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바게뜨, 한국노총 가입하면 포상금 주는 회사
만연한 노동경시에 더 불붙는 SPC 제품 불매운동
에스피씨(SPC) 계열사 노동자가 끼임 사고로 숨진 뒤 회사 쪽의 비상식적 대응이 입길에 오르면서 SPC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확산하고 있다. 회사 쪽은 사고 다음날 동료가 숨진 바로 옆에서 노동자를 일하게 했고, 고인의 빈소에 파리바게뜨 빵을 놓고 가는 등 비상식적으로 대응했다. 온라인에선 파리바게뜨, 던킨도너츠, 배스킨라빈스 등 SPC 계열 브랜드 목록이 공유되고 있다.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불매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경희대, 중앙대, 서강대, 서울대 등 대학 교내엔 불매 동참을 촉구하는 대자보가 붙었다.
SPC 쪽은 불매운동의 영향으로 가맹점의 최근 주간 매출이 전년 대비 20~30% 감소한 것으로 추정한다. 재고가 쌓이자 파리바게뜨가맹점주협의회가 ‘안 팔린 제품을 되가져가달라’고 요구했고, 회사 쪽은 식빵·단팥빵 등 13개 주력 제품을 회수해 폐기처분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가맹점주들이 매장 앞 1인시위가 업무방해라며 낸 시위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2022년 10월19일 인용했지만, 오히려 법원이 사용하지 말라고 한 ‘소비자가 혼내주자’ 등 59개 문구가 온라인에서 조롱 대상이 되기도 했다.
국내 빵류제조업 83.4% 차지
SPC그룹은 1945년 고 허창성 명예회장이 황해도 옹진에 차린 ‘상미당’이란 작은 빵집에서 시작했다. 허영인 현 회장은 허창성 명예회장의 차남이다. 그룹 전체 매출 7조923억원(2021년) 가운데 빵류제조업체 5곳의 매출이 3조7658억원에 이른다. 국내 빵류제조업 82곳 가운데 83.4%를 차지할 만큼, 편의점과 슈퍼마켓에서 팔리는 양산빵 상당수가 SPC 제품이다. 사실상 독과점이라는 보도가 잇따르자, 회사 쪽은 개인 제과점 등을 포함하면 자사 점유율이 약 40% 후반으로 추정된다고 해명했다. SPC 계열 가맹점 수는 국내 6500여 곳이다. 미국, 프랑스, 중국 등 국외에서도 400여 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SPC그룹은 전반적으로 노동친화적이지 않다. 2017년 6월 불거진 파리바게뜨 제빵 및 카페 기사 5300여 명의 불법파견 문제가 대표적이다. 민주노총 소속 제빵기사 노조의 직접고용 요구와 고용노동부의 시정 지시에 맞서, 회사 쪽은 법원에 가처분신청까지 하면서 버텼다. 결국 노동부가 과태료 162억원을 부과하자, 2018년 해피파트너즈(현 피비파트너즈)라는 자회사를 통해 직접고용하되 3년 안에 본사 직원과의 임금 격차를 해소하겠다고 노조 등과 사회적으로 합의했다. 하지만 당시 합의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더구나 계열사 노조 가운데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으로 소속 상급단체가 양분된 곳이 많은데, 회사 쪽이 민주노총 소속 노조를 와해하려 한다는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2021년엔 파리바게뜨 지역본부장들이 중간관리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민주노총을 탈퇴시키고 한국노총으로 가입하도록 이끈 직원 1인당 1만~5만원의 포상금을 관리자에게 지급한 사실도 드러났다.
2016년엔 SPC 계열사에서 성과가 낮은 직원 등을 내보내기 위한 ‘상시 부서’를 운영한 사실이 알려졌다. 파리크라상의 경우, 저성과자나 이른바 ‘찍힌’ 직원들을 시장조사팀 등에 대기발령 명목으로 배치해 퇴사할 때까지 업무를 주지 않고 사실상 투명인간 취급을 했다는 것이다.
5년간 758명 산재 사고, 할인받은 보험료 73억원
산업재해도 만연했다. 2018년 9월부터 4년간 SPC그룹에서 발생한 산재 사고로 다치거나 숨진 노동자는 758명이다. 산재 사고 발생률은 제조업 평균의 1.4배를 넘는다. 반면 같은 기간 SPC그룹이 감면받은 산재보험료는 약 73억원에 이른다. 이번에 손 끼임 사고와 사망사고가 발생한 에스피엘(SPL)이 5년간 감면받은 산재보험료는 7억원가량이다. 보험료를 감면하는 이유는 사업주의 자발적인 산재 예방 노력을 이끌어내겠다는 취지다. 이번에 사고가 일어난 혼합기의 비상멈춤스위치(인터록)가 1개당 30만원에 불과한 것을 고려하면, 감면받은 산재보험료의 일부라도 노동자 안전에 투자했다면 사망사고가 일어났겠냐는 지적이 나온다.
심지어 그동안 산재가 은폐됐다는 문제제기도 있었다. SPC그룹 주요 계열사의 산재 건수가 2017~2021년 36배 늘었는데, 2018년 민주노총 소속 노조가 설립돼 산재 신고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산재 건수는 2017년 4명이었으나, 2018년 76명, 2019년 114명, 2020년 125명, 2021년 147명으로 늘어났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그동안 드러나지 않던 산재가 노조 설립 이후 제대로 신고되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노동경시 풍조는 정부 당국의 감시·감독과 처벌이 제대로 되지 않은 탓이 크다. 2017년 불법파견된 제빵기사 5300여 명을 직접고용하라는 지시를 따르지 않자 노동부가 부과한 과태료 162억원은 사실상 면제됐다. 2018년 초 ‘사회적 합의’를 지켜보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합의 사항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논란은 여전히 이어진다.
2020년 SPC그룹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다며 공정거래위원회가 부과한 647억원의 과징금도 제대로 징수되지 않고 있다. 계열사들이 공정위를 상대로 낸 ‘과징금 처분 불복 소송’으로 재판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647억원은 계열사 부당 지원 혐의로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 가운데 역대 최고액이었지만, 공정위의 고발을 접수한 검찰은 지난 2년여 동안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 일부 직원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하는 데 그쳤다. 편법승계 의혹, SPC그룹의 노조 와해 시도에 대한 검찰 수사 역시 큰 진전이 없다.
역대 최고 공정위 과징금 647억원, 불복 소송 중
소비자단체인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2022년 10월25일 낸 성명에서 “SPC그룹은 산재 사고가 일주일에 1번꼴로 일어나는, 노동경시 풍조가 만연해 있는 회사”라며 “사회적 책무를 외면하고 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SPC그룹에 대해 철저한 진상조사와 엄중처벌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Copyright © 한겨레2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