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앙이 눈앞에, 맨손으로 수습" 업소 직원이 전한 참사
"시신을 50구는 나른 것 같아요. 처음에 들것이 부족해서 다른 분들이랑 같이 맨손으로 옮기기까지 했어요."
어제(30일) 밤 이태원 모 업소 직원 A 씨는 참사 현장에서 밤새도록 벌어진 시신 수습과 인명 구조 상황을 세세하게 전했습니다.
건장한 체격인 A 씨는 쓰러진 사람들을 발견한 직후 경찰과 소방대원들을 도와 시신을 옮기는 일에 나섰습니다.
A 씨에 따르면 사고가 발생한 지난 29일 오후 10시 15분부터 이튿날 새벽 두세 시까지는 업소 관계자와 행인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심폐소생술(CPR)을 하고 시신을 옮기는 등 구조작업을 도왔습니다.
'사망자 154명, 중상자 33명, 경상자 116명'이라는 대형참사를 빚은 현장에 경기·강원 등 타지역 119구조대가 도착하기 전까지는 일손과 장비가 모두 부족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폭이 3.2m에 불과한 경사진 골목에서 산 사람과 이미 숨진 사람들이 뒤엉켜 겹겹이 깔려 있는 현장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습니다.
A씨는 "몇 시간 동안 시신을 계속 나르면서 '한 명이라도 더 살려야 한다'는 생각 말고는 할 수 없었다"라며 "영화 속에서나 보던 재난, 재앙이 눈앞의 현실이었다"고 당시를 떠올렸습니다.
그는 이어 "시신들 아래 깔린 한 분이 '살려달라'고 막 소리를 지르는 것을 발견해 바닥에서 겨우 꺼내드리기도 했다"면서 "한 명이라도 살릴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참사가 벌어진 골목 바로 앞에서 근무하고 있었던 A 씨는 그날 인파가 얼마나 몰려들고 있었는지를 설명하며, 예견된 인파에 비해 안전에 대한 대비는 부족했음을 지적했습니다.
A 씨는 "사고가 난 골목은 지하철 이태원역 1번 출구 바로 앞이다"라면서 "저녁때부터 이미 이태원역은 지하 승강장에서 1번 출구까지 올라오는 데만 20분 넘게 걸릴 정도로 사람이 몰려들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어 "핼러윈 때마다 이태원에 놀러 왔었는데, 이날은 다른 때보다 골목에 인파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면서 "통행만 제대로 통제됐다면 이런 비극은 발생하지 않지 않았을까"라며 아쉬움을 나타냈습니다.
이태원 관할인 서울 용산경찰서는 핼러윈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하고 경찰기동대 인력 200명을 투입했는데, 이마저도 마약 단속 등 치안 위주의 배치였습니다.
참사 당일 이태원을 찾은 인파는 10만 명으로 추정됩니다.
A 씨는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는 아주 초반에 물론 경찰들이 통행을 정리하려고 하긴 했었다"면서 "그런데 경찰들이 너무 적은 인원으로 하려다 보니 안 된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A 씨는 사고 직후 일부 시민이 참사 현장 옆에서 여전히 흥겨운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던 상황에 대해서도 언급했습니다.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는 시민들의 모습이 온라인을 통해 퍼지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습니다.
A 씨는 "사고 초기 소방대원들이 도착해 CPR을 하고 '살려달라'는 소리가 들리는데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것을 핼러윈 퍼포먼스로 생각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 "그 사람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해 자리를 떠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던 것 같다"고 기억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술과 핼러윈이라는 축제 특성 등 여러 가지 때문에 인지부조화가 생기지 않았나 싶다"면서 "하지만 그들은 아주 일부이고, 거기 있던 대부분의 사람은 모두 정신없이 구조에 몰두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새벽시간대 구조대원들이 속속 도착하자 A 씨도 자신이 일하는 업소로 돌아갔습니다.
상황이 수습될 때까지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던 손님들을 내보내고 정리를 한 뒤 아침 7시가 돼 집에 돌아온 A 씨는 종일 참사 현장의 잔상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특히 20대 남성인 A 씨는 자신의 또래들이 주로 희생됐다는 점에서 인터뷰 내내 "너무 안타까웠다"는 말을 반복했고, "나뿐만 아니라 거기 있던 모든 사람이 모두 '살려야 한다'는 마음으로 하나 돼서 움직인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사진=연합뉴스)
유영규 기자sbsnewmedi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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