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노트] 중국보다 위태로운 홍콩 증시
중국 주식시장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홍콩 증시가 유독 변동성을 키우고 있다. 중국 증시보다 환율 영향을 많이 받고, 외국인 투자자 비중이 높다는 점이 급등락 요인으로 꼽혔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3연임 확정 이후 불거지는 지정학적 리스크가 홍콩 시장의 공매도 확대 등 극단적인 자금 유출을 야기했다는 분석이다.
28일 홍콩 항셍지수는 564.88포인트(3.66%) 하락한 1만4863.06에 거래를 마쳤다. 같은날 홍콩 증시에 상장된 중국 본토 기업으로 구성된 홍콩항셍H지수는 전날보다 4.08% 하락했다. 기술주 중심의 항셍과기지수는 5% 이상 하락했다. 시진핑 3기 출범을 확정한 중국 당대회가 끝난 이후 홍콩H지수는 5000선을 간신히 지켜내고 있다.
앞서 시진핑 3기 출범 첫날이던 24일 홍콩 증시 주요 지수는 일제히 폭락했다. 홍콩 항셍지수는 6.36% 떨어진 1만5180.69에 장을 마감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거진 지난 2009년 초 이후 최저 수준이다. 홍콩H지수는 7.3% 급락한 5114.48까지 밀렸다. 역대 중국 공산당 당대회 직후 기준으로 1994년 통계 집계 이래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제로 코로나를 비롯한 기존 정부의 정책에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실망감이 투자심리에 반영된 것으로 풀이됐다. 저스틴 탕 유나이티드퍼스트파트너스의 아시아 리서치 책임자는 “시 주석 측근들이 다수 선출되면서 시 주석이 시장 친화적이지 않은 정책을 자유롭게 내놓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고 투자자들은 우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홍콩 증시의 경우 중국 증시와 달리 달러 페그제 영향을 받고, 외국인 비중이 높은 만큼 변동성이 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홍콩은 1993년부터 홍콩달러의 가치를 미국 달러와 연동시켜 외화 변동성을 제거하는 달러 페그제(달러당 7.75~7.85홍콩달러 유지)를 시행하고 있다. 달러 강세가 이어지자 홍콩달러를 미 달러화로 바꿔 자금을 빼가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성연주 신영증권 연구원은 “달러 강세로 인한 홍콩 환율 방어를 위한 시중 유동성은 당분간 줄어들 것”이라며 “홍콩 환율은 지난 5월부터 밴드 상단까지 상승한 이후 5개월간 그 흐름을 지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홍콩 금융관리국은 환율 밴드를 유지하기 위해 외환보유고 조정에 나섰다”며 “홍콩 시중 유동성(M3)가 줄어들면서(평가금액차) 주가 지수에도 영향을 줬다”고 설명했다.
더욱이 외국인 비중이 높은 홍콩 증시 특성상 이번처럼 지정학적 리스크가 발생했을 때 자금 유출이 심화한다는 평가다. 중국 본토 증시 외국인 비중이 4%에 그치는 반면, 홍콩 증시 내 그 비중은 41% 수준이다. 당대회 전후 지정학적 리스크는 역대 최고치까지 상승한 공매도 비중이 반증한다. 공매도는 주가 하락이 예상될 때 주식을 빌려 매도한 뒤, 실제 주가가 떨어지면 싼 가격에 다시 사들여 차익을 내는 투자법이다.
올해 홍콩거래소 전체 거래량 중 공매도 거래대금 비중은 평균 23.4%로 직전 가장 많았던 2019년 홍콩 시위(19.7%), 2016년 조지소로스 중국 위안화 공격(17.0%) 당시를 모두 웃돈다. 홍콩 증시 공매도 거래 비중은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해 이달 7일 29.7%까지 치솟았다. 플랫폼, 전기차 등 성장 산업이 공매도 집중 타깃이 됐다.
정진수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올해 역대급으로 증가한 홍콩 공매도는 중국 체제 변화에 내재된 리스크에 베팅하려는 투자자가 많았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주가 하락과 공매도 간에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높다고 보긴 어렵지만, 공매도 매커니즘 상 주가 변동성과는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홍콩 증시가 낙폭을 확대하면서 관련 주가연계증권(ELS)에 투자한 투자자들 원금 손실 공포도 커졌다. ELS는 기초자산인 지수나 개별종목 가격이 만기까지 정해진 조건을 유지하면 약속한 수익률을 지급하지만, 손실 발생 기준선 아래로 떨어지면 원금 손실이 날 수 있다. 특히 홍콩H지수는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유로스톡스, 코스피200과 더불어 국내 지수형 ELS 기초자산으로 가장 많이 활용되는 지수로 꼽힌다.
성 연구원은 “홍콩H지수 주가 수준은 바닥이나, 환율이나 지정학적 리스크가 상존하기 때문에 4분기까지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게 낫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만 내년 상반기에는 환율 리스크가 점차 낮아지고, 중국 경기 반등 속도 및 3월 전인대에서 최종 인사 마무리 등 변수에 따라 반등할 수도 있다”며 “이 경우 기존에 공매도가 집중된 업종에 단기적으로 수급이 몰릴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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