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어머니의 나라, 한국에 온 키아나입니다"
[점프볼=최서진 기자] 키아나 스미스(23, 178cm). 올 시즌 여자프로농구의 가장 많은 기대를 받는 선수다. 김한별(BNK·귀화)을 시작으로 김소니아(신한은행), 김애나(하나원큐) 등 혼혈, 해외동포 선수들의 등장이 이어져 왔는데, 이번에는 느낌이 좀 다르다. 현역 WNBA 선수의 등장이기 때문이다. 시즌 개막 이전부터 리그 판도를 바꿀 자원이라는 평가를 받는 키아나가 이번 점프볼 표지의 주인공이다. 키아나의 고향 캘리포니아 분위기가 물씬 흐르던 부산 광안리에서 만나봤다.
※본 기사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11월 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어머머머” 생소하면서도 재밌는 한국문화
키아나는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농구 선수였던 할아버지와 대학 농구 코치인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아 미국 농구 유망주로 성장했다. 2017년에는 맥도날드 올 아메리카에 선정됐다. 맥도날드 올아메리카는 미국 최고의 고교 유망주들에게만 주어지는 무대다. 이를 토대로 명문 루이빌대로 진학해 주전 슈팅가드로 활약했으며 2022년 WNBA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4순위로 LA 스팍스에 지명됐다. 지난 7월 피닉스 머큐리와의 경기를 통해 데뷔해 한국계 미국인 최초 WNBA리거라는 업적을 남겼다. 현역 WNBA리거 키아나는 WKBL무대를 찾았다. 삼성생명은 2022 WKBL 신입선수 선발회 1라운드 1순위로 키아나를 지명하며 팀의 미래를 맡겼다. 코트 안에서는 불같은 승부욕을, 코트 밖에서는 부드러운 에너지를 발산하는 키아나. 그녀는 어머니의 나라, 한국에서 새로운 꿈을 향해 달려간다.
Q.어머니의 나라, 한국에서의 생활은 어떤가요?
잘 지내고 있어요. 팀 동료들과 감독님, 코치님들도 잘해주셔서 문제없이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음식이 잘 맞는 부분도 좋아요. 하지만 가족들과 친구들이 그리운 건 조금 힘들어요.
Q.한국 음식인 갈비, 김밥을 좋아한다고 알고 있어요. 새롭게 좋아하게 된 한국 음식도 있나요?
설렁탕이요. 원래 국류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설렁탕과 두부가 들어간 된장국을 좋아하게 됐어요. 할머니에게 한국 문화를 많이 배웠어요. 그래서 뻥튀기나 강냉이를 좋아해요. 얼마 전에 건빵이랑 참깨스틱을 처음 먹어봤는데 중독성이 강해서 계속 먹게 되더라고요.
Q.한국의 다른 지역을 놀러 가본 적이 있나요?
LP를 좋아해서 이태원에 있는 뮤직 라이브러리에 다녀왔어요. 이태원 자체가 주변에 재밌고 흥미로운 것들이 많아서 좋은 추억이 됐어요. 부산에서는 한국 바다(광안리)를 처음봤는데 색다르고 신기했어요.
최서연과 대화할 때 얘기가 잘 통해요. 언어를 공유하기에 많은 도움을 받고 있어요. 또 (배)혜윤 언니에게 정신적으로, 농구적으로 많은 조언을 받고 있어요. 다른 동료들 모두가 나이스하게, 재밌게 대해주고요.
Q.한국에서 동료에게 새롭게 배운 한국말이 있나요?
‘미치자’ 체육관에 쓰여 있는 말이에요. 요즘 한국어를 어떻게 읽는지 배우고 있어요. 그리고 한국 사람들이 놀랄 때 쓰는 ‘어머머머’ 이 단어가 너무 재밌고 웃겨요.
Q.미국 집에서 신발을 신지 않는다고 들었어요. 언제부터인가요?
태어날 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엄마가 절대 안 된다고 하셨어요. 아버지가 대학 농구팀에 감독이시라 종종 집에 선수들을 불러서 파티를 열었어요. 모두가 신발을 벗어야만 집에 들어올 수 있었어요.
Q.한국 문화가 익숙하겠지만 새롭게 배우는 것들이 많을 것 같아요. 가장 어려운 건 무엇인가요?
미국에서는 누군가에게 고개를 숙여서 인사하는 일이 없어요. 한국에서는 누가 나보다 나이가 많은지를 기억해서 한 살이라도 많으면 고개를 숙여 인사해야 해요. 굉장히 생소하고 지금도 어색하지만, 점점 익숙해지는 중이에요.
Q.농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농구 선수였어요. 태어날 때부터 농구에 둘러싸인 환경이었어요. 어렸을 때는 농구가 싫었어요. 오빠가 농구를 시작했을 때, 오빠나 오빠의 팀 동료들과 같이 농구하면서 놀았어요. 하다 보니 재밌어서 14살에 처음 배우기 시작했어요.
정말 많이 힘들었어요. 월, 수, 금요일 밤에 추가로 3시간씩 수업을 들어야 했고 토요일에는 8시간 수업을 들었어요. 금요일이면 친구들은 놀러 갔는데 저는 금, 토 모두 수업이 있어서 함께하지 못했어요. 힘들었지만 마치고 나니 충분히 가치 있고 행복했던 시간으로 남았어요.
2022 WKBL 신입선수 선발회에서 1라운드 1순위로 삼성생명의 입단한 키아나의 소감이다. 통역과 함께 무대에 섰지만, 그녀는 미리 준비한 종이를 꺼내 한국어로 소감을 전했다. 한국에 대한 키아나의 진심은 보는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안겼다. 개막에 앞서 팀 적응에 한창인 그녀는 동료들의 도움 속에 팀의 중심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Q.2022 신입선수 선발회에서 한국어로 소감을 말해 화제가 됐어요. 어떻게 한국어 소감을 준비할 생각을 했나요?
제가 가지고 있는 한국의 피, 어머니의 나라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마음을 보여 드리고 싶었어요. 외할아버지가 소감문을 직접 써주셨어요.
Q.한국 국가대표에 대한 꿈은 언제 결심하게 됐나요?
올해 5월쯤 미국 3대3 농구 국가대표 제의를 받았을 때 처음 생각했어요. 이 제안을 받으면 한국의 국가대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한국 국가대표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서 제안을 거절했죠.
Q.14번 등번호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할아버지가 대학교, 밀워키 벅스에 계실 때 14번을 달았어요. 아버지도 대학교까지 다 14번을 달았어요. 가족들이 항상 새기고 있던 번호라 LA 스팍스에서 14번을 달고 싶었는데, 14번을 달고 있던 선수가 있어 1과 4를 더한 5번을 골랐어요. 지금 삼성생명에서 14번을 달 수 있어서 기뻐요. 현재 LA 스팍스에 14번 선수가 빠져서 돌아가면 14번으로 뛸 예정이에요. 근데 오빠는 가족 번호인 14번이 아니라 이것저것 내키는 대로 번호를 달았어요. (웃음)
Q.롤모델은 누구인가요?
스카일러 디긴스-스미스(피닉스 머큐리) 선수요. 코트에서는 불같고, 밖에서는 부드러운 사람이라 닮고 싶어요. 제가 중학교 때 디긴스-스미스 선수가 근처 고등학교에 다녀서 농구하는 걸 볼 기회가 있었어요. ‘코트에서 정말 열심히 하는 선수다’라는 느낌을 받아서 영감을 많이 받았어요.
방에 노란색 이불 같은 소품들을 준비해 주셔서 좋았고, 방 번호가 214호라 가족 번호와 맞다는 점도 좋았어요. 가장 고마웠던 점은 할머니를 초대할 수 있었던 거예요. 할머니가 미국에 사신지 오래되서 한국에 있는 가족들을 볼 수 없던 시간이 길었어요. 할머니가 한국에 다시 와서 고향을 느낀 모습, 가족들 전체가 한국을 방문한 게 가장 좋았어요.
가장 다른 점은 사이즈예요. 한국 선수들은 키가 작은 편이고, 미국 선수들은 커요. 미국에서는 1대1이나 픽앤롤을 훨씬 많이 하고 빅맨이 스위치를 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하지만 한국은 스위치 수비가 많고 여기서 파생되는 플레이가 많아요. 몸싸움이 심해서 체력 소모가 큰 점도 달라요.
Q.WNBA와 WKBL 리그의 차이는 뭔가요?
제 키가 트라이아웃에서 175cm가 나왔지만 178cm이에요. WNBA에서는 제 키보다 작은 가드들을 볼 일이 거의 없지만 여기는 다들 작아요. 그래서 작은 가드들과 붙을 때 기분이 조금 묘해요. 다양한 사이즈 선수와 붙는 경험은 성장할 수 있고 발전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Q.삼성생명에서 받는 훈련은 어떤가요?
적응 중이에요. 미국에서는 한국만큼 훈련하지 않아요. 한국은 하루에 2, 3번 연습하는데 미국은 딱 한 번만 하고 2시간을 넘지도 않아요. 운동량 차이가 크기 커서 감독님이 배려를 많이 해주세요. 천천히 몸을 만들고 훈련량에 맞춰가는 중이지만, 빠지는 거는 없이 다 하고 있어요.
Q.훈련하면서 느낀 보완할 점은 무엇인가요?
경기 스타일에 더 적응해야 해요. 특히 수비요. 미국에서는 스위치를 하지 않기 때문에 빅맨을 맡아본 적이 없어요. 경기를 하면서 한국 수비를 배우고 적응해야 해요.
Q.감독님은 어떤 사람인가요?
감독님은 자상한 TMT(too much talker)예요. 배려를 많이 해주시고 자상하게 많은 이야기를 하시는 분이에요.
Q.삼성생명은 어떤 팀인가요?
젊기에 조금 거칠고 재미있는 팀이에요. 슛도 좋고 즐겁게 농구하는 팀이라고 생각해요.
Q.팀의 목표와 개인적인 목표는 무엇인가요?
팀의 목표는 당연히 우승이에요. 개인적인 목표는 신인상을 받는 것과 한국 국가대표가 되는 것이에요.
삼성생명에 소속되어 기쁘고, 삼성생명 팬들을 만날 날을 기대하고 있어요. 더 좋은 경기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저는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은 아니지만, 한국 소속 선수로서 한국농구가 국제적으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더불어 농구를 시작하는 어린 선수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선수가 되겠습니다.
키아나가 삼성생명에 지명되던 당시 모친 최원선 씨는 눈물을 훔쳤다. 키아나에 대한 걱정과 기쁨이 공존한 눈물이었다. 최원선 씨와 가족들은 드래프트에 앞서 키아나가 지내게 될 STC (용인 삼성 트레이닝 센터)를 방문하기도 했다. 키아나가 좋아하는 노란색으로 가득 찬 방을 보며 최원선 씨는 걱정을 내려놨다. 이후 가족들은 미국으로 돌아갔다. 여전히 가족을 그리워하는 키아나를 위해 최원선 씨가 엄마의 사랑을 가득 담아 편지를 썼다. 키아나는 어머니의 편지에 “저도 사랑하고 보고 싶어요. 엄마 아빠 모두가 자랑스러워 할 수 있는 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라고 답했다.
사랑하는 딸 키아나 스미스에게
한국에서 미국으로 돌아온지 한 달이 지났는데 네가 정말 정말 그립다! 네가 한국 문화에 그렇게 잘 적응하고 빨리 받아들인 것을 기쁘게 생각해. 근데 그렇게 놀랍지는 않아. 키아나는 바로 언제든 꿈을 좇아 짐을 챙겨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니까. 너는 항상 더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고 자신에게 더 좋은 기회를 주려고 노력했지. 농구장 안에서든 밖에서든 얼른 한국 사람들이 너를 알아갔으면 좋겠다. 너는 재능 있는 농구 선수 그 이상이야. 굉장히 겸손하고, 열정적이고, 의리도 있고, 똑똑해. 당연한 얘기지만 너는 나를 닮아 아름답단다. 하하하.
계속해서 너의 꿈을 좇았으면 좋겠고, 스스로를 믿었으면 좋겠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해. 여기까지 오는데 열심히 노력했잖니. 배구 슈퍼스타에서 고등학교에서 농구를 배우기까지의 여정에 너의 의지를 보여줬지. 나는 네가 한국에서 뭐든지 이룰 수 있는 아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아. 농구장 안에서든 밖에서든 항상 더 도전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엄마는 지금도, 앞으로도 너의 첫 번째 팬이야. 올해가 첫 번째 시즌이고 너의 모든 홈 경기에 갈 수는 없지만, 여기 캘리포니아에서 너를 위해 항상 크고, 열정적인 응원을 보낼게.
항상 너 자신에게 솔직한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 코트 안팎에서는 항상 팀원들을 서포트 해주고, 리더가 되고. 네가 마주하게 될 모든 일을 잘 감내하길 바라. 항상 하느님을 최우선으로 하고 모든 영광을 하느님께 돌리렴. 나는 너를 정말 많이 사랑한단다. 몇 달 뒤에 보자!
딸 키아나가 부모님에게 하고 싶은 말은?
사랑하고 보고 싶어요. 두 분이 자랑스러워 할 수 있는 딸이 될 수 있도 록 노력할게요
생년월일 : 1999. 06. 10
신장/체중 : 178cm/ 70kg
학력 : Tory(고)- 루이빌대
드래프트 : 2022년 1라운드 1순위
경력 : 2022~ 현재 WNBA LA 스팍스 (2라운드 4순위)
2022 ~현재 용인 삼성생명
#사진_유용우 기자, 본인 제공
Copyright © 점프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