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전 라디오, 현재는 통화 금지… 항공 오작동 명확한 근거는 없어
■ 지식카페 - 기술이 지나간 자리 (18) 기내 전자기기 사용
1960년대 규제가 스마트폰 자제 권고까지 이어져
NASA도 전파방해 증거 못찾았지만 ‘혹시 모를 위험’ 우려에 금지
개인 전자기기 크게 늘면서 사용제한 완화 추세
2014년이후 사용 허용됐지만 음성통화 불허는 여전
몇 년 전 어느 여행길, 당신은 허겁지겁 달려 간신히 게이트를 통과해 비행기에 올랐다. 한 손에 든 항공권에 적힌 좌석번호를 몇 번이나 고개를 내려 확인하며 제 자리를 찾아 앉았다. 곧이어 비행기는 모든 문을 닫고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했고, 이제 숨을 좀 돌린 후 손에 든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 우여곡절 끝에 비행기에 잘 탔다고 가족에게 연락해야 하는데, 괜찮을까? 고민하는 사이 어느새 비행기는 고도를 올려 목적지를 향해 활공 중이다. 문득 다시 핸드폰 화면을 살펴보니 비행기 모드를 설정하지 않았다. 잠깐, 설마 나 때문에 이 비행기에 뭔가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겠지? 최신형 비행기이니 괜찮은 건가? 아니 애초에 내 핸드폰 하나가 항공기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기는 한 것일까? 질문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항공기 내 휴대기기 규제의 역사는 휴대용 라디오가 보급되기 시작하던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연방항공청(Federal Aviation Administration, FAA)은 1961년 항공운항법에 항공기 내에서 허가받지 않은 개인용 전자장비(Personal Electronic Device, PED)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기 시작했다. 애초 이 규제는 FM 라디오 수신기의 사용을 금지한 것이었지만, 1990년대가 되자 이는 핸드폰과 노트북 컴퓨터, 2000년대엔 스마트폰, 태블릿 PC 등 모든 개인용 전자기기를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됐다. 이 규제의 근거는 이렇다. 휴대기기에서 발신하는 전파가 GPS와 같은 중요한 항공 전자 장치 및 지상과 항공기간의 통신 시스템을 포함한 항공 시스템을 방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핸드폰의 경우, 기내에서 핸드폰 기지국이 잘 찾아지지 않으면, 단말기는 신호를 더 증폭해 기지국을 탐색하도록 설계돼 있으므로, 그 위험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설명은 이 규제의 근거를 더욱 탄탄하게 만들어 주기도 했다.
실제로 꽤 위험해 보이는 사례들이 보고되기도 했는데, 예컨대 다음과 같은 사건들이다. 1993년 미국 덴버에서 뉴저지로 비행하는 여객기에서 항공기의 자세와 각속도를 측정하는 자이로스코프가 오작동하는 것을 조종사들이 발견했다. 기장은 승객 중 약 25명이나 개인용 라디오를 통해 미식축구 경기를 듣고 있었던 것을 확인했다. 승객들이 모든 기기를 끄자 약 5분 만에 자이로스코프는 정상적으로 동작하기 시작했다. 유사한 사례는 또 있었다. 역시 1993년, 댈러스 공항 외곽을 순회하던 한 여객기에서 1번 나침반이 약 10도가량 틀어져 있는 것을 조종사가 발견했다. 승무원은 승객 중 노트북 컴퓨터를 사용하는 사람을 발견했고, 승객의 노트북이 꺼지자 약 10분 후 나침반은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보고가 있었다.
수천만 분의 1 확률이라도 안전의 문제가 있다면, 이후 그 누구도 이 문제에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이 규제에서 흥미로운 점은 수십 년 동안 전 세계 과학자들과 연구진이 기내 핸드폰 사용이 항공 안전에 어떻게 위험을 초래하는지 지속적인 연구를 했지만, 결정적인 근거를 찾아내지는 못했다는 데 있다. 위의 두 사례가 보고된 이후 유사한 상황에서 같은 문제가 재현되지는 않았다. 매일 미국에서만 수만여 대의 항공기가 운항되고, 매일 수백만 명이 항공기를 이용하는데, 실수로 기기를 계속 내놓은 것을 포함해서 확률적으로 모든 승객이 완전히 지시를 따른다고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후 미 항공 무선 기술 위원회(Radio Technical Commission for Aeronautics, RTCA)는 수년 동안 개인 단말기와 모든 항공장비 간의 간섭 현상을 연구했지만, 실제 문제가 될 만한 간섭이 벌어진다는 것을 증명해 내지는 못했다. RTCA는 네 차례에 걸쳐 항공기 내 휴대기기의 영향을 연구한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핸드폰의 주파수가 비행기 시스템의 간섭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무선 주파수 간섭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항공 시스템은 비행 안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2003년에는 항공안전 연구를 일부 담당하고 있는 나사(미 항공우주국)도 이 논의에 동참했는데, 나사는 연구결과 보고에서 핸드폰이 발생하는 전파를 통해 항공장비에 어느 정도의 간섭을 관측할 수 있었지만, 항공기의 운항시스템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었다고 보고했다.
2005년 미 하원에서는 이 문제와 관련해 청문회까지 열렸다. 이 자리에는 항공공학자들뿐만 아니라 각계의 인사들도 참여해서 기내 핸드폰 허용에 대해 의견을 피력했다. 전미승무원노조(Association of Flight Attendants, AFA)의 한 인사는 증인으로 출석해 기내 휴대기기 사용이 전면 완화되면 크게 통화를 하는 승객과 이를 제지하는 승무원 사이의 갈등이 고조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고, 국토안보부는 테러리스트들이 기내에서 폭탄을 터트릴 때 더 많은 옵션을 주는 것이라며 반대하기도 했다. 또 관련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절반이 넘는 응답자들이 항공기 내 개인용 기기를 전면 허용하는 것에 반대했는데, 이는 바로 옆에 앉아있는 사람의 통화를 들어야 하는 피로감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2007년 FAA는 입장문을 내고 지금까지의 항공기 내 핸드폰 및 개인기기 금지 정책이 여전히 유효함을 재확인했다. 명확하게 문제가 있다고 입증할 수는 없지만, 안전하다고 단언할 수도 없으며, 관계된 행위자들 역시 기존의 정책을 바꾸는 것에 호의적이지 않았으므로, 어쩌면 당연한 결론이었다.
불과 몇 년 후인 2013년 결국 FAA는 입장을 다시 뒤집는 결정을 내놓았다. 미국 전체 인구의 91%가 핸드폰 혹은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항공기 내 개인기기 사용허가에 대한 사회적 압력은 더욱 거세졌고, 수십 년 전에 만들어진 규정이라며 이를 전면 재검토하고 나선 것이다. FAA 산하 기술위원회가 발간한 보고서는 현대의 항공기가 수십 년 전과는 달리 대부분 전파 방해 차폐 설계가 잘 돼 있다고 설명했다. 또 한 조사에 따르면, 30%의 승객들은 사실 핸드폰을 비행기 모드로 설정하지도, 끄지도 않는다고 대답했다. 다시 말해 수많은 승객이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항공기에서 개인 전자기기를 사용했지만, 실제 문제가 된 적은 없었던 것이다. 보고서는 나사 항공안전 데이터베이스를 인용해, 2007년 이후 5년간 개인 기기로 인한 항공기 오작동 의심 신고가 2건에 불과하다는 자료도 함께 첨부했다. 이어 2014년 유럽항공안전청(European Aviation Safety Agency, EASA)은 모든 운항단계에서 핸드폰과 태블릿을 포함한 모든 개인기기의 사용을 금지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EASA는 승객의 개인기기 사용의 결정 권한은 항공사에 있다고 선을 그었지만, 결국 항공기 내 휴대기기 규제는 그렇게 사라지게 됐다.
2014년 한국도 이 규제 해제의 물결에 동참했다. 국토교통부는 휴대용 전자기기가 비행기 모드로 설정된 경우에는 이착륙을 포함한 모든 비행 단계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정부 지침을 변경했다. 그러나 음성통화로 인한 전파방해를 우려해 비행 중 핸드폰을 이용한 음성통화는 계속해서 금지하고 있다. 현재 기내 전자기기 관련 규정은 운항 항공사 및 국가에 따라, 그리고 항공기 기종에 따라 다를 수 있으므로, 탑승 후 승무원의 안내와 지시를 따라야 한다.
기술이 우리 삶의 여정에서 등장하고 또 사라지는 사이, 기술을 둘러싼 문화와 제도 역시 함께 등장하고 사라진다. 기술들을 잘 사용하기 위해 따라야 하는 규칙들이 생겨나기 마련이고, 특히 그것이 안전의 문제로 이해됐을 때 정책의 이름으로 특정한 행위가 강제되기도 한다. 우리는 기술에 대한 정책이 대체로 매우 객관적인 증거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지고 집행된다고 기대하지만, 이 사례에서 보듯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정책을 설계하고 집행하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결정적이고 객관적인 증거가 항상 마련돼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사례의 경우 정책 변화의 변곡점은 완전히 새로운 과학적 근거라기보다는 압도적으로 많아진 스마트폰 사용자라는 변화한 현실이라고 보는 편이 더 설득력 있다. 또 기내 전자기기로 인한 일상화된 위험을 논의하는 ‘위험 커뮤니케이션’이 효과적이고 의미 있게 이뤄졌는지는 다시 따져볼 일이다. 분명한 것은 첩첩이 쌓인 기술 위에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안전을 담보하면서도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을 찾는 일은 이처럼 혼란스러우면서도 오랜 숙고의 과정을 필요로 하는 것임을 이 사례가 잘 보여준다.
박동오 사회정보학 박사, 기술정책자문
■ 용어설명 - 위험 커뮤니케이션(risk communication)
질병, 재난, 그리고 과학기술과 관련된 위험 및 위기 상황에 대해 일반인, 전문가, 산업계, 정부 등 이해집단 간 위험의 중요성, 위험의 규모, 위험의 통제를 위한 결정, 행동, 정책 등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는 행위. 최근에는 전문가 집단이 일방적으로 발산하는 정보에 의존하는 한계를 극복하고, 시민 사회 및 이해 당사자들을 폭넓게 참여시켜 대응방안을 함께 모색하는 위험 거버넌스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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