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이어 러도 쿠바 미사일 위기 거론… '美의 양보' 노리나

김태훈 2022. 10. 31.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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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핵무기가 동원될 수 있다는 우려와 관련해 미국에 이어 러시아도 고위 당국자가 나서 현 상황을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와 비교하는 발언을 내놓아 주목된다.

쿠바 위기는 1962년 소련(현 러시아)이 동맹국인 쿠바에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핵미사일을 배치하려 한 것에서 비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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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쿠바 위기 때 미·소 상호 양보로 봉합
미, 소 겨냥 튀르키예 배치 핵미사일 철수해
라브로프 "미가 우크라 평화협상 개시 막아"
미가 우크라에 '러와 대화' 압박하라는 요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핵무기가 동원될 수 있다는 우려와 관련해 미국에 이어 러시아도 고위 당국자가 나서 현 상황을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와 비교하는 발언을 내놓아 주목된다. 다만 러시아의 속셈은 ‘그때처럼 미국이 좀 양보했으면’ 하는 바람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30일(현지시간) 러시아 타스 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외교부는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장관의 최근 발언을 일문일답 인터뷰 형식으로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공개된 내용을 보면 라브로프 장관은 “1962년 쿠바 위기와 현재 우크라이나 상황을 비교해달라”는 물음에 “유사점이 있다”고 답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부 장관. AP연합뉴스
쿠바 위기는 1962년 소련(현 러시아)이 동맹국인 쿠바에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핵미사일을 배치하려 한 것에서 비롯했다. 당시 미국 행정부는 “묵과할 수 없는 일”이라며 핵무기가 탑재된 항공모함 등 해군력을 총동원해 쿠바 주변 해역을 봉쇄했다. 핵미사일 및 발사대를 싣고 온 소련 함대와 그 항행을 저지하려는 미국 함대가 쿠바 인근에서 대치하며 핵전쟁 일보직전까지 갔으나, 막판에 미·소 양국이 서로 양보해 가까스로 인류 공멸의 위기를 피할 수 있었다.

얼마 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모든 수단을 쓸 수 있다”며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위협하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바로 이 쿠바 위기를 거론하며 “1962년 이후 60년 만에 인류가 핵전쟁이란 ‘아마겟돈’의 위기에 직면했다”고 발언한 바 있다. 미국에 이어 러시아도 현 상황을 쿠바 위기에 빗댄 셈이다.

라브로프 장관은 그가 말한 ‘유사점’의 근거를 설명하며 “그때와 지금 모두 러시아 국경에 대한 직접적 위협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이 주도하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한 유럽 동맹국 일부에 러시아를 겨냥한 미국의 핵미사일이 배치돼 있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다만 그는 다른 점도 있다고 강조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1962년에는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책임과 지혜를 보였으나, 현재 미국과 그 위성 국가들은 그런 의지가 없다”고 꼬집었다. 이는 ‘그때 케네디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미국이 양보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쿠바 위기 당시 소련은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핵미사일의 쿠바 배치 계획을 끝내 철회했다. 마찬가지로 미국도 튀르키예(터키)에 배치돼 소련을 겨냥하던 자국 핵미사일을 철수시켰다. 결국 라브로프 장관의 얘기는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끝내려면 명분이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미국을 비롯한 서방 진영도 러시아한테 뭔가를 내놓아야 한다’는 의미인 셈이다.

동서 냉전이 극심하던 1961년 미·소 정상회담에서 만난 당시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왼쪽)과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 세계일보 자료사진
라브로프 장관이 요구하는 ‘양보’는 무엇일까.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 등 서방의 무기 공급 중단, 우크라이나의 나토 불가입 보장, 현재 유럽에 배치된 미국 핵미사일 철수 등을 떠올릴 수 있다. 일각에선 미국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설득해 러시아와의 평화협상 테이블 앞에 앉도록 해달라는 뜻이라고 풀이한다. 실제로 라브로프 장관은 “지난 3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평화협상이 결렬된 배경에 미국의 직접 지시가 있었다”는 주장을 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대화할 의향이 있지만 미국이 이를 막아왔는데, 이제 그만 바이든 대통령이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요구가 담겨 있는 셈이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와의 평화협상 개시는 전적으로 우크라이나의 주권 사항’이란 입장이 확고해 보인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최근 브리핑에서 “러시아와의 대화 문제에 대해서는 우크라이나가 결정해야 할 사항”이라며 “미국은 필요한 만큼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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