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39번샵'과 계속되는 성착취 인신매매
뉴스타파는 지난 10개월 동안 한국인 여성을 고용하는 호주 성매매 산업의 실태를 호주 매체들과 함께 협업 취재했다. 취재 결과 성매매 조직들은 호주 경찰의 수사망을 피하는 교묘한 수법으로 여전히 조직적인 한국-호주간 성매매 산업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악명높은 업주 김매자… 출소 뒤에 다시 성매매 업소 불법 운영
지난 2013년 한국인 등 아시아 여성 100여 명을 호주로 불러 들여 착취 감금하며 성매매를 시킨 '조선족' 출신 김매자 씨의 횡포가 호주 사회에 알려졌다. 김 씨는 호주 경찰에 의해 구속됐고 국내에서도 김매자를 도와 피해자들을 모집해 송출하는데 관여한 알선 브로커, 사채업자 등이 처벌을 받았다.
호주 멜번이 위치한 빅토리아주에서는 성매매가 합법이지만, 범죄경력이 없고 주 정부 면허를 취득한 업주가 업소를 운영해야 한다. 종사자들도 하루 최대 6시간까지만 일할 수 있다. 그러나 김매자, 일명 '미미'는 가족과 중국인 지인을 동원해 호주 멜번에서 성매매 업소 최소 네 곳을 운영하며 한국식 성매매업소를 운영했다. 김 씨는 면허 없이 호주인 바지사장을 내세워 업소를 불법적으로 운영하다 호주연방경찰(AFP)에 덜미가 잡혔다.
김 씨 업소에서 인신매매, 착취, 감금 상태에서 일하던 여성 가운데 일부가 신고를 했고, 호주 경찰은 수 년에 걸친 증거 수집 노력 끝에 2013년 7월 김매자를 체포했다. 김 씨와 일당 3명은 면허 없이 성매매 업소를 운영해 범죄수익을 취득한 뒤 이를 세탁한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 받았다.
호주와 한국 법원의 판결문에 따르면, 김 씨는 지난 2008년 경부터 안정적으로 한국인 여성들을 데려오기 위해 한국의 알선책과 사채업자 등을 동원했다. 김 씨는 사채업자와 알선책의 도움으로 취약한 경제적 상황에 놓인 한국인 여성들을 자신이 운영하는 호주 업소로 송출받았고, 그 대가로 알선료와 성매매 한 건당 발생하는 수수료를 제공했다.
그런데 올해 1월, 호주 일간지 ‘더 에이지’와 호주 방송사 ‘채널 나인’ 취재진은 이 악명 높은 김매자 씨가 출소 뒤에 다시 바지사장을 내세워 성매매 업소를 운영하고 있고, 거기에서 한국인 등 여성들이 여전히 감금 착취를 당하고 있다고 뉴스타파에 알려오면서 국제 협업 취재를 제안했다. 뉴스타파는 제안에 응해 취재를 시작했다.
과거 김매자 업소 피해자, 감시와 통제 통한 감금 착취 증언해
취재진은 우선 10여년 전 김매자가 운영한 업소에서 일하다 경찰에 신고하고 탈출한 피해자를 국내에서 만났다.
피해자는 지인으로부터 호주 업소는 국내 업소보다 근무 환경이 자유롭고 손님들도 힘들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호주에 도착한 뒤 겪은 실제 환경은 원래 듣던 설명과 완전히 달랐다고 말했다.
업주와 업소 직원들의 감시와 통제는 사실상의 감금을 방불케 했다. 처음에는 한국, 중국 등 여러 국적의 여성들 10명 가량이 별도의 숙소에 생활을 했지만, 나중에는 아예 업소에서 의식주까지 해결해야 했다. 영어가 서툴러 손님에게 의사 표현도 하지 못했다. 업주는 ‘호주 사회가 무섭다’고 겁을 줬다. 그러면서 ‘여권을 잃어버리면 안 되니 자신에게 여권을 맡기라’고 한 뒤 여권을 가져갔다. 식사, 휴식, 외출 등 모든 행동에 업주나 직원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정해진 휴일도 없이 일했고, 아파서 일을 할 수 없는 경우 대신 일할 여성의 모든 교통비를 부담해야 했다. 24시간 대기 상태로 김매자의 업소 여러 곳을 돌며 번갈아가며 일하고, 손님이 부르는 장소에서도 일해야 했다. 업소 밖 모든 이동은 업소 직원이 운전하는 차량만 이용할 수 있었다. 업소 직원은 여성들간 대화를 녹음하기도 했다.
근무 환경은 전혀 안전하지 않았다. 마약과 폭력에 노출돼 있었다. 성매수자나 그 가족으로부터 폭력과 협박을 당하는 일도 일상적이었다. 피해자는 취재진에게 “요즘 말로 하면 완전히 가스라이팅을 당했고 착취를 당했다”고 말했다.
김매자의 ‘39번지’... 13년 전 조직원이 지금도 출근
김매자가 출소 뒤 바지 사장을 내세워 운영하고 있는 호주 멜번 성매매 업소의 이름은 ‘39번지’다. 이는 호주 경찰의 수사로 확인된 사실이다. 호주 협업 취재팀은 ‘39번지’ 앞에서 흥미로운 영상을 촬영해 뉴스타파에 공유했다.
지난 2009년 김매자가 운영하던 한 업소 앞에서 한 호주인 청년이 피살됐다. 이 호주 청년은 해당 업소에서 일하던 한국인 여성의 연인이었다. 그는 여자친구의 인신매매 피해 사실을 인지한 뒤 여자친구를 구조하려다 업소의 중국인 직원과의 언쟁을 벌였고, 얼마 뒤 숨진 채 발견됐다. 시신이 발견된 현장에서는 중국인 직원이 휘두르던 흉기가 발견됐지만 이 중국인 직원은 ‘정당방위’로 혐의를 벗었다.
그런데 호주 취재진이 촬영한 영상에는 앞에서 언급한 살인사건에 연루됐던 당사자인 중국인 직원이 '39번지' 업소로 출근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즉 13년 전 김매자의 업소에서 일했던 인신매매 조직원이 다시 김매자의 업소 운영을 돕고 있는 것이었다.
호주 취재팀이 ‘39번지’ 내부에 잡입 취재한 또 다른 영상에는 업소 직원이 “22살이나 23살 정도인 한국인 여성이 있다”고 말한 뒤 곧이어 한국인 여성이 손님에게 인사하는 모습이 담겨있었다. 영상을 취재한 호주 취재팀은 “한국인 여성들에 대한 착취와 감금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 모집 방식의 진화 ... 업주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취재진은 한국 여성들이 호주로 유입되는 과정을 취재하기 위해 과거 김매자 업소 소속 여성들의 비자 연장 업무를 대행한 것으로 알려진 호주 현지의 한인 유학원 원장에게 직접 연락했다.
“급하게 목돈이 필요해 멜번 현지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하니 유학원 원장은 아는 지인 중 마사지 등 성산업 관련 업주를 소개시켜줄 수 있고 호주로 가기 위한 비자 발급 과정도 도와줄 수 있다고 제안했다. 코로나19 이후 한국인 종사자가 줄어들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것이라 설명했다.
얼마 뒤 한국에 온 유학원 원장과 직접 만났다. 그는 “지인이 운영하는 마사지업소에서 마사지와 성매매까지 하면 하루에 50만원에서 백만원은 벌 수 있다”고 말했다. “프리랜서처럼 하루에 원하는 만큼만 일할 수 있고, 강요가 없는 자유로운 분위기”라고도 했다. 유학원 원장의 얘기는 10년 전 김매자의 업소에서 일했다는 피해자가 들었다는 얘기와 비슷했다.
10년 전과 달라진 점도 있었다. 취재진은 구인광고를 통해 호주 시드니의 한 성매매업소에 연락해 보았다. 앞서 접촉했던 유학원 원장의 설명과 비슷한 안내를 받았다. 선불금을 제공하지 않지만 숙식을 해결하게 해줄 테니 관광비자를 받아 스스로 오라고 권유했다.
적은 비용으로 쉽게 모바일 앱으로 발급할 수 있는 관광비자로 일단 호주에 들어오게 한다. 입국 후 학생비자 등으로 바꾸고 체류기간을 연장하게 한다. 과거와 달리 선불금 없이 입국해 일하게 한다. 이 같은 조치는 한국 여성들이 호주로 유입되는 과정에 성매매 업소 업주나 직원이 개입한 흔적을 지운다. 즉, 만약 성매매업소에서 착취를 당한 뒤 경찰에 신고한다고 해도 인신매매 피해 사실 등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아진다는 뜻이다.
호주 경찰 "물리적인 구속 없어도 인신매매죄 성립돼"
취재진은 '39번지' 업소의 운영 여부를 확인하고 김 씨 일당을 비롯한 현지 성착취 인신매매 조직을 오랫동안 수사했던 호주연방경찰(AFP)을 만나기 위해 호주 멜번으로 향했다.
호주 경찰은 이들 조직의 범행 수범이 지난 10년 간 진화해 왔다고 말했다. 제임스 체셔 호주 AFP 전 인신매매과 수사관은 "(김씨) 조직은 과거에는 모든 여성들의 여권을 빼앗았다. 그러다가 법집행기관에서 (인신매매의) 시그널로 본다는 것을 깨닫고 다 돌려주는 등 업소 운영 방식을 바꿨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같은 조직은 업소 내 여성들이 관리자로 승진시키는 등 착취 피해자를 행위자로 만들기 때문에 조직원 일부가 사법처리 되더라도 조직 자체가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이라 설명했다.
성착취 인신매매 조직의 수법 진화에 맞춰 호주연방경찰도 인신매매 범행의 기준을 정립했다. 이제는 물리적인 구속이나 폭력이 없어도 인신매매 범행이 성립되는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호주 연방경찰이 적용하고 있는 ‘인신매매 피해자 식별 지표’는 다음과 같다.
호주 경찰의 인신매매 피해자 지표에 따르면, 김매자 일당의 10년 전 수법은 물론 현재 수법 역시 ‘인신매매’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다.
‘조력자들’의 역할
취재진은 앞서 한국에서 만남을 가졌던 유학원 원장을 호주 현지에서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기자 신분임을 밝히고 김매자 일당과 어떤 관계인지 물었다.
그는 성매매 업주들에게서 금전적 대가를 받고 여성들을 소개한 것이 아니었고, 단지 비자 수속만 대행해줬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2019년 호주 수사당국의 조사를 받았지만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고도 주장했다.
제인 크로슬링 호주 AFP 인신매매과 과장은 이른바 '조력자'들이 "현장에서 틈새를 메우는 역할을 한다"며 "이들이 없으면 (인신매매)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기에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고 말했다.
체셔 전 인신매매과 수사관은 '조력자'들이 이 같은 여성들에게 최적의 비자가 무엇인지, 특정 비자를 신청하며 신청 목적을 어떻게 증명할지, 비자를 연장하는 방법에 정통해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해석에 대해 원민경 법무법인 원 변호사도 이같은 행위가 "다 방조 내지는 교사"라며 "이 알선 조직과 어느 정도 결합되는지에 따라서는 사실상 공동정범으로까지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 신고 그 후 ... 피해자 인정도 가해자 기소도 어려워
호주 성매매 업소로 간 많은 한국인 여성들이 업소를 벗어나기 위해 성착취 피해를 호주 경찰에 신고한다. 그러나 대다수가 가해자 검거 수사에 협조하며 호주에 머물기보다 피해 사실만 간단히 진술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한다. 전문가들은 보복의 두려움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그러나 두려움을 딛고 수사에 협조한다고 해도 호주 당국에게서 인신매매 피해자로 인정받는 경우는 드물다. 취재진이 앞서 한국에서 만났던 피해자는 인신매매 피해 사실 신고 뒤 김매자 조직과 관련해 중요한 정보를 제공했는데 도중에 갑자기 수사 종결 통보를 받았다. 피해자로 인정받지도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당시 김매자 사건을 수사했던 호주 경찰은 김매자 일당을 인신매매 혐의로 기소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일관성 있는 피해 여성의 법정 증언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인신매매 혐의 대신 자금 세탁 혐의를 적용했다는 것이다.
다니엘 우드워드 호주 AFP 전 인신매매과 과장은 "인신매매로 기소하려다 혐의를 바꿔야 했기에 (함께 기소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사라졌다"며 "전체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인신매매 혐의로 기소해야 하는데, 자금세탁 혐의로는 (인신매매 과정에)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조직들을 함께 기소할 수가 없었다. 인신매매죄로 접근하는 게 상황이 복잡하다"고 말했다.
크로슬링 현 인신매매과 과장은 업주들이 피해자들에게 심어준 보복의 두려움과 트라우마 피해자의 특성상 일관성 있는 법정 증언이 힘들다고 설명했다. 그는 "트라우마를 가진 피해자들을 법정에 세우는 데는 특별한 어려움이 있다"며 "법정에서 신뢰성을 의심받을 수 있기 때문인데 이런 의심을 극복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성착취 인신매매 피해자 상담 경험이 많은 이미혜 한국임파워먼트상담연구소 소장은 "성매매, 성폭력, 가정폭력 등 트라우마틱한 경험을 하면 이 같은 기억이 과거로 넘어가지 않는다. 너무 감당할 수 없는 사건이기 때문"이라며 "현재로 자꾸 불쑥불쑥 찾아오기 때문에 플래시백이라는 증상도 있는 것이고 진술을 할 때 이야기들이 왔다 갔다 일관성이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의 ‘인신매매 피해자보호법’, 내년 시행되지만 가해자 처벌 조항 없어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한국에서도 지난해 인신매매 피해자 보호법이 국회를 통과해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된다. 그러나 이 법에는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은 없어서 반쪽짜리 법안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장다혜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인신매매 피해자 보호법 제정 전 국회에서 진행된 공청회에서 별도의 가해자 처벌법 제정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는 "처벌법이라고 하는 것이 인신매매 범죄에서는 중요한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나라에서는 처벌 규정이 지금 현재 형법 규정에 있는 규정으로 충분하다라고 하는 정부의 인식"이 강하다고 말했다. 그는 형법에 법률이 있긴 하지만 실제로 인신매매를 전담하는 수사 조직이 없어 적극적인 대응이 어렵다고 말했다.
한국 경찰 조직 내 관련 부서는 말을 아꼈다. 성매매 피해 및 성착취 목적 인신매매 분야 수사를 총괄하는 경찰청 국사수사본부는 최근 몇년 간은 이 같은 사건은 진행된 적 없다고 밝혔다. 경찰청 외사과는 호주는 전 세계적으로 인터폴 협업 수사가 활발한 국가라며 협업 요청이 오면 적극 협조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뉴스타파가 이 보도에서 ‘성착취 목적의 인신매매’라는 용어를 사용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국내법을 보면 지난 2004년부터 시행된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이하 성매매처벌법)에는 '성매매 피해' 또는 '성매매 목적의 인신매매'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이들 법에서는 ‘성매매 목적의 인신매매’를 성매매를 하게 할 목적으로 "위계, 위력, 그 밖에 이에 준하는 방법으로 대상자를 지배ㆍ관리하면서 제3자에게 인계하는 행위"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본 보도는 UN이 2000년 제정하고 한국 정부는 2015년 비준한 '국제조직범죄방지협약 여성 및 아동 인신매매 예방 및 억제를 위한 의정서'에 등장하는 '성착취 목적의 인신매매'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이 의정서는 이 용어를 "위협이나 무력의 행사 또는 그 밖의 형태의 강박, 납치, 사기, 기만, 권력의 남용이나 취약한 지위의 악용, 또는 타인에 대한 통제력을 가진 사람의 동의를 얻기 위한 보수나 이익의 제공이나 수령에 의하여 사람을 모집, 운송, 이송, 은닉 또는 인수"하는 행위로 정의하고 있다. 호주를 비롯한 다수의 선진국에서도 이 개념을 차용하고 있다.
뉴스타파 김지윤 jiyoon@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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