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 전쟁에 내몰린 러 병사들 전의 상실…대거 이탈할 듯" CNN

강영진 2022. 10. 31.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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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명분 부족·지도자 신뢰 부족·부패한 정부와 사회
군대가 전의를 잃게 하는 3개 요인 모두 명확해

[카미얀카=AP/뉴시스] 우크라이나군이 최근 탈환한 하르키우주 카미얀카 마을 인근에 최근 전투에서 파손된 러시아군 전차들이 버려져 있다. 2022.10.31.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미국 CNN은 2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에서 싸우는 러시아군이 전의를 상실할 수밖에 없다고 전망하는 분석을 제시했다.

1914년 크리스마스 이브 오전 8시30분, 1차 세계대전 전투가 벌어지던 유럽 대륙 북부에서 영국군이 사령부에 보고했다. 독일군이 참호에 불을 밝히고 크리스마스 캐롤을 부르고 있으며 영국 군인들도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치고 있다는 내용이다.

영국군 장교가 사병들에게 조용히 하도록 명령했지만 이미 늦었다. 영국군이 이미 "저 들밖 한밤중에(The First Noel)"이라는 찬송가를 부르고 있었다. 그러자 독일 군인들이 소리를 질렀다. "영국군 나와서 만나자."

양측 군인들이 참호에서 나와 중간지점에서 만났고 초콜릿과 와인, 기념품을 교환했다. 축구 시합을 해 독일팀이 3대2로 승리하기도 했다.

크리스마스 이브 안개 자욱한 날 서로 악수했던 양측 병사들 대부분이 몇 년 계속된 전쟁에서 사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생존자들이 남긴 사진이 당시의 장면을 증언한다. 양측의 병사 10만명 가량이 너무 탈진하고 진력이 나서 전투하기를 거부했던 사례다. 일부 지역에선 새해 첫날까지 휴전이 이어졌다.

미 스미소니언 매거진에 실린 크리스마스 정전 장면 사진 설명에는 "1914년 연말 즈음 참호에 있던 군인들은 전투의 실상이 8월 첫 참전 당시 가졌던 환상과는 차이가 크다는 것을 알았고 모두가 유혈극이 끝나기만 바랬다"고 돼 있다.

100년 이상 지난 뒤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교환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나 크리스마스 정전 사례는 러시아군 사면초가에 몰린 러시아군에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다.

역사에는 군대 전체가 갑자기 전투를 멈춘 사례가 적지 않다. 서로 팽팽한 전력인 경우에도, 심지어는 한 쪽의 병력이 월등히 많은 경우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군인들이 전의를 잃게 만드는 것이 무엇이며 우크라이나의 러시아군은 어떨까?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은 질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저항했다. 이 때문에 연합군은 마지막 순간에 공격을 멈추고 생존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전술을 썼다.

걸프전을 직접 치렀던 미 디킨스대 국제안보 객원교수 제프 맥코즐랜드는 러시아군이 지금 그런 상황에 처해 있다고 지적했다. 훈련도 보급도 취약한 러시아군 상당수가 전의를 상실했다는 것이다. 그는 "공포와 패닉이 팬데믹보다 빠르게 전염된다"고 했다.

맥코즐랜드 교수 등 역사가들은 모든 전쟁의 역사에서 전의를 상실하는 상황은 세가지로 꼽힌다고 지적한다.

명분에 대한 확신 부족이 첫째다. 1990-91년 걸프전에서 중대장이던 그는 이라크군이 너무 많이 항복해 포로로 받기조치 힘들었다면서 물병을 주고 부대 뒤쪽으로 가라고 손짓하는 상황이었다 했다.

걸프전은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전쟁이 쿠웨이트를 침공해 발발한 전쟁이다. 이라크 군인들은 쿠웨이트를 빼엇기 위해서도, 이라크의 잔혹한 지도자를 위해서도 죽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맥코즐랜드는 "상공에 떠 있는 드론을 향해 항복한 이라크 군인들도 있었다"고 했다.

2021년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던 와중에 아프간 군대가 붕괴했다. 미군이 몇 년 동안 수십억 달러를 들여 훈련한 군대가 한 순간에 탈레반에 패한 것이다.

맥코즐랜드 교수는 아프간 군대가 항복한 이유는 단 한가지라고 했다. "탈레반 전사에게 '왜 참전했느냐'고 물으면 조상들이 영국군을 몰아낸 것처럼 십자군으로부터 나라를 해방시키기 위해서, 종교와 나라와 가정을 지키려 싸운다고 답했을 것"이라고 했다.

반면 아프간 군에 같은 질문을 한다면 "중대 지휘관이 떼먹지만 않는다면 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을 것이라고 했다.

맥코즐랜드 교수는 탈레반은 명분을 믿었지만 아프간군은 그렇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두 번 째 지도자에 대한 믿음의 부족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리더십은 차이가 크다. 푸틴은 소독된 커다란 회의실에서 정장 차림에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긴 테이블 한 쪽 끝에 앉은 모습으로 등장했었다. 사진 설명은 "피해망상에 빠져 고립된 독재자"이었다.

반면 젤렌스키는 보좌관들에 둘러싸여 자신과 가족이 위험하지만 키이우를 사수할 것이라고 강조하는 모습이었다. 지쳤지만 수염도 깍지 않은 채 건장한 모습으로 최전선의 군인들을 포옹하는 장면도 많다.

맥코즐랜드 교수는 "사진을 보면 누구를 위해 싸워야할 지가 금방 드러난다"고 했다.

군인들은 지휘관이 자신들의 참호에서 함께 싸울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지도자가 자신들을 아끼며 자신들의 희생을 존중하는지는 궁금해 한다.

알렉산더 대왕이 좋은 선례다. 알렉산더 대왕은 물도 없이 사막을 건너 적군을 추적했다. 당시 정찰대가 귀한 물을 투구에 받아오자 감사하다고 말한 뒤 모든 병사들이 보는 앞에서 물을 쏟아 버렸다. 병사들이 모두 물을 마실 수 있을 때까지 한방울도 입에 대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자 병사들이 환호했다. 그런 알렉산더 대왕은 전투에서 진 적이 없었다. 당시 한 역사가는 "알렉산더가 물을 버린 행동으로 모든 병사들이 물을 마신 듯한 효과가 났다"고 썼다.

세번째 국가의 지원이 거의 없다. 부정부패가 심하면 전시에 국가안보가 취약해진다. 국가가 부패해 군대에 대한 지원이 없으면 군대는 전의를 상실하는 것이다.

1975년 월남군 패배가 대표적 사례다. 미국이 수십년 동안 지원했던 월남 정부와 군대는 부패가 만연했다. 지도자들과 군 사령관들이 지원을 빼돌려 치부하면서 대중들의 지지를 잃었다.

미국이 1973년 전투부대를 철수하고 2년 뒤 월맹군이 사이공에 대한 최후 공세를 펴자 월남군이 맞서 싸우지를 않고 장비와 무기를 버린 채 탈영했다. 미들테네시 주립대 데렉 프리스비 교수는 "미군이 철수해 월맹이 이길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전쟁은 군인들만 치르는 것이 아니다. 나라와 국민, 사회 전체가 참전한다. 정부, 군대, 언론이 얼마나 건전한 지가 군인들의 사기 못지 않게 더 중요한 것이다. 19세기 군사 전략가 칼 폰 클라우제비츠는 "군대의 열정"이 승리에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클락대 역사학 교수 마이클 버틀러는 러시아의 사회 병리가 심해 정부가 부패하고 대중의 신뢰를 잃은 지 오래라고 지적했다. 러시아국민들은 소련의 붕괴, 부패의 만연, 정치적 갈등, 자유 언론과 반대 목소리의 억압을 오래도록 봐 왔다는 것이다. 이같은 불신이 러시아 군대에도 팽배할 것이며 징집을 피해 수십만 명이 도피한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는 것이다.

반면 우크라이나군의 열정은 명확하다. 모든 군인들이 왜 싸우는 지를 잘 안다. 맥코즐랜드 교수는 "우크라이나군인의 참전 동기는 나라와 가족과 사회를 지킨다는 가장 강력한 것"이라고 말했다.

베트남전에서 미군은 전투에서 진 적이 없다. 그러나 미국인들이 지도자들이 전쟁 목적과 전쟁 상황에 대해 거짓말한 것을 알고 격분했다. 이 때문에 미군 병사들이 전의를 잃으면서 미군이 베트남에서 철수한 것은 미국 역사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장면 가운데 하나다.

비록 러시아에선 전쟁 반대 시위가 봉쇄되고 언론이 푸틴을 전혀 비판하지 않지만 러시아 군인들은 자신들이 속아서 전장에 내몰렸음을 안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반전운동을 벌였던 존 케리 상원의원이 1971년 의회 청문회에서 "실수가 있었지만 끝까지 싸우라고 어떻게 명령할 수 있나"라고 반문했다.

올 겨울 우크라이나에 파병된 러시아군이 제기할 질문이다. 푸틴이 병사들에게 고난을 감내해야할 이유를 제시하지 않는다면 모든 전선에서 징집된 병사들의 대량 이탈이 발생할 것이다.

혹한의 전장터에서 크리스마스 캐롤이 아닌 동료가 죽는 소리를 듣는 러시아군도 "실수가 있었지만 끝까지 싸우라고 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될 것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yjkang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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