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초점 없는 사람들, 사방에선 ‘제발 눈떠’ 소리만”…생존자의 증언

김가연 기자 2022. 10. 31.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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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새벽 서울 용산구 이태원 사고현장에서 경찰 및 소방구급 대원들이 현장을 수습하고 있는 모습./뉴스1

지난 주말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발생한 압사 참사로 154명이 사망한 가운데, 당시 현장에 있던 생존자와 목격자들은 참담한 심경을 전했다.

지난 29일 참사 발생 당일 이태원을 찾았었던 생존자 A씨는 “인파 속에서 이리저리 떠밀리며 1시간~1시간30분 정도를 끼어있었다”며 “옴짝달싹 할 수 없었던 건 30~40분”이라고 말했다. 인파 가장자리에 있었던 A씨는 “위쪽에 계시는 분들이 손 잡고 올라오라고 하셔서 구출됐다”고 했다.

A씨는 “오후 9시40분쯤부터 사람들이 더 몰렸고 통행이 불가능해졌다. 뒤에서는 밀고 앞에서는 넘어지게 돼 심각한 상황이 벌어졌다”며 “제 앞에는 몇몇 깔려 계신 분들도 있었다. 사람들을 다시 일으킬 틈이 너무 부족했다. 손을 쓰기가 많이 힘든 상황이었다”고 참혹했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는 뒤쪽에 있던 사람들이 ‘밀어!’라고 외치는 목소리를 직접 들었다고 했다. A씨는 “처음엔 네다섯명이 ‘밀어라’라고 외쳤고 그 이후에는 여러 명이 그 말을 따라했다”고 했다. 이어 “앞쪽에 많은 분들이 ‘뒤로, 뒤로’를 외쳤지만 뒤에서 외치는 소리에 노랫소리도 커서 못 들었던 것 같다”며 “(앞쪽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는데 사람들이 신나서 (소리를) 지르는 줄 알고 더 밀었다”고 했다.

A씨는 “의식을 잃어 눈에 초점이 없는 분들도 계셨고, 얼굴색이 변한 분들도 계셨다”며 “(탈출해 나와보니) 바닥에 CPR을 받고 있는 사망자들과 그들을 옮기는 소방관들이 많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반인들도 열심히 CPR을 하고 있었다”며 한 시민이 ‘일어나, 일어나’라며 친구로 보이는 희생자에게 CPR을 시행 중인 모습을 봤다고 전했다. 그는 “저는 살아 나왔는데 많이 다치신 분들도 있고 사망하신 분들도 계셔서 마음이 (좋지 않다)”고 덧붙였다.

배우 윤홍빈도 여자친구와 함께 이날 이태원을 찾았다가 참사 현장에서 희생자들의 구조활동을 도왔다고 밝혔다. 그는 30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메인 거리는 그야말로 카오스였고, 여자친구와 거리를 떠밀려 다니며 위험하다는 말을 수십 번은 했던 것 같다”며 “밀지 말라는 고성과 밀라는 고성이 뒤섞였다”고 말했다.

윤홍빈은 “(인파 속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수십분을 노력했다”며 “술집으로 들어가고 한시간 정도 후 밖에선 사람들이 한 두명씩 실려내려가기 시작했다. 압사사고를 예감했다”고 했다. 이어 “(구급대원들이) 골목에 사람들을 내려놓고 CPR을 실시하고 있었고, 인력이 부족해 저도 바로 달려갔다”며 “20분 넘게 CPR을 실시하고 여자친구도 팔다리를 주무르며 인공호흡을 하고 어떻게든 다시 의식이 돌아오기만을 함께 울면서 간절히 기도했다”고 말했다.

그는 “골목에서 수십명이 동시에 CPR을 실시하며 ‘제발 눈 떠’라는 말이 사방에서 들려왔다”며 “제가 있던 곳에서 의식이 돌아온 사람은 단 한 명 밖에 없었다. 제가 살리려 노력했던 분도 결국 살리지 못했다”고 탄식했다. 그러면서 “예방이 가능했던 참사였다”며 “두번 다시는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없도록 뼈저리게 노력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방송인 김영철도 사고 몇 시간 전 현장을 방문했었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김영철은 31일 SBS 파워FM ‘김영철의 파워FM’에서 “저도 촬영이 있어서 그날 (오후) 8시쯤 이태원에서 짧게 촬영을 진행하고 철수했다”며 “몇 시간 전 그 자리에 있었어서 더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그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갔더라면’이라는 생각도 들고, 생각하면 가슴에 통증이 느껴질 정도”라며 “2022년 10월 잊지 못할 깊은 상처로 남게 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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