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문화의 꽃 ‘외규장각 의궤’ 297책 전부 공개…귀환 10주년 특별전

도재기 기자 2022. 10. 31.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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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외규장각 의궤, 그 고귀함의 의미’ 1일 개막
의궤와 관련 자료 등 460여점 선보여
프랑스 약탈 145년 만의 귀환…10년 연구성과 발표
해외의 한국 문화재 21만여점…환수·활용 문제도 되새겨
1681년 숙종 임금이 인현왕후 민씨를 계비로 맞는 가례(혼례) 과정 등을 기록한 의궤인 ‘숙종인현왕후가례도감의궤’에 수록된 반차도의 일부.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약탈당한 지 145년 만인 2011년 봄, 프랑스에서 어렵게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 전량(297책)이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을 통해 공개된다.

중앙박물관은 외규장각 의궤 귀환 10주년 기념특별전 ‘외규장각 의궤, 그 고귀함의 의미’를 1일 특별전시실에서 개막한다. 외규장각 의궤 전부가 전시되는 것은 2011년 귀환 기념전에서 상당수를 선보인 이후 사실상 처음이다. 전시회에는 외규장각 의궤와 함께 경희궁의 궁궐 배치도인 ‘서궐도안’(보물) 같은 관련 자료, 그동안의 연구성과로 복원한 궁중 용품·복식 등 모두 460여점이 선보인다.

이번 특별전은 조선왕조 의궤 중 외규장각 의궤의 가치와 의미를 조명하고 보다 깊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다. 또 ‘대여’ 형식으로 돌아와 프랑스가 여전히 소유권을 가진 외규장각 의궤를 통해 문화재 보존의 중요성,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해외 문화재의 환수와 활용방안 등을 생각해보는 귀한 자리다.

1686년 인조 임금의 계비인 장렬왕후에게 존호를 올리는 의식 과정을 담은 의궤 ‘장렬왕후존숭도감의궤’(왼쪽)와 헌종 임금의 장례 과정을 기록한 의궤 ‘헌종대왕국장도감의궤’(1850년) 표지.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조선시대 보물창고, 외규장각 의궤

외규장각 의궤는 프랑스군이 1866년 병인양요 때 약탈한 ‘외규장각에 보관됐던 의궤’다. 외규장각은 정조가 창덕궁에 세운 규장각(왕실 도서관·학술연구기관)에 이어 1782년 왕실의 각종 중요 자료를 보다 체계적이고 안전하게 보관하고자 강화도에 건립한 규장각의 분소다. 규장각과 구별해 외(外)규장각으로 불렸다.

의궤(儀軌)는 ‘의식(儀式)의 궤범(軌範)’으로 ‘의식의 모범이 되는 책’이란 의미다. 국가적인 잔치나 왕실 구성원의 출생·혼례·장례 등 통과의례는 물론 제사, 궁궐·성곽의 건축, 무기·악기의 제작 등 중요 의식·행사의 준비와 실행과정·의례의 절차와 내용·비용과 참가 인원·유공자 포상 등 마무리까지 행사 전 과정을 글·그림으로 상세히 기록한 종합보고서다. 의식의 모범 전례를 만들어 후대가 예법에 맞게 행사를 치르고, 시행착오를 예방토록 하겠다는 뜻이 담겼다. 의궤는 특별기구(도감)를 통해 3~9부가 제작됐다. 그중 한 부는 오직 왕만이 보는 ‘어람용’, 나머지는 관청·실무자용인 ‘분상용’이다. 어람용은 최고의 장인·화가들이 최고의 재료로 가장 정성스럽게 만든 도서이자 예술품이다.

‘기록문화의 꽃’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조선왕조 의궤는 ‘조선왕조실록’과 함께 조선시대 국가 통치철학과 운영체계를 오롯이 품고 있다. 나아가 역사학·서지학은 물론 미술사·건축사·복식사·음악사 등의 연구에 획기적인 사료다. 조선의 역사와 문화 연구를 위한 ‘정보의 보물창고’인 셈이다. 의궤는 조선 건국 초기부터 제작됐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돼 지금은 임진왜란 이후의 의궤만이 남아 있어 더욱 귀한 문화재다.

1784년 정조 임금이 문효세자를 왕세자로 책봉하는 의례 과정을 기록한 의궤인 ‘문효세자책례도감의궤’(왼쪽) 속지에 수록된 ‘문효세자 왕세자책봉 옥인’ 그림과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된 실제의 옥인.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경희궁(서궐) 재건축 과정을 담은 ‘서궐영건도감의궤’(1832년, 왼쪽)와 영조 임금 당시 효장세자를 왕세자로 책봉하는 의례를 기록한 ‘효장세자책례도감의궤(1725년)’.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조선 왕실에서 제사를 지낼 때 술을 담아 두던 코끼리 모양의 술항아리인 ‘상준’(왼쪽)과 소 모양의 술항아리인 ‘희준’(국립고궁박물관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조선왕조 의궤 중 외규장각 의궤는 더 특별하다.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큰 국내외 유일본이 29책이다. 1630년 인조가 자신의 반정(인조반정)을 인정해준 인목대비의 장수를 기원하기 위해 연 잔치를 기록한 ‘풍정도감의궤’, 종묘 수리과정을 담은 ‘종묘수리도감의궤’(1637년), 숙종이 역모 사건을 막은 공신을 포상한 ‘보사녹훈도감의궤’(1682년), 세종 왕릉의 표석 건립 관련 기록인 ‘세종영릉표석영건청의궤’(1744년) 등이 대표적이다. 또 297책 중 289책이 최고 수준의 의궤인 어람용이다. 인조의 계비인 장렬왕후 장례 기록인 ‘장렬왕후국장도감의궤’(유일본)와 존호를 올린 의식을 기록한 의궤이자 표지의 격조 높은 아름다움으로 유명한 ‘장렬왕후존숭도감의궤’(1686년). 효종과 헌종의 장례과정을 담은 ‘효종국장도감의궤(1659년)’와 ‘헌종국장도감의궤’(1850년), 영조 때 효장세자를 세자로 책봉하는 과정을 기록한 ‘효장세자책례도감의궤(1725년)’, 경희궁(서궐) 재건축 과정을 기록한 ‘서궐영건도감의궤’(1832년) 등이다.

31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외규장각 의궤 귀환 10년 기념 ‘외규장각 의궤, 그 고귀함의 의미’ 특별전 언론공개회에서 참석자들이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다.연합뉴스
31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외규장각 의궤 귀환 10년 기념 ‘외규장각 의궤, 그 고귀함의 의미’ 특별전 언론공개회에서 참석자들이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다.연합뉴스
31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외규장각 의궤 귀환 10년 기념 ‘외규장각 의궤, 그 고귀함의 의미’ 특별전 언론공개회에서 참석자들이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전시는 어람용 의궤가 지닌 고품격의 가치와 기록문화의 정수를 살펴보고, 조선의 예(禮)를 통한 품격의 통치철학 등을 이해하는 과정으로 구성됐다. 의궤 속에 다양한 색으로 행차 모습을 그려놓은 반차도나 특정 행사 장면·건물 구조·행사용 물건 등을 그린 도설 등은 뛰어난 색감으로 생생하고 선명하게 다가온다. 또 의궤를 토대로 복원한 각종 궁중 용품과 의복, 영상물 등도 흥미롭다. 특히 프랑스군에 약탈된 후 지금은 영국 국립도서관에 있는 ‘기사진표리진찬의궤’(1809년 순조가 할머니인 혜경궁을 위해 연 잔치 기록) 복제품은 관람객이 직접 넘겨보며 어람용 의궤의 품격을 느낄 수 있다.

험난한 환수…아직 해외 한국 문화재 21만여점

외규장각 의궤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지만 소유권자는 한국이 아니라 프랑스다. 귀환 당시 소유권까지 이전하는 완전한 형식의 문화재 ‘반환’이 아니라 5년 단위로 갱신되는 ‘대여’ 형식으로 돌아왔다.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은 외규장각에서 의궤를 약탈하고 상당수 조선 왕실 자료 등을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다. 하지만 외규장각 의궤 귀환 협상 당시 자국이 보유한 국보급 문화재는 타국에 양도가 불가능하다는 국내법을 들어 ‘대여’ 형식을 고수했다.

약탈이 분명한 문화재인 만큼 소유권 등 영구적 반환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거셌지만 현실을 감안해 대여 형식으로라도 일단 국내로 들여와야 한다는 견해도 많았고, 결국 5년마다 ‘대여’를 ‘갱신’하는 방식으로 귀환했다. 약탈 이후 행방이 묘연하던 외규장각 의궤를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이던 박병선 박사(1923~2011)가 1975년 찾아낸 이후 36년, 환수 여론이 높아지면서 양국 정부가 협상을 시작한 지 20년, 약탈당한 지 145년 만에야 고국으로 돌아온 것이다.

병인양요 때 약탈된 외규장각 의궤가 145년 만에 귀환한 지난 2011년 4월 서울에서 열린 귀환 환영대회의 한 장면. 경향신문 자료사진
프랑스군이 병인양요 당시 강화도 외규장각에서 약탈해 간 외규장각 의궤가 145년 만인 2011년 인천공항 화물터미널에 도착한 뒤 국립중앙박물관으로의 이송을 위해 무진동 차량에 옮겨지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사실상 영구적 임대여서 국내 소장과 연구는 가능하다. 하지만 소유권이 없다보니 국보·보물 같은 국가지정문화재로의 지정이 어려운 등 제약도 있다. 지난해 갱신 당시 프랑스는 제3자가 상업적 목적으로 의궤 사진을 이용하려면 향후 사용료를 내야 한다고 요구했다. 중앙박물관 측의 반발로 없던 일이 됐지만 소유권 문제의 중요성을 잘 드러낸 사례다.

외규장각 의궤는 해외로 유출돼 있는 우리 문화재의 환수가 현실적으로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보여준다. 문화재 소장국은 갖가지 이유를 들어 반환을 거부한다. 불법 반출만이 아니라 선물·구입 같은 합법적 경우도 있는 만큼 유출 경위 파악도 쉽지 않아 협상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더욱이 관련 국제법·국제협약들에 실효성이 없는 게 국제적 현실이다.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는 25개국에 21만4200여점(2022년 1월 기준)이다. 이 숫자는 공식 확인된 문화재로 비공식적으로는 최소 2배에 이를 것으로 본다. 일본이 전체의 44%로 가장 많고 미국·독일·중국·영국 순이다. 프랑스에도 그 유명한 ‘직지심체요절’을 비롯해 6300여점이 있다.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정부와 민간의 관심과 환수 노력, 나아가 현지에서의 다양한 활용 방안 모색이 요구된다.

경희궁(서궐) 궁궐 배치도인 ‘서궐도안’(보물, 고려대박물관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중앙박물관은 특별전 기간 동안 박병선 박사의 11주기를 맞아 그를 기억·추모하기 위해 11월 21~27일 무료관람을 실시한다. 또 그동안의 연구성과를 담아 이미 구축한 ‘외규장각 의궤 데이터베이스’(https://www.museum.go.kr/uigwe/)에 이어 학술대회, 대중강연도 연다.

국립중앙박물관 윤성용 관장은 “조선 기록문화의 정수인 외규장각 의궤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다양한 관련 자료 등으로 전시를 구성했다”며 “이번 특별전을 통해 조선왕조 의궤, 특히 외규장각 의궤의 드높은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전시는 내년 3월19일까지.

31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외규장각 의궤 귀환 10년 기념 ‘외규장각 의궤, 그 고귀함의 의미’ 특별전 언론공개회에서 참석자들이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도재기 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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