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사고 오르막길’ 앞 수놓은 추모화…애도 줄잇는 이태원

2022. 10. 31.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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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사고현장’ 찾는 시민 발길 이어져
헌화·메모등 수십개…사망자 수만큼 헌화하기도
시민 “늘 익숙하게 지나치던 길…마음 무거워”
“시간 지나도 기억 생생해…괴로워” 트라우마 호소
10월 31일 오전 9시께 서울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서 한 시민이 지난 29일 이태원동에서 발생한 참사를 추모하기 위해 서 있다. 박혜원 기자

[헤럴드경제=김영철·박혜원 기자] 핼러윈을 이틀 앞둔 지난 10월 29일 늦은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서 전례 없는 대규모 참사가 발생했다. 희생자들은 모두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현장엔 이들을 기리기 위한 추모장소가 마련됐다. 31일 오전 일대 상인들부터 출근길에 오르던 직장인 등 수많은 시민이 추모 현장에 멈춰서 진심 어린 애도를 표하는 모습이 수시로 반복됐다.

이날 헤럴드경제가 찾아간 서울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 바깥에는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하얀 꽃다발이 수북이 놓여 있었다. 이날 오전 7시부터 시민 한두 명이 현장을 찾아 놓여 있는 꽃들 앞에 메모를 남기거나 묵념을 하기도 했다. 시민 일부는 헌화 앞에서 무릎을 꿇고 목 놓아 울기도 했다.

떠나간 이들의 마지막 길을 기린다는 의미로 소주와 막걸리 등 술과 종이컵, 과자와 같은 스낵이 꽃송이 틈에 놓여 있었다. 현장에서 숨진 이들에게 전하지 못한 말을 남긴 메모도 화분과 역사 밖 구조물 곳곳에 부착돼 있었다.

한 메모에는 ‘정말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며 ‘제 친구, 동생, 언니, 오빠였을 사람들이 이렇게 허무하기 가시다니 너무 안타깝습니다. 부디 그곳에선 아프지 말고 행복하길 바란다’고 적혀 있었다.

31일 오전 서울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 주위에 지난 29일 이태원동에서 발생한 참사를 추모하기 위한 꽃송이와 메모가 쌓여 있다. 김영철 기자

한 시민은 참사 현장으로 들어가는 골목 바로 옆 상점 앞에 참사로 사망한 시민 수인 154송이의 새하얀 국화를 화분에 담아 두고 가기도 했다. 화분에 붙은 노란 종이에는 ‘그때 나이에 할 수 있는 것을 해보려 이 거리에 온 순수하고 열정 넘치는 젊은이들에게 닥친 불의의 사고에 마음이 미어진다. 더 이상의 희생자가 나오지 않았으면 하며 딱 154송이의 국화 꽃을 헌화합니다’는 글귀가 있었다.

오전 9시가 가까워지자 출근길에 오른 시민 여럿이 지하철 역사에 들어서기 전 현장에서 잠시 애도하기도 했다. 몇몇 시민은 헌화를 하기 위해 “꽃은 어디에서 구하면 되느냐”며 꽃을 미리 챙겨온 다른 시민에게 묻기도 했다.

이태원동 인근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연모(60) 씨는 “늘 익숙하게 지나다니는 길인데 오늘은 유달리 분위기가 무겁다”며 “사고가 벌어졌다는 소식만 접하고 마음이 아파 사망자 수 등 구체적인 소식은 애써 피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서울 이태원동에 거주하는 고모(33·여) 씨는 이날 놓여 있는 꽃들을 말없이 바라보다 발길을 옮겼다. 그는 “핼러윈 분위기를 보려 그저께(29일) 밤 9시45분께 잠시 이태원역을 찾았지만 너무 많은 인파로 출구 밖을 나오지도 못하고 다시 돌아갔다”며 “1번 출구와 사고 현장까지는 불과 50m 거리였는데 사고가 발생하기 직전이었음에도 상황 파악도 어려울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고씨는 “‘심정지 30명’이라는 기사까지 보고, 밤새 사이렌 소리를 들으면서 잤다”며 “(하지만) 사고 수습이 잘 되고 있다고 생각했지, 이렇게 사망자가 많아질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10년 전까지만 해도 이태원에서 핼러윈 축제가 있으면 일대 차량을 통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그런데) 올해는 왜 차량통제를 하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통제만 했더라도 골목에 지나치게 사람이 밀집하는 것은 막을 수 있었을 텐데…”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31일 오전 서울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 주위에 지난 29일 이태원동에서 발생한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하얀 꽃들이 놓여 있다. 김영철 기자

이른 아침부터 친구와 현장을 찾은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건국대 재학생 존 마맛저닙(22) 씨는 참사가 발생한 골목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그러나 그날의 참상이 잊히지 않아 며칠 밤을 지새우다 이날 오전 현장을 다시 찾게 됐다고 했다.

마맛저닙 씨는 그날의 현장에 대해 “차마 보면 안 됐을 광경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말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사람들이 줄줄이 넘어지면서 거리 여기저기에서 ‘살려주세요’라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인근 클럽에서 나오는 음악소리 때문에 모두 묻혔다”며 “한국말이 서투르지만 사람들이 도움을 구하려 외치는 것임을 본능적으로 직감해 목이 쉬도록 따라 소리쳤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중심을 잃어 우왕좌왕하는 상황에서 마맛저닙 씨와 친구들은 골목에 있던 한 상점 입구의 작은 공간을 발견해 목숨을 부지했다고 했다. 그는 “경황이 없었지만 순간 한 상점으로 들어가는 계단에 몸을 비집을 정도의 작은 공간이 보여 친구들과 그쪽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있었다”며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기도 어려울 정도였지만 인파 속에 계속 있었다면 나도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오전 중으로 병원을 찾아갈 생각”이라며 “아직도 눈앞에서 사람들이 소리치다가 세상을 떠나는 모습이 머릿속에 선하다. 그날의 참상을 떨쳐낼 수가 없다”며 힘들어했다.

yckim6452@heraldcorp.com

k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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