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능이 줄줄 샌다는데···“누설은 없다”는 그들

기자 2022. 10. 31.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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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피스 액티비스트가 방호복을 입고 2021년 8월 월성원전 앞에서 삼중수소와 세슘 137 등 방사성물질 누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 그린피스 제공

[주간경향] 원자력발전소는 ‘가’급 국가보안시설이다. 원전 출입자는 지문을 등록하고 출입증을 발급받아야 한다. 원전 관련 정보와 내부 촬영물의 유출도 엄격히 통제된다. 원전사고가 발생해도 1·2등급 사고만 보고하면 된다. 이런 철통같은 보안체계가 위험한 원전을 더 큰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지금 월성원전이 그렇다. 방사성물질이 줄줄 샌다는 언론보도와 내부고발이 이어지는데도 관계당국은 이것이 심각한 사안임을 부인하고 있다. 국내 원전을 관리하는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 황주호 사장은 지난 10월 11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이하 산자위) 국정감사장에 출석해 월성원전의 누설 여부를 묻는 여야 의원들의 질의에 “누설은 없다”고 당당히 답했다. 최근 양이원영 국회의원실이 한수원에서 입수한 국정감사 자료는 황 사장의 주장과 달랐다. 자료에는 월성 1호기 수조 밖에서 방사성물질이 지속적으로 검출된 사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올해 1월에는 최대 110만베크렐의 삼중수소가 검출됐다. 10월 17일 채취한 물 시료에서도 60만베크렐의 삼중수소가 나왔다. 금세 들통날 거짓말을 하면서도 황 사장이 당당했던 것은 국내 원전의 보안시스템이 잘못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보로 시작된 원전 누설 폭로

월성원전의 방사성물질 누설은 제보로 처음 알려졌다. 월성원전의 안전문제를 제기해온 경주환경운동연합에 한수원 내부 보고서가 전달됐고, 이 제보 문건이 2021년 초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누설 문제에 이목이 쏠리자 한수원과 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원안위), 원자력안전기술원(이하 KINS)은 당시 원전 부지에서 최대 71만베크렐의 삼중수소가 검출된 것과 관련해 구조물, 즉 수조 바닥이나 벽에서 누설된 것은 아니라고 누설 사실을 극구 부인했다.

2차 제보가 이어졌다. 2011년 한수원이 연구자료로 발표했던 내부 문건이었다. 이 보고서에는 누설된 방사성물질이 구조물과 배관 같은 설비에서 새어나와 밖으로 누설됐을 가능성을 지적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관계당국의 설명과 반대되는 내용이었다.

원안위는 이 같은 내부 폭로 사실을 인정하는 대신 2021년 3월 월성원전 누설을 조사할 민간 조사단을 발족시켰다. 조사단은 1년 반 동안 월성원전 부지 전반에서 고농도의 삼중수소와 감마 핵종인 세슘 137, 코발트 60 등이 검출된 것과 관련해 누설의 원인이 월성 1호기의 사용후핵연료 수조와 폐수지 저장탱크(SRT)에 있음을 확인했다.

조사단은 기자회견이 아닌 보도자료 배포로 조사결과 발표를 갈음했다. 또 보도자료는 일반인이 알아듣기 힘든 전문용어 일색이었다. 조사결과 내용은 심각했지만, 누설 문제는 더 이상 공론화되지 못했다.

그린피스가 2021년 8월 월성 원자력발전소에 레이저빔으로 ‘지금 삼중수소 새고 있다’는 내용의 영문 메시지를 투사하고 있다. | 그린피스 제공

비공개 회의록에 담긴 ‘민낯’

그린피스는 지난 2년여 동안 진상 규명을 위한 캠페인을 벌여왔다. 여러 제보자와 조력자들을 통해 중요한 자료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김성환 국회의원실을 통해 조사단이 보도자료 배포를 앞두고 두차례 개최한 비공개회의의 회의록을 최근 입수했다.

회의록엔 조사단장인 홍성걸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가 외벽의 균열이 30㎝ 깊이라는 것을 확인했다는 사실이 담겨 있다. 또 이 균열이 1m 높이의 외벽 전체를 관통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그러면서 표면 누수를 땜질하듯 보수하는 것은 근본적인 처방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홍성걸(삼중수소 조사단 단장) 표면균열에 대해 보수를 했어요. 그런데 이번에 해보니까 그게 어떤 부분 또 새니까. 그래서 이 부분은 관통균열이 있을 것이다. 해봤더니 그 부분까지 관통균열이 있는 거예요. … ‘심부 균열’이라고 표현했지만, 이게 갈라졌어요, 완전히.

홍성걸 표면 누수에 대한 보수는 됐지만, 근본적으로 되기 어렵기 때문에.

회의에서는 방사성물질 오염수 누설량이 확인된 것만 하루 7ℓ에 달한다는 사실도 공유됐다.
김호철(현안소통협의회 의장) 하루에 7ℓ 정도가 계속 나오고 있는 상황인 것은 분명히 데이터가 있고, 실험결과도 있고 자료도 있단 말이에요.

김기환(원자력안전위원회 원자력안전과장) 균열에서 누수가 된 것이죠. 여기 아까 7ℓ 된 것은.

김호철 균열 가지 않은 다른, 그냥 콘크리트 매질에서도 누수 가능성이 있다는 그 말씀이신 건가요?

김기환 누수 가능성이 있다, 네.

홍 교수는 방사성물질이 줄줄 샌다고 진단했다.
박상덕(현안소통협의회 위원) 국민, 아니 그것은 전문가 입장에서 그것을 ‘줄줄 샌다’라고 판단하십니까, 확실하게?

홍성걸 줄줄 새요, 줄줄.

확인된 균열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는 진단도 나왔다.
홍성걸 (균열이) 2~3개는 있을 거예요, 그런데 바닥은 모르죠. 그러니까 그것까지 하면 우리가 어림잡아 한 40t인가 그 정도 나와요, 1년에 40t, 50t.

수조 콘크리트 성분을 살펴본 결과, 건설 당시 수조가 제대로 굳지 않아 공극이나 균열이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여러군데 누설 지점이 더 있으리라는 분석이 나왔다.

또 다른 원인, 폐수지 저장탱크

폐수지 저장탱크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이 시설은 고농도의 방사성물질을 흡착한 합성수지를 모아놓은 곳이다. 이 시설의 오염수 방사성 준위는 사용후핵연료보다 훨씬 높다. 삼중수소 농도만 따져도 약 1억8000만베크렐이다. 그런데도 이 폐수지 저장탱크는 사용후핵연료 수조와 달리 이중구조도 아니어서 누설 위험에 훨씬 취약하다.

조사단은 폐수지 저장탱크 누설로 지하수에서 1ℓ당 383만베크렐의 삼중수소가 검출된 사실을 확인했다. 이는 사용후핵연료 수조에 보관된 물보다 삼중수소 농도가 3배 이상 높다.

폐수지 저장탱크에서 누설된 방사능 오염수는 터빈갤러리(발전건물 배수로)로 들어갔다. 터빈갤러리의 물은 바다로 나가도록 설계돼 있어 방사성물질이 검출돼선 안 된다. 하지만 터빈갤러리의 바닥 침전물에서 감마 핵종인 코발트 60이 1킬로그램당 최대 520베크렐 검출됐고, 세슘도 확인됐다. 국내 방사성 폐기물 관리기준에 따르면 삼중수소는 1ℓ당 10만베크렐, 세슘 137은 0.1g 이상인 경우 저준위 방사성 폐기물로 관리돼야 한다.

그린피스가 2021년 8월 월성 원자력발전소 앞 해변에 레이저빔으로 ‘방사능이 새고 있다’는 메시지를 투사하고 있다. | 그린피스 제공

원자력 기관들의 조직적 은폐

사실 월성원전의 누설은 그동안 원자력 기관 내부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최근 공개적으로 제보에 나선 이희택 박사는 지난 5년간 내부에서 삼중수소의 누설 원인과 문제를 밝히려 애써왔다. 토목공학 박사인 그는 1986년 KINS에 입사한 뒤 월성원전을 포함한 원전 전반의 안전 규정 준수 여부를 감독해온 인물이다.

이 박사는 2015년 월성원전 안전 점검 업무를 맡은 직후 수조 누설 문제를 파악하고 한수원에 관련 문제를 공식 질의했다. 구조물에서 누설된 오염수가 지하수를 오염시키고 주변환경으로 나가고 있으니 원인을 규명하고 대책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2018년부터 2년여 동안 4차례 질의서를 보냈지만, 한수원은 한 번도 응답하지 않았다. 이 박사는 누설 사실을 원자력 규제 기관인 원안위에 알리기 위해 관례대로 검사 지적사항 보고서를 작성하고 회람했다. 당시 KINS 부원장과 내부 위원회가 묵살했다. 원전 안전을 위해 전문성을 발휘해야 하는 국내 유일의 기관이 조직의 힘으로 치명적인 안전문제를 덮어버렸다.

이 박사는 굴하지 않고 KINS가 2019년부터 2020년까지 발표한 정기검사 결과 보고서에 누설 문제를 적시했다. 사용후핵연료 수조의 누설로 지하수가 오염됐고, 방사성물질이 터빈갤러리를 통해 바다로 유출됐음이 확인됐다는 내용이다. 이 보고서는 2020년 11월 원안위에도 보고됐다. 그러나 이번 국정감사를 전후해 다시 공론화되기까지 이런 내부 제보가 있었다는 사실은 철저히 통제됐다.

“오염된 지하수는 바다로 간다”

월성원전 최종 안전성 분석 보고서를 비롯한 대부분의 설계 인허가 문서에는 ‘월성원전 부지의 지하수는 바다로 흐른다’는 점이 명시돼 있다. 설계 당시 조사를 통해 지하수가 바다로 향한다는 걸 확인한 결과다.

월성원전 방사성물질 누설의 진상을 밝히고 책임자를 규명하는 길은 오염수의 누설 환경을 밝히는 데 있다. 원자력안전법 제21조에 따르면 핵연료를 보관하고 있는 사용후핵연료 수조나 폐수지 저장탱크 등 핵연료 저장시설의 손상으로 누설 환경이 되면 운영허가 취소와 정지 처분의 사유가 된다. 원자력 기관들이 방사성물질의 누설 환경을 인정하지 않는 배경이다. 한수원 등은 ‘외부 환경으로의 (방사성물질) 누설 미확인’을 이유로 일체의 개연성과 증거 자료를 통째로 거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오염수의 누설 사실을 확인할 지하수 조사와 오염 분석 책무를 한수원에 맡겨 놓은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세금 923억원 들여 수조 바닥 손상

이번 월성원전 방사성물질 누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또 하나의 사실이 있다. 2012년 원안위 등은 후쿠시마원전 사고 대책으로 중대사고 시 방사성물질의 외부 유출을 최소화하려는 목적으로 격납건물여과배기(CFVS)라는 설비를 설치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당시 월성 1호기는 수명연장이 가능할지 평가 중인 노후원전이었다. 2011년 발생한 후쿠시마원전 사고는 수명연장을 코앞에 둔 월성 1호기의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사안이었다. 이에 원안위와 한수원의 책임자들은 언론보도를 통해 CFVS 설치로 월성 1호기가 ‘명품 원전’이 될 것이라고 홍보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월성 1호기의 안전성을 높인다는 그 결정이 오히려 사용후핵연료 수조 바닥의 차수막을 망가뜨렸다. 규모가 큰 설비였던 CFVS가 지진이나 외부 충격에 흔들리지 않도록 지하에 기둥을 박아 설치해야 했는데, 그 기둥이 수조 바닥을 7곳이나 관통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 사실을 처음 발견한 제보자 이 박사가 2018년 이 사실을 확인하고 질의하기 전까지 한수원은 사용후핵연료 수조 바닥의 손상을 전혀 알지 못했다. 전국의 원전 운영책임자인 한수원은 알아야 하는 사실도 몰랐고, 알고 나서도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최근 국감 자료에 따르면 월성 1호기를 포함한 국내 원자로 22기에 CFVS를 적용하기 위해 2019년까지 모두 923억원을 투입했다. 2020년 사업이 백지화됐고, 투입된 공적자금은 모두 회수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2022년 9월 21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그린피스가 주최한 ‘월성원전 방사성물질 누설로 본 안전 법규 위반 실태와 대응’ 전문가 토론회. | 그린피스 제공

원전 안전, 국회가 나설 차례

우리 사회에 그동안 여러 원전의 안전문제가 제기됐지만, 이번처럼 수많은 제보와 증거자료가 나온 적은 드물다. 원전 안전 전문가의 검사결과와 민간 조사단의 조사 및 평가에 더해 오염수 누설과 수조 손상을 뚜렷이 보여주는 시각 자료도 공개됐다. 뒤늦게 공개된 자료들을 보면 운영책임자인 한수원은 원자력안전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KINS는 이 사실을 알고도 은폐했다. 상급 기관인 원안위는 이 모든 사항을 규제할 책무를 다하지 않았다. 지금 국내 원자로 26기는 안전보다 원전 산업을 먼저 챙기는 이들에 맡겨져 있다.

지난 10월 18일, 국회 산자위 의원들이 현장 국감을 위해 월성원전을 방문했다. 한수원의 방해로 누설 현장인 월성 1호기 수조를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다. 민간 조사단은 여러 성과에도 불구하고 그 한계가 명확하다는 점이 비공개 회의록을 통해 밝혀졌다. 국회의원들의 현장 시찰 전날에도 수조 바닥 지점에서 60만베크렐의 삼중수소가 검출됐다. 한수원 사장은 자신이 현장을 직접 둘러봤다며 “누설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국회는 심각한 방사능 오염수 누설에 대해 국정조사를 추진하고 새로운 조사단도 구성해 철저히 조사할 수 있도록 충분한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지하수의 누설 환경조사를 더 이상 피조사기관인 한수원 등에 맡겨둘 수는 없다. 비계획적 누설에 대한 보고, 의무 규정을 어겼을 때 징계와 처벌을 강화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더 많은 누설을 막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수조와 폐수지 저장탱크의 보수공사를 실행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의원들이 철저히 감시하고 법 위반 행태를 바로잡아야 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국민의 안전을 위해 실명으로 또 익명으로 나선 제보자들한테 맡겨둘 일이 아니다. 수백명의 국민대표가 모인 국회가 마땅히 나서서 이행해야 할 시대적 과제다.

장마리 그린피스 캠페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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