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부산 11번, 경남 3번, 서울 중계점, 육아휴직자 이야기①

박찬범 기자 2022. 10. 31.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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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부부냐, 서울 이사냐

42살 남 모 씨는 지난 2009년, 롯데쇼핑 슈퍼사업본부에 입사했습니다. 남 씨는 육아휴직 2년을 마치기 직전에 서울 중계점으로 발령이 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남 씨는 전까지 부산이나 경남에서만 근무했습니다.

▷육아휴직 후 복직하려니…400km 먼 곳 발령, 결국 퇴사 (지난 27일 8뉴스 보도)
[ 원문 링크 : https://news.sbs.co.kr/d/?id=N1006949077 ]


남 씨는 고민했습니다. 서울 중계점에 다니는 상상을 해봤습니다. 두 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한 가지는 주말부부입니다. 평일에는 사측이 제공하는 남성 전용 관사(방 3개 25평 아파트에 직원 3명 공동 사용)에 살고, 주말에만 부산에 있는 가족을 보러 가는 것입니다. 다른 한 가지는 가족을 데리고 함께 서울에서 사는 것입니다.

주말부부를 하자니 주말마다 서울-부산 거리를 왕복하는 게 부담이 됐습니다. 더군다나 베트남인 아내와 4살과 5살 된 두 아들과 떨어져 지낸다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교통비용도 부담이 됩니다. 서울-부산 KTX 비용은 일반석 기준 59,800원입니다. 물론 회사가 교통비를 지원해준다고 하지만, 주말부부를 하면서 발생한 비용은 이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서울 이사도 어렵습니다. 남 씨는 부산에 집이 있습니다. 보금자리론 대출을 받아 집을 어렵게 장만했습니다. 실거주해야 하는 조건이 있습니다. 남에게 세를 줄 수도 없습니다. 서울에 처자식과 살 집은 구하는 것도 많은 비용이 듭니다. 사측은 관사가 없는 지역으로 갈 때 주거지원금 월 30만 원을 줍니다. 서울에서 월 30만 원으로 가족 4명이 살 수 있는 월세 집은 없습니다.

2009년 입사자, 퇴사를 결심하다

남 씨는 고민 끝에 퇴사하기로 했습니다. 이미 2022년 8월 27일 복직을 앞두고 롯데쇼핑 인사담당자로부터 서울 중계로 발령이 난다는 전화를 받고 어느 정도 체념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남 씨는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고 합니다.

남 씨는 정말 서울 중계점 밖에 자리가 없었을까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혹시 육아휴직을 2년 연달아 쓴 게 화근이었는지 생각하며 자책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별생각이 다 들었다고 합니다.


롯데쇼핑 측의 입장은 남 씨의 서울 중계점 발령은 육아휴직과 무관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올해 육아휴직자들이 복직 후에 어느 지점에 발령이 났는지를 공개했습니다. 기자가 눈으로 영남지역 근무자들이 육아휴직 복귀 후 어느 지점으로 갔는지 확인해봤습니다. 대략 10명 정도의 인원이 영남지역 근무 인원이 있었는데, 모두 휴직 전 자리로 복귀했습니다. 타 연고지로 발령 난 근무자는 남 씨가 유일했습니다.

왜 남 씨만 타 연고지로 갔는지 물었습니다. 이에 대해선 사측이 뚜렷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다만 다른 육아휴직자들은 남 씨처럼 육아휴직을 길게 간 경우가 아니라고 답했습니다. 남 씨가 혹시 2년 장기간 쓴 게 영향을 끼쳤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혹시 복직 전 인사 고과 점수가 반영되느냐고 물었습니다. 사측은 그 또한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유통업은 다 그렇다?

SBS는 해당 기사를 10월 27일자 8뉴스 때 보도했습니다. 해당 기사가 포털 사이트에 올라간 뒤 댓글 동향을 봤습니다. 포털 사이트마다 반응이 극명하게 갈렸습니다. 네이버의 경우를 보겠습니다. 유통업은 원래 그런 것이다, 육아휴직과 상관없다 등 사측을 옹호하는 댓글에 많은 네티즌들이 압도적으로 공감했습니다. 이 가운데 몇 가지 내용에 대해서는 좀 더 이해를 돕도록 전후 사정에 대해서 설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마린시티-해운대-서상-좌1동-학장-문현-삼천포

남 씨가 2009년 이후 근무했던 이력을 살펴봤습니다. 총 14번의 발령이 있었습니다. 사측의 조직 개편에 따라 똑같은 지점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정식적으로 발령이 난 것으로 처리된 걸 모두 포함했습니다.

남 씨는 2020년 8월 육아휴직을 쓰기 전까지 부산 발령 11번 발령, 경남 발령 3번이 있었습니다. 육아 휴직 직전 몇 년을 살펴보면 마린시티점(부산), 해운대점(부산), 서상점(창원), 좌1동점(부산), 학장점(부산), 문현점(부산), 그리고 삼천포점(사천)입니다.


남 씨의 업무는 '그로서리'입니다. 마트에 납품되는 공산품을 관리하는 역할입니다. 남 씨가 육아휴직 가기 전에도 전국구 발령을 받아 움직였다면, 서울 중계점 발령이 이상해 보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또 '그로서리' 업무를 가진 담당자는 각 마트마다 최소 한 명씩 있습니다. 남 씨의 직군이 특이해서 근무 가능한 자리가 드물다고는 볼 수 없어 보입니다.

2. 10월 육아휴직자 복귀자는 경남 발령

유통업 사정을 이해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롯데쇼핑 측 역시 당시에 갈 수 있는 자리가 서울 중계점이 유일했다고 말합니다. 남 씨는 인사 담당자에게 다른 자리가 없느냐고 거듭 문의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똑같았습니다.

남 씨가 결국 퇴사를 하게 되고, 그 이후에도 육아휴직자들의 복직은 롯데에서 계속 있었습니다. 그리고 10월 17일자 인사 발령문을 보겠습니다. 이때 보면 남 씨와 같은 '그로서리' 직군을 가진 사람들이 영남지역으로 발령이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남 씨처럼 육아휴직을 마치고 돌아온 근로자 한 명은 김해장유점 그로서리로 발령이 났습니다. 남 씨는 이를 보고 허탈했다고 합니다. 본인은 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서울 중계점을 갔지만, 정말 자리가 없는 게 맞았는지 의문이 들었다고 합니다. 남 씨는 회사가 육아휴직을 마치고 돌아온 본인을 쓸모없는 존재라고 여긴 것 같다며 푸념했습니다.


남 씨는 또 퇴직 이후 진주고용노동지청에 진정서를 접수합니다. 본인이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귀할 때 불리한 처우를 받았다며 롯데쇼핑 사업주를 처벌해주길 원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담당 근로감독관을 기자가 직접 만났습니다. 근로감독관은 진정 접수 이후 롯데쇼핑 측과 조사 전에 연락을 취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남 씨가 복직을 원하면 경남 자리를 알아보겠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근로감독관은 남 씨에게 전화를 걸어 복직 의사를 물어보면서, 사측이 경남 자리를 알아봐 줄 수 있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보입니다. 해당 내용은 남 씨가 근로감독관과 통화한 내용을 녹음해 증거로 가지고 있습니다.

3. 퇴직 후에 새 일자리를 정했다?

지난해부터 직장 내 괴롭힘 등 직장 갑질에 관한 취재를 많이 하게 됐습니다. 대기업, 공공기관, 중소기업 등 직장 갑질 피해자들을 여러 만나봤습니다. 사측의 입장도 그때마다 항상 들어왔습니다. 100%는 아니지만, 직장 갑질 피해자 개인의 문제를 들먹일 때가 많습니다. 직장 갑질 문제를 제기한 사람의 평소 근무 태도, 사생활 문제를 거론하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이번에 볼음도로 발령 난 농협 직원 같은 경우에도 근무 태도 문제 지적이 나왔습니다.

남 씨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남 씨가 퇴직 전부터 이미 다른 일자리를 구했다는 등 애초부터 퇴사할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남 씨는 복직을 앞두고 하지정맥 수술까지 했습니다. 근무 특성상 매장 내에서 많이 걸어야 할 만큼 다리가 불편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2022년 8월 27일 근무를 앞두고, 회사 측에서 전화가 먼저 왔습니다. 8월 11일 지점장 전화를 시작으로, 8월 19일에는 영남지역장이 전화 걸어와 서울 중계점 발령을 시사했습니다.


남 씨는 이직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다만 서울 중계점 발령을 거스를 수 없으니 체념하고 이때부터 부산에서 출퇴근한 자리를 알아봤습니다. 육아휴직 기간 2년 동안에는 월 115만 원을 받는 게 전부였습니다. 복직을 했는데 또다시 수입이 없으면 생계가 어려우니 곧바로 구직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부산 지역의 한 중소마트에 다행히도 자리가 있어 이직할 수 있게 됐습니다. 롯데쇼핑에 다닐 대부터 낮은 급여이지만, 40대가 넘은 남 씨가 새로 급하게 구할 수 있는 직장은 많지 않은 게 현실이었습니다.
 

롯데 남성 육아휴직 TV 광고

롯데 그룹은 과거에 남성 육아휴직을 장려하는 TV 광고도 했습니다. 저출산 극복을 롯데가 함께한다는 내용입니다. 해당 콘텐츠는 지금도 유튜브에 '롯데 남성 육아휴직'이라고 검색하면 볼 수 있습니다. 남성 직원들이 편하게 육아휴직을 쓰고 가정을 돌보는 모습이 나옵니다.

육아휴직은 다른 휴직과 성격이 다릅니다. 육아휴직은 근로자에게 단순히 휴식을 제공하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저출산 시대에 아이를 낳게 하려면 그만큼 양육에도 어려움이 비교적 없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정부가 나서는 것이고, 대기업들도 육아휴직 장려에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육아휴직을 장려한 가운데 복직을 할 때 불리한 처우를 줘서는 당연히 안 됩니다. 더 엄격한 잣대로 봐야 합니다. 남녀고용평등법에도 불리한 처우를 했을 때 사업주를 과태료가 아닌 형사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원거리 발령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이번 남 씨의 사연에서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원거리 발령을 문제 삼는 게 아닙니다. 근로자가 본인이 원치 않는 곳으로 발령이 나서 근무하는 경우는 허다합니다. 인사 자체가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건 누구나 잘 알고 있습니다.

남 씨의 사연은 단순히 인사 불만 문제가 아닙니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온 남 씨가 왜 회사를 스스로 관둘 수밖에 없었는지 주목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회사는 남 씨를 위해 얼마나 배려를 하고, 남 씨가 회사를 계속 다닐 수 있도록 진심을 다해 도움을 줬는지 따져봐야 합니다. 불리한 처우를 한 게 인정된다면 사측은 법적으로 마땅히 처벌받아야 합니다. 회사 경영이 어려워 어쩔 수 없었다는 것도 면죄부가 되지 않습니다. 롯데쇼핑 슈퍼사업본부가 경영이 어려워 폐점하는 점포가 많아지는 것은 경영인들의 잘못입니다. 남 씨처럼 일선 마트에서 시키는 일을 묵묵히 해온 근로자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박찬범 기자cbcb@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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