인 것도 있다는 것이지요.
▲제니퍼 권 돕스(Jennifer Kwon Dobbs) 교수 ⓒ채희완
▲김도현 목사 ⓒ채희완
▲채희완 서울대 민속가면극연구회 1기 , 70학번 ⓒ채희완

탈춤에는 굿적인 것도 있고 극적인 것도 있고 놀이적인 것도 있어

김도현: 뭐라고요? 동태연행적인 거라구요?

채희완: 총체 예술, 토탈 아트(total art), 오페라 같은 거죠. 그런 것이 같이 섞여져 있습니다. 그것은 탈춤사로 보면 중국의 경극이나 일본의 가부키 하고는 전승의 양태를 전혀 달리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한 특징인데, 저는 그 점을 주목해서 탈춤에 처음 말문을 열고 터닦음을 하고 판열음을 하는 몫인 고사나 길놀이를 중시한다라는 얘기 올시다. 그것은 결코 비연극적이거나 반연극적인 것, 또는 전근대적인 것, 그래서 종교적이고 더 나아가서는 미신적인 그런 잔존 신앙 형태가 남아 있는 그런 것으로 보지 않는다는 겁니다. 연극계쪽이나 종교계쪽까지도 고사, 길놀이나 의례적인 행사에 해당되는 내용물들이 소멸되도록 또는 아예 적극적으로 제거하는 것이 마땅한 발전의 과정이라고 여겨왔습니다.

특히 근대극 이후 현대극을 주안점으로 탈출을 보는 시각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소치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많은 부분 탈춤의 그런 조악한 전근대적인 그런 것에서 벗어날수록 근대적인 것으로 또는 현대적인 것으로 간다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것의 한 모델을 중국의 경극이나 일본의 가부키에서 찾습니다. 바로 시작과 동시에 연극적인 표현이 담겨져 있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는 그런 관점이 통용됐기 때문에 무대화라고 하는 정형화로써 탈춤을 정착시키고 거기서 근대극의 한 시발점을 놓고자 하는 그런 분들의 의견 속에서는 그것은 무참히 없어졌던 겁니다. 근데 다행히 또 한 줄기로 이를테면 민예극단 같은 그런 쪽에서는 그것을 참으로 중시 했습니다. 저는 이제 중시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야말로 어쩌면은 한국 연극의, 뭐랄까요? 극적 수행 행위를 가능케 해주는 생성적 토대라고 봤습니다. 연행의 산출력이 여기에 덩어리로 뭉쳐져 있는 것으로 봤던 것이죠. 그래서 그것은 결코 연극 이전의 것이 아니고 또 전근대적인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지독하기에도 연극적인 발상이 숨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서 그 양식들이 지니고 있는 의미를 생각하게 되고 그것이야말로 여기 앉아 있는 관중만 초대된 것이 아니라 자연과 신과 우주와 살고 있는 모든 동식물들을 이 공연 자리에 다 모셔서 우리 한번 같이 자리하여 얘기도 나누고 춤추고 놀면서 여기서 제기하는 문제를 같이 즐기면서 논의를 해 봅시다라고 하는, 관중 초청과 더불어서 전우주적인 것이 동시에 초청되는 그런 장면으로 받아들여보기 위해 그런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것은 제거돼야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먼저 시작해야 될 것이라는 겁니다. 나중에 관중에게 와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하는 커튼콜을 우리의 연행에선 맨 앞에 합니다. 인사굿인 커튼 콜을 맨앞에 하는 연극적 발상 못지 않게, 그런 길놀이나 고사는 그런 지극한 극적인 발상을 이끌어내고 있는 수원지라는 거죠.

커튼콜을 먼저 하는 우리연행의 인사굿

여기서 조금 덧붙인다면, 길놀이라고 하는 것은 그 전 단계에 지신 밟기 같은 것이었죠. 매년 정초에 집집마다 돌면서 축원풀이를 하는, 그리고 또 흔히 카니발 같은 데에서의 가장 행렬 같은 것, 그리고 이제 우리 신파 연극 때에는 선전이나 홍보를 위한 풍각쟁이패들이 사전에 극장 주변을 열지어 크게 돌면서 이 공연을 알리고 홍보하는 그런 풍악행렬이고, 더 나아가서는 공연비를 추렴해내는 그런 방식으로도 활용됐던 그런 극적 장치였죠. 그것이 근대 시기에 와서도 소멸되지 않고 계속 있었던 것에 이유는 앞에 지신밟기니 어떤 고사굿의 형식으로 잔존될 수 있었기 때문보다는 훨씬 깊은 연행적 의미를 품고 있는 것이라 봅니다. 그것보다 오히려 동네에 같이 살고 있는 사람들을 같이 모이게끔 해서 관중을 특정 부류로 두지 않고 같이 살아나가는 그 지역의 사람들이 모두가 관중일수록 초청해 들이는 그런 인사극, 축전극 같은 의미지요. 동시에 그들이 출연자들과 그 연행 행렬을 지어서 가는, 사람들이 밟고 있는 그 걸음걸음의 땅마다 모두다 공연 공간으로 바꾼다라는 거죠. 사는 일상 공간인데 그 일상 공간을 공연 공간, 문화생성공간으로 바꾸는 지극한 연극적 발상이라는 점이죠. 고사굿도 제가 종교적인 의미 라든지 어떤 주술적인 의미 등 이런 면이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것보다 먼저는 현대극의 관점에서 볼 때, 또 현재 현대 시어트리칼리즘 (theatricalism) 개념으로 볼 때, 또한 현대 관중의 역할로 볼 때, 현대 연극이 지향하고 있는 한 바를 그대로 실현해주는 측면이 있다라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중심공연은 마을의 중심지거나 극장일 수 있습니만, 중심 공간을 주변부로 감싸안으면서 그 주변부 일상 공간을 공연 공간으로 아우르는 흡입력을 내보이는 거죠. 곧 주변부의 유기화이며 중심부의 강화입니다. 또 거꾸로 얘기한다면 뒤풀이란 그 중심공간으로 압축돼 있는 것을 휘돌아서 그것을 확산시키는 그런 역할도 하는 공연 공간의 확충이자 또한 주변 일상공간의 유기화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길놀이, 앞놀니에 잡가하는 행렬패는 이 연행 행사의 당사자가 누구인가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 연행적 기획적 마인드를 저버릴 수는 없는 게 아닌가요?

길놀이와 뒤풀이는 수렴과 확산의 기획적 발상

채희완: 조금 의미를 조금 더 강화해서 부연한다면은 그런 앞놀이로서의 길놀이의 성격과도 거의 흡사하게 뒤풀이라는 것을 합니다. 그것은 공연이 끝나고 관중과 같이 어울려서 뒷판을 마무리하는 그런 것인데 굿으로 치면 “너도 먹고 물러가라”라고 하는 모인 잡귀, 잡신도 풀어 멕이고 한바탕 놀고 가라고 하는 그런 의미가 깔려 있습니다. 또 다른 식으로 보면 앞놀이에 못지 않게 그것에 수렴된 공간에서 같이 봤던 것을 다시 풀어가지고 생활 공간 속으로 펼쳐내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앞에 길놀이가 감는 거라면 공연 공간으로는 중심으로 수렴이 됐고 그다음에 뒤풀이는 풀어내는 그런 것 이어서 그것 또한 공연 공간의 확대인 것이죠 그것도 단순히 우리가 생각하는 쫑파티 같은 그런 의미로서의 관중과의 공판 마지막을 풀어내는 그런 의미를 넘어서서 지독한 연극적 발상 속에서의 뒷풀이를 어떻게 보면 수행할 수도 있고 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뒷풀이조차 짜는 것이죠.
20세기 중엽 이후 서구 연극세계에서 새로운 과학시대의 연극을 지향했던 베어톨트 브레히트가 서사극의 첫 장면에서 제시한 소격효과의 한 발상도 어쩌면 이와 통하는 바가 있다고 봅니다.

이를테면 한 등장인물이 극의 첫머리에 나와서는 오늘 수행할 연극의 줄거 리나 내용을 소개하고 자기자신이 맡은 역할도 미리 고지하는 장면 입니다. 그것의 한 발상도, 우리의 길놀이나 고사굿이나 인사굿의 극적 도입부에서 우주 생명력의 동참을 요망하는 것 대신 서사극에서는 비판적 지성의 동참을 끊임없이 요망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또 한 가지 더 보태자면은 길놀이가 마을을 한 바퀴 돌거나 또는 도시 같으면 여러 상점이나 건물이나 도로를 돌면서 중심부인 공연 공간으로 돌아오는, 뭐라고 그럴까요? 마을 나들이와 같은 그런 것인데, 어떤 경우에는 어느 장소에 가다가 서서 극적 사건을 연행 행위로 하기도 합니다 물론 촌극(寸劇)인 경우가 많지만, 그러니까 공연 공간이 이동하는 겁니다. 길놀이와 함께 작은 또 다른 무대 공간이 생겨나는 것이죠. 그것도 한 판 끝나면 또 행렬이 지어져서, 관중과 함께 딴 무대에 가서 또 한 번 놀고 또 몇 차례 한 다음에 드디어 중심 공연공간으로 오게 마련입니다. 그렇게 길놀이 과정에서 몇 군데 그럴듯한 자리를 무대 공간으로 바꾸어 가면서 거기서도 연행 행위를 수행하고 그런 식의 방식을 우리들 끼리는 이동 산대, 이동무대, 그렇게 표현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이때 산대라고 하는 것은, 탈춤에서 단을 조금 높이 세워놓고 올리는 경우에 산대 놀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그렇게 가설 무대라는 뜻으로, 그 가설 무대를 이동해 가면서 한다라는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아까 말씀드린 공연 공간의 확충일 뿐만아니라 여러 무대 공간들이 가면서 새로 들어서는 것이죠.

김도현: 시간 많이 내주셔서 너무 감사한데요. 질문 두 가지를 더 하겠다고 합니다

채희완: 아까 질문한 것에 답변 하나를 못했는데 말뚝이 얘기입니다. 그건 그러면은 나중에 할까요? 네. 그렇게 하죠.(계속)

[탈춤과 나] 원고 청탁서

새로운 언론문화를 주도해가는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http://pressian.com)이 <사)민족미학연구소>와 <창작탈춤패 지기금지>와 함께 탈춤에 관한 “이야기마당”(칼럼 연재)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 탈춤이 좋아서, 쏟은 열정이 오롯이 담긴 회고담이거나 증언, 활동일지여도 좋고 아니면 현금 문화현상에 대한 어기찬 비판과 제언 형식의 글이어도 좋습니다.

과거 탈춤반 출신의 세대에게는 아련한 추억을, 신세대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전통문화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글 내용이면 충분할 것입니다. 한 때나마 문화패로서 탈꾼으로서 개성넘치는 숨결을 담아내면 참 좋겠지요.

글 말미에는 대학탈춤패 출신임을 밝혀주십시오(대학, 학번, 탈춤반 이름 및 현직)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사진(1-5매)이나 시청각 자료도 곁들여 캡션을 달아 보내주시면, 지난 기억이 되살아나 더욱 생생한 느낌을 전달해줄 것입니다.

알뜰살뜰한 글과 사진제공에 대한 원고사례비는 제공되지 않고, 다만 원고가 묶여져 책으로 발간될 때 책 두 권 발송으로 사례를 대신합니다.

제 목 : [탈춤과 나] (부제로 각자 글 나름의 자의적인 제목을 달아도 좋음)

원고 매수 : 200자 원고지 15-30매(A4 3-5장)

(사진 등 시청각 관련 자료 캡션 달아 첨부하면 더욱 좋음)

보낼 곳 : (사) 민족미학연구소 (namihak@hanmail.net) 채 희 완 (bullim2040@hanmail.net)

[채희완 서울대 민속가면극연구회 1기 , 70학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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