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가서 술 마저 마시자던 구경꾼, 끔찍"…이태원 현장 있던 의사 몸서리

모 클럽 '압사 ㄴㄴ, 즐겁게 놀자' 전광판에…"악마가 별건가" 비난
"지나가며 '존X 무서운데 예쁘다'…사진 찍고 품평도, 혐오스러워"

(서울=뉴스1) 소봄이 기자 = 이태원 핼러윈 참사 당시 현장에서 심폐소생술(CPR)에 나섰던 의료계 종사자가 "인간 존재 자체에 몸서리쳤다"며 일부 시민의 몰지각한 행동을 꼬집었다.

국립암센터 소속 누리꾼 A씨 지난 30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이태원 현장에서 끔찍했던 것'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글에 따르면 이날 그는 이태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가 사고 소식을 듣고 심폐소생술을 할 줄 알아 도움이 될까 싶어 이태원으로 향했다.

평상시에도 무딘 편이라 괜찮을 줄 알았던 A씨는 현장에 가니 끔찍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몇십m 전방부터 구급차 소리에 울음소리에 아수라장(이었다)"며 "경찰 통제에 (나는) 도우러 온 의료진이고 CPR 할 수 있다고 하니 들여보내줬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미 바닥에 눕혀진 사람들은 얼굴이 질리다 못해 청색증이 와 있는 수준이었고 응급구조사가 눕힌 사람 한 명에게 CPR을 하는데 코피가 나고 입에서도 피가 나왔다"면서 "내가 이 사람을 살릴 수 없겠구나 싶었다"고 했다.

A씨는 당시 상황에서 가장 끔찍했던 건 '가지 않고 구경하는 구경꾼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구급차에 환자가 실려 떠나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CPR 하려고 서 있는 구급차 뒤에서 물 잠시 마시는데 지나가는 20대가 '아씨, 홍대 가서 마저 마실까?'라고 말하는 걸 듣고 정말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몸서리쳐졌다"고 분노했다.

그러면서 "아무리 CPR을 해도 맥박이 돌아오지 않았던 사람, 무능한 의사가 된 듯한 기분도 끔찍했지만 타인의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다음 술자리를 찾았던 그들을 평생 못 잊을 것 같다"고 토로했다. 동시에 더 이상의 사망자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의료인 B씨 역시 "나도 거기 있다가 바로 (CPR) 시작했는데 처음으로 인간에 대한 혐오를 느꼈다"고 동조했다. B씨는 "시체 사진 찍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여태까지 꽤 많은 죽음을 봤다고 생각했는데 어제는 좀 충격이 크다. 가망 없는데도 친구 살려달라고 울고불고 난리여서 그만둘 수가 없었다. 자꾸 떠오른다"며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를 호소했다.

당시 사고 현장에 있던 유명 유튜버 선여정씨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친구와 나눈 대화를 갈무리해 올리면서 "사태 심각성을 찍는 것은 이해한다. 알려야 하지만 진짜 너무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선씨는 "기절해서 거품 문 사람은 왜 찍고 모포를 덮은 사람은 왜 찍냐. 재밌네, 마네하고 쓰러진 사람 품평하고 이 상황이 너무 괴롭다"면서 혐오스럽다고 했다.

선씨의 친구 또한 "실려가는 사람들 바로 옆에 있었는데 다들 너무 예쁘게 옷 입고 있더라. 그거 보고 너무 안쓰러운데 미친X이 뒤에서 '아 존X 무서운데 X예쁘다'고 지X했다. 진짜 인류애 없어졌다"고 답장을 보냈다.

아울러 참사가 일어난 후 한 클럽 전광판에 '압사 ㄴㄴ(No No), 즐겁게 놀자'라는 문구가 적힌 것이 공개되면서 공분을 불러오고 있다. 누리꾼들은 "어느 클럽인지 찾아내자"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악마가 별건가. 이게 악마지", "인간인가 싶다" 등 비난했다.

한편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사고 현장 영상과 사진을 여과 없이 퍼뜨려 고인과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에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30일 성명을 내 "큰 고통 속에 있는 유가족과 현장에 있었던 분들의 트라우마(사고후유장애)를 더욱 가중하고 회복을 방해한다"며 유포를 자제하자고 강조했다.

sb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