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제적 고금리’ 시행 않으면 제2 외환위기 올 수도
● 인상 시기 놓치면 고통 더 커져
● 구조조정·성장 동력 보충 기회
● “野, 民生 위한다면 정부에 협력해야”
그럼에도 물가는 꺾이지 않고 있다. 이번 겨울 세계는 더 추울 듯하다. 천연가스 부국인 러시아가 동원령을 내려 '유럽의 빵 공장'으로 불리는 우크라이나와 결전에 나서고 있다. '세계의 공장' 중국도 '제로 코로나 정책'과 대만에 대한 공격 태세를 유지하려 한다. 푸틴 체제와 시진핑 체제가 바뀌지 않는 한 에너지·식량부터 최종 소비재에 이르기까지 글로벌 공급망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은 물가 불안 심리를 잠재우기 위해 고금리·강달러 정책으로 나아가고 있다.
선제적 금리인상 없인 제2 외환위기 올 수도
어떤 나라도 고금리정책이 반가울 리 없지만 현재 상황에선 불가피하다. 특히 자원 해외의존도와 수출 비중이 매우 높은 한국은 적극적 대응이 필요하다. 물가·환율은 한국 혼자서 결정할 수 없으나 금리는 가능하다. 지금까진 단계적·점진적 금리인상 정책이 적절했지만 한계가 있다. 이미 외국 자금 이탈로 주가가 꺾여 하락 폭이 러시아 다음으로 컸다.금리인상 시기를 놓친다면 경제에 거품이 쌓이고 위기는 더 커진다. 현재 디플레이션과 정부부채로 고심하는 일본, 급격한 성장 동력 저하에 시달리는 중국이 좋은 예다. 일본은 수출을 늘린다는 명분으로 저금리·엔저 정책을 유지하다가 경쟁력이 저하됐다. 중국은 미국 등의 경제제재로 수출이 어려워지자 내수경제를 키운다며 저금리·저위안화 정책을 시행했지만 경제성장률이 절반으로 떨어졌다. 글로벌 기업의 중국 이탈이 늘어나고, 또 빨라지고 있다. 한국은 가계부채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약 105%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 중 4번째로 높고 상승률은 1위다. 기업부채 비율도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한국은 지난 5년 사이 정책 실패로 경제 거품이 커졌다.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을 한다며 인위적으로 임금을 높이고 재정으로 일자리를 만들었다. 또 공급 규제를 통해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려 했지만 집값과 전월세 가격은 오히려 고삐 풀린 듯 올랐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1인당 GDP 대비 한국 평균임금은 2020년 기준 118.5%다. 일본(107%)과 EU(91.7%)보다 높다. 또 한국생산성본부에 따르면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2015~2020년 9.8% 상승했지만 시간당 임금은 25.6% 상승해 격차가 3배에 가깝다. 주택이 창출할 수 있는 수익, 즉 자산 가치 대비 실제 거래가격은 서울이 최소 38%, 경기도는 58%나 높다(한국경제연구원).
충격을 피할 수 없다면 최소화하고 빠른 복구에 힘쓰는 것이 상책이다. 가계·기업 부채가 심각하고 집값과 임금에 거품이 많은 만큼 금리인상에 따르는 고통은 클 것이다. 금리를 인상하면 상환 부담이 커지고 집값 및 실질임금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고통을 감수하지 않으면 거품이 커져 '진짜 경제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 멀쩡한 기업마저 줄줄이 문을 닫고, 실업자가 넘치며 제2의 외환위기가 올 수 있다. 차라리 예방주사로 병을 피하듯, '선제적 고금리정책'을 시행하는 것이 사후에 어쩔 수 없이 금리를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올리는 것보다 더 낫다.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은 AA로 양호하다. 외환보유고도 국내총생산(GDP)의 25%로, 이를 강점으로 내세우는 중국(18%)보다 훨씬 많다. 또 금리인상과 물가 급등으로 인한 고통은 미국과 유럽보다 적고, 고금리가 지속되는 기간도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글로벌 경기가 악화하면서 물가상승 압력은 둔화하고, 중국과 러시아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면 중간선거를 끝낸 미국은 고금리·강달러 정책을 거둬들일 가능성이 높다. 이리 되면 외국 자금의 한국 유입도 늘 것이다.
과거 고금리정책 모두 轉禍爲福 계기 돼
지금까지 한국의 고금리정책은 비교적 성공적이었다.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반의 석유위기, 1997년 말부터 2000년대 초반의 외환위기, 2007년 말부터 2010년대 초반의 금융위기까지 3차례 경제위기를 모두 고금리정책으로 돌파했다. 다른 국가에 비해 경제위기와 고금리의 지속 기간은 길지 않았고, 회복 속도는 빨랐다. 이때마다 미뤄왔던 산업구조조정이 빠르게 시행됐고, 저생산성 늪에서 빠져나와 성장 동력을 보충할 수 있었다.경제위기 예방·해결에 성공하려면 정부가 안정적이어야 한다. 민주주의일수록 더 그렇다. 경제위기 해결에 불가피해 고금리정책을 시행하더라도 불만은 따르기 마련이다. 이를 달래지 않으면 위기 해결 사령탑인 정부가 흔들리게 된다. 고금리정책에 따르는 정치적 딜레마를 극복하지 못하면 경제위기는 악화한다. 중남미의 경제위기가 반복되고, 남부 유럽이 경제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다.
어떤 정책이든 과하면 독이 된다. 경제위기 예방을 위해 고금리정책을 쓰더라도 부작용을 보완할 별도 정책이 필요하다. 핵심은 고금리와 경기 악화에 따른 민생고를 덜어주고, 고금리체제가 끝나면 경제가 빠르게 회복되도록 만들며, 정책의 기민한 대응 능력과 새로운 정책 발굴 능력을 제고하는 데 있다. 또 고금리정책으로 인해 알짜 기업마저 파산하지 않도록 지원정책을 정교하게 만들어야 한다. 대량실업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사가 협력해 임금과 근로시간제도를 유연화하게 만들며 가계가 부채 상환 부담 때문에 무너지지 않도록 기간 조절은 물론 부동산 현금화로 부채를 줄이는 등 적극적 금융지원책 도입도 필요하다.
고물가·고환율·고금리 '3고' 문제를 해결하려면 근본적 대응이 필요하다. 당면한 경제위기가 글로벌 정치 질서 변화로 기존의 공급망 대신 새로운 공급망을 찾는 과정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근본적 대응은 고금리정책을 넘는 경제사회 개혁을 의미한다.
주요 선진국은 1990년대 정부 개혁과 규제개혁은 물론 노동·교육·복지 개혁에 매달렸다. 덕분에 일본과 독일에 위협받던 미국은 고성장·저실업에 성공했고, 스웨덴 등은 여기에 더해 재정위기까지 해소했으며, 독일은 '유럽의 병자'에서 '유럽의 슈퍼스타'가 됐다.
여야 대립 멈춤이 선결 과제
당면한 글로벌 경제위기 대처에 따라 각국의 위상은 확연히 달라질 듯하다. 위기에 적극 대응한 나라는 '성장의 날개'를 달지만 그러지 않은 나라는 '침체의 늪'에 빠질 것이다. 공세적 고금리정책을 선택한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반도체지원법 등으로 첨단산업으로 구조 전환을 신속히 함으로써 중국의 추격을 물리치는 데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중국은 규제를 강화하는 '공동부유' 등 반개혁적 정책으로 세계의 공장이라는 지위를 잃고, 규모를 파악하기 힘든 지방정부 부채와 부동산시장 붕괴로 역(逆)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제로 금리와 엔저에 기대는 일본이나 원전을 포기하고 러시아 천연가스에 의지한 독일도 전망이 어둡다.한국은 고금리정책을 따르나 강도는 낮고, 정부가 개혁을 추진하나 답보 상태다. 국회 의석수 절반을 훌쩍 넘은 야당은 증세와 재정 확장을 요구한다. 여야 대립이 지속되면 경기회복과 물가안정은 그만큼 더뎌진다. 경제위기가 끝나도 성장 전망이 밝지 못하다.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고금리정책이 필요해도 주저하고, 증세·재정 확장 압력이 국채 발행을 늘리게 만들지 않을까 우려하게 된다. 이를 피하도록 야당은 국가 미래를 생각해 대승적 자세를 보여야 한다. 민생을 강조하는 만큼 경제위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와 협력하는 것이 도리다.
김태기 일자리연대 집행위원장(前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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