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도 이야기] 16세기 이탈리아 대표 '가스탈디의 1546년 세계지도'
미국의 저명한 지도 분야 저술가인 로버트 캐로우Robert W. Karrow가 "16세기 가장 중요한 지도제작자 중 한 명이며, 당대 이탈리아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제작자였다…"고 칭송한 자코모 가스탈디Giacomo Gastaldi(때로 자코포 또는 야코보)는 1500년경 이탈리아 북서쪽 피에몬테Piemonte의 오늘날 토리노 지방인 빌라프랑카Villafranca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가 1539년 베네치아에 도착할 때까지 출생 연대나 초기 생애에 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고, 어떻게 지도제작에 대한 교육을 받았는지도 알 수 없다.
가스탈디가 베네치아에 와서 처음 인쇄업에 종사했다는 것도 1539년에 발행된 <영원한 달Lunario Perpetuo>의 인쇄 허가증에 그의 이름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가스탈디는 처음에 인쇄업에 종사하다가 유명한 지리학자이자 저술가인 조반니 바티스타 라무시오Giovanni Battista Ramusio를 만나면서 지도제작의 길로 들어섰고, 1540년대에는 독자적인 동판조각법을 고안해 점차 많은 지도를 제작하게 되었다.
그는 '1542년'이라고 기록된 독일 지도를 제작했지만, 6년 뒤에 출판되었기 때문에 실제 최초의 지도는 1544년에 출판된 4매 시트의 스페인 지도이다. 그가 태어난 연대와 장소도 이 지도 왼쪽 하단에 적힌 발문에서 밝혀진 것이다. 1545년 시칠리아 지도에 이어 1546년에는 세계지도와 다뉴브강 지역의 지도를 제작했는데, 지리학자 로베르토 알마지아Roberto Almagià에 따르면 이 다뉴브강 지역 지도는 가스탈디 최초의 독립된 작품이라고 밝혔다.
최초의 아틀라스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리학>
1548년 이탈리아에서 처음 라틴어로 번역되어 출판된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리학Geographia>은 최초의 아틀라스로 여기에는 60매의 지도가 수록되었는데, 그중 34매를 가스탈디가 동판화 기법으로 제작해 4개의 동판을 한 프레임에 넣고 동시에 인쇄하는 혁신을 이뤄냈다. 또한 이 아틀라스의 지도를 평면이 아닌 원근감 나게 '1점 투시도법'을 적용한 사람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이다. 미국의 지리학자 필립 버든Philip D. Burden은 "가스탈디가 출판한 <지리학>은 아메리카대륙의 지역 지도를 포함하는 최초의 아틀라스"라고 평했다.
1549년에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통치기관인 10인 평의회로부터 화재로 소실된 두칼레 궁Doge's Palace 벽에 프레스코 기법으로 아프리카의 대형 지도를 그리는 작업의 감독을 맡았고, 1550년대에는 라무시오의 〈항해와 여행Delle Navigationi et Viaggi〉에 수록될 13점의 지도를 제작했다. 1559년에는 4매 시리즈 유럽 남동부 지도를 제작했으며, 그 뒤 1561년까지 중동, 남아시아, 동남아시아의 3매 시리즈 지도를 출판했다. 1562년에는 폴란드 왕국의 2매 시트 지도, 1564년에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8매 시트의 장대한 아프리카 지도를 발행했다.
이러한 공을 인정받은 가스탈디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우주지학자로 임명되었고, 베네치아 학회Accademia Veneziana 회원으로 활동했다. 지도를 제작하는 동안 동판조각가 파올로 포를라니Paolo Forlani와 오랜 기간 수많은 지도를 제작하고 출판했다. 그가 제작한 많은 지도 가운데 제목이나 헌사 등에서 그의 이름이 보이기도 하지만, 관습상 출판자로서의 사인은 하지 않아 그가 제작한 지도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대개 109점의 지도를 제작ㆍ출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스탈디의 대표작인 1546년의 세계지도Universale는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폰 하우슬랍Franz von Hauslab 장군과 리히텐슈타인 왕자의 소장품이었으나, 현재는 매우 희귀한 지도로 평가되고 있다. 이 지도는 동판에 새겨 단색으로 인쇄되었으며, 크기는 가로 54cmㆍ세로 38cm이다. 지명은 모두 라틴어로 표기되었는데, 지도 하단 중앙에는 '1546년 베네치아에서 자코모의 코스모그래피Giacomo Cosmographo In Venetia MDXXXXVI'라고 연도와 발행처, 제작자, 지도명이 표기되어 있다.
세계지도에 최초로 투영법 응용
타원형 투영Oval projection은 1060년경 베아투스Beatus 세계지도에서 그 유형이 나타났지만, 장방형의 틀을 변경한 것에 불과하고, 1524년 독일의 수학자이며 천문학자인 페트러스 아피아누스Petrus Apianus가 펴낸 <우주지Cosmographicus liber>에 투영에 대한 작도법이 처음 밝혀졌다. 이 투영법을 세계지도 제작에 처음 응용한 사람은 가스탈디인데, 그의 지도는 중앙자오선과 적도의 비율이 1:1.8이다. 이 타원형 투영은 16세기에는 인기가 많았으나, 1600년 이후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지도 테두리 위쪽과 아래쪽에는 구름이 그려져 있고, 8개 방향에는 풍신wind head이 구름 속에 그려져 있다. 카나리아제도 동쪽을 지나는 중앙자오선을 중심으로 동서로 각각 10° 간격의 경선이 그려져 있고, 특수 쇄선의 적도를 중심으로 남북으로 각각 10° 단위의 위선이 그려져 있다. 그외 남북회귀선과 북극권, 남극권이 쌍선으로 그어져 있다. 해안선은 뚜렷하지 않고, 바다는 입체감 나게 물결선으로 그리고, 군데군데 숲과 활ㆍ창을 든 군중이 그려진 북아메리카 이외의 대륙은 산맥이 육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전체적으로 복잡한 느낌이 든다.
기지의 세계인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 일부는 지형 파악이 용이한 편이나, 북아메리카의 북동쪽은 아시아와 이어져 거대한 대륙을 이루고 있다. 후에 섬으로 묘사되는 캘리포니아반도는 분명하게 반도로 표시되었으나, 아시아 쪽으로부터 긴 강이 유입되어 마치 북아메리카 서단을 갈라놓은 듯하다. 동부 해안은 비교적 빈약한 편으로, 허드슨강이나 세인트로렌스만도 뚜렷하지 않다. 남아메리카는 비교적 형태를 갖췄으나, 아마존강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고 있으며, 남쪽에는 마젤란해협이 그려져 있다. 미지의 남방대륙에는 '미지의 티에라델푸에고Tierra del Fuego Incognita'라고 표기되어 있다.
아시아는 인도반도와 인도지나반도까지 명확하게 표현되었고, 북아메리카와 극동아시아 사이의 바다에 '톤자만Golfo de Tonza'이라는 명칭은 일본 토사만土佐彎을 지칭하며, 그 위의 섬에 표기된 '치모가Cimoaga'는 일본을 가리킨다. 지도 오른쪽 극동아시아에 '카타요CATAYO'는 중국이고, 지도 왼쪽 끝의 '캄발Cambal'은 북경이며, '만지Mangi'는 남중국을 가리키지만, 아쉽게도 조선과 관련된 지명은 찾을 수 없다. 중국의 남쪽 바다는 '중국해Mar de la China'라고 표기되어 있다.
영향력 있는 세계지도의 모범
가스탈디의 세계지도는 일부 불완전한 표현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영향력 있는 세계지도의 모범이었다. 1546년의 세계지도는 1548년 프톨레마이오스 <지리학>에 수록하느라 축소해 다시 제작하였고, 1550년에는 판화 제작자인 마테오 파가노Matteo Pagano가 목판으로 제작했으며, 1555년 네덜란드의 지도제작자 제라르 드 조드Gerard De Jode가 제작한 세계지도의 저본이 되었다. 그 외 가스탈디의 작품은 라프레리 학파Lafreri school의 지도제작자들도 이용했다.
가스탈디는 1565년, 건강상 문제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됐다. 이듬해 10월 2일, 베네치아의 자택에서 작성한 유언장은 그의 사생활을 밝히는 몇 안 되는 자료 중 하나로, 그의 부인 안졸라Anzola를 상속인으로 하고, 이전에 결혼했던 에로니마Ieronima와의 사이에 난 딸 이사베타Isabetta에 대한 사실도 기록되어 있다. 1566년 10월 14일 작고한 그는 17세기 말 프랑스의 유명한 지도제작자인 상송Sanson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존경받고 있다.
월간산 10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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