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숨 쉬는 강화 소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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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근교에 위치한 강화는 막연히 친숙한 곳이다. 서울에서 너무 멀지 않고, 여행 기분은 나면서 바다를 볼 수 있는 곳! 그런 조건에 강화가 제격이지 않나. 이제까지 강화는 드라이브 코스 또는 짧게 들르기 좋은 여행지였다. 잘 안다고 자부하지만 갯벌과 노을 정도의 기억이 대부분으로, 강화의 속살은 제대로 알지 못했던 터다. 이효재 한복 디자이너가 이번 여행지로 강화를 추천했을 때도 같은 기분이었다. 익숙한 듯하지만 이제까지 그냥 겉만 훑어온 낯선 느낌. 특히 한복과 보자기를 만들며 누구보다 소재에 깐깐한 이효재 디자이너가 직접 만져보고 와야 한다고 강조한 주인공, 강화 ‘소창’에 대해서는 참 무지했으니 말이다. “쓰면 쓸수록 그 진가를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강화 소창의 특징이자 힘입니다. 직접 손끝으로 만져보고 피부에 얹어보면 그 소중함을 바로 알 수 있어요. 땀을 흡수하는 기능이 탁월하고, 이불로 덮었을 때의 감촉은 럭셔리함 그 자체입니다.”
소창은 목화솜에서 뽑아낸 실을 이용해 만든 면직물. 목화에서 얻은 솜을 뭉쳐 가늘고 긴 실을 만들고, 이 실을 씨와 날로 한 올씩 번갈아 교차해 만든 면이다. 최근 건강한 웰니스 라이프와 함께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 소재이기도 하다. 소창 자체는 생경할 수 있지만 일회용 기저귀 사용 이전에 널리 쓰이던 천 기저귀, 손수건, 행주, 혼례식 함 끈, 장례 절차용 끈 등이 소창으로 만든 대표적인 제품이다. 일상 곳곳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사용한 직물인 셈. 그럼 왜 강화 소창일까? 강화는 직물의 도시였다. 1970년까지만 해도 그 위상이 남달랐다. 평화직물, 심도직물 등 크고 작은 직물 공장이 강화에 터를 잡고 성업했다. 강화읍에만 직물 공장 종업원이 4,000명에 달할 정도였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인조 직물을 생산하는 대구로 섬유산업이 옮겨가면서 강화의 직물 사업은 뒤안길을 걷게 됐다. 노동자와 공장 기계가 서서히 자취를 감춘 것. 현재는 소창 공장 7곳 정도가 명맥을 잇고 있다. 방직기 소리로 가득 찼던 공장들은 본연의 모습을 잃은 채 퇴색돼가며 아쉬움을 자아냈다.
하지만 5년여 전부터 오래된 방직공장과 세월을 담은 거리들이 다시금 생기를 되찾고 있다. 낡은 공장은 전시나 체험관으로 원래 있던 그 자리에 뿌리내리고, 오래된 시설물은 또 다른 문화 공간으로 발길을 사로잡고 있는 것. 또한 천연 소재에 대한 니즈가 소창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 열매를 맺고 있다. 소창으로 만든 제품, 소창 직물 그 자체에 대한 선호가 늘고 있다는 점도 반가운 소식. 소창과 함께 강화 원도심이 빛나던 그 시절을 어딘지 모르게 닮아가고 있는 셈이다.
오감 만족 소창체험관
소창체험관 입구에 도착하면 주변 주택가와는 다른 소담스러운 한옥이 등장한다. 건물과 담벼락 등 외관은 오래돼 보이지만 잘 정돈돼 깔끔하고 단정한 느낌을 주었다. 외부 담에는 소창의 원료인 목화솜 조형물이 장식돼 있다. 안으로 들어서면 마치 시공간 이동을 한 듯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반질반질 손때 묻은 한옥과 잘 관리되고 정돈된 건물, 오밀조밀 꾸민 정원과 공간마다 잘 어울리는 소품들이 먼저 손님을 맞는다. 소창체험관은 전시관과 체험관, 차 체험을 즐길 수 있는 1938한옥, 소창 제작 과정을 직접 보여주는 직조 시연관, 기념품 전시관 등으로 구성된다.
먼저 소창 전시관에서 소창의 역사를 들여다보고, 소창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손때 묻은 베틀과 직조기, 세월을 아로새긴 재봉틀과 빛바랜 직물뿐만 아니라 방직 산업 관련 사진들이 빼곡히 자리한다. 강화 소창의 산증인 같은 해설사가 상주하면서 도란도란 들려주는 옛이야기가 귀에 쏙쏙 박힌다. 전시관 바로 옆에는 방직기계로 꽉 찬 자그마한 직조 시연관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의 관리와 재료 공급은 아직도 전통 방법을 고수하며 대를 이어 소창을 제조하고 있는 강화의 대표적인 소창 공장, *연순직물에서 담당하고 있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방직기계 소리는 생각보다 커서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직조 시연관 앞에는 목화밭이 자리 잡고 있다. 자연 그대로 자라고 있는 보송보송 솜털뭉치가 달린 목화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외부 담벼락에서 본 목화 조형물의 실체를 안에서 직접 볼 수 있는 셈.
소창체험관 입구에는 도장을 찍어 자신만의 손수건을 만드는 체험을 무료로 진행한다. 체험객이 많으니 예약하는 것이 좋다. 넓은 잔디밭을 지나 현대식 건물도 꼭 들러봐야 하는 공간. 기념품 전시관으로 1층에서는 한복 체험과 소창으로 만든 제품들을 소개하고, 2층은 방직과 관련된 전시실과 관련 사진들이 보는 재미를 더한다. 기념품 전시관 곳곳을 메운 소창으로 제작한 다양한 작품은 체험관 직원들이 힘을 합쳐 만든 것으로 웬만한 미술품 못지않다. 날이 좋을 때 2층 야외에 올라가면 소창체험관 전체와 인근이 한눈에 보이니 이곳에서의 풍경을 놓치지 말 것!
1938년에 건축된 1938한옥에서는 차 체험을 진행한다. 주로 강화 특산물인 순무를 덖어 만든 순무차를 낸다. 다양한 소창 제품으로 장식된 정갈한 방에서는 푹신한 방석 위에 앉아 구수한 순무차 한 잔을 마시는 여유를 누릴 수 있다. 소창체험관의 김선숙 관장은 오롯이 그리고 찬찬히 오감을 느끼고 즐겨보기를 권한다. “바쁘게 들러 손수건 체험만 하고 떠나는 분들을 보면 안타까워요. 넉넉히 시간을 내어 전시관과 체험관, 야외 정원 등을 고루 둘러보길 바랍니다. 그래야 소창의 진면목이 제대로 보이거든요. 강화의 한옥에서 차 한 잔을 음미하는 특별한 시간도 놓치지 마시고요.”
연순직물
강화에서 전통 방식으로 소창을 직조하는 공장은 이제 7곳밖에 남지 않았다. 그 대표적인 기업이 바로 연순직물. 고연순 대표의 이름을 딴 직물 회사로, 아들 김민재 대표와 함께 대를 이어 소창을 직조한다. 원단 가공업체에 직접 소창을 공급하는 등 이미 강화 소창의 대명사로 입소문 난 브랜드로, 사명감을 가지고 소창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소창체험관과 함께 둘러보면 좋은 곳
소창체험관과 조양방직에서 걸어가 둘러볼 수 있는 곳으로는 대한성공회 강화성당을 빼놓을 수 없다. 1900년 세워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 성당으로 2001년에는 국가 사적으로 지정됐다. 강화읍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방주처럼 자리 잡은 이곳은 겉모습은 한옥인데 실내는 서양의 인테리어가 접목된 독특한 공간. 본당 안에 들어가면 개화기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다른 나라에 여행 온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입구에는 대한성공회 문양이 새겨진 한국식 종이 자리 잡고 있고, 로마 바실리카 양식으로 지은 성당 내부는 제대와 제례대, 독특한 창문 등이 눈길을 끈다. 높은 천장과 목조가 어우러진 고요한 공간은 포용적인 종교의 공간임을 오롯이 전달한다.
운영 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 월요일 휴무 주소 인천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길27번길 10 문의 032-934-6171
복합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한, 조양방직
조양방직은 1933년 설립된 방직공장이었다. 조양방직이 생기면서 서울 다음으로 강화도에 전기 시설이 들어왔고, 강화도의 직물 산업이 가내수공업에서 기계화로 바뀌었다고 하니 그 영향력은 실로 대단했던 셈. 하지만 세월이 흘러 단무지 공장, 젓갈 공장을 거치며 폐허가 되다시피 하다 소창체험관이 생긴 2017년 이곳도 카페로 다시 태어났다. 이름도 ‘조양방직’ 그대로다. 건물 골조와 외관, 낡은 출입구 등은 그대로 살렸고, 실내에 방직기계가 있던 기다란 작업대는 압도적인 스케일의 테이블로 변신했다. 음료와 케이크를 파는 카페지만 990㎡(약 300평)의 넓은 실내외 공장 곳곳에는 빈티지한 분위기의 조형물과 인테리어가 가득해 거대한 갤러리이자 비밀스러운 미로를 방불케 한다.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충만한 재미와 경험을 선사하기에 제격.
운영 시간 오전 11시~오후 8시(주말·공휴일 오전 11시~오후 9시) 주소 인천시 강화군 강화읍 향나무길5번길 12 문의 032-933-2192
에디터 : 서지아 | 사진 : 서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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