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서 취업 상경 20대 딸들, 고향 친구와 함께 참변

2022. 10. 31.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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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인파가 많은데 어떻게 통제하지 않을 수 있나"
사진=연합뉴스

서울에 취직해 상경한 착한 첫째 딸은 엄마 아빠 잘 있으라는 말도 남기지 못하고 영영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습니다.

30일, 이태원 압사 사고 뉴스를 본 어머니와 아버지는 전날 '친구 만나러 이태원에 간다'는 딸과의 통화가 떠오르며 불길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급하게 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은 부재중 통화만 수십 통 쌓여가자 불안은 무슨 일이 생겼다는 확신으로 바뀌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부모는 집 근처 파출소로 뛰어갔고, 확인한 딸아이의 휴대전화 위치는 '이태원'이었습니다.

부모는 파출소에 실종신고를 하자마자 바로 기차를 타고 서울로 향했습니다.

온갖 곳을 수소문하며 자식을 찾았으나, 돌아온 건 눈 감은 딸아이의 모습이었습니다.

심폐소생술(CPR) 흔적조차 없는 딸의 모습은, 살려보려는 누군가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떠난 것 아니냐는 생각에 부모의 마음은 무너졌습니다.

항상 웃고 밝았던 첫째 딸, 올해 2월 입사 시험에 합격해 서울로 혼자 상경한 후 정규직 전환을 위한 공부도 지속해왔습니다.

최근 필기시험을 통과하고 초등학교 때부터 친했던 단짝과 '이태원 놀러 간다'는 말에 부모는 "갔다 와. 다녀와서 면접 준비해"라며 흔쾌히 승낙했으나 그게 딸 아이와 마지막 대화가 될 줄은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다음 주 광주에 오기로 했던 딸을 기다리던 부모는 이날 오후 세상을 떠난 자식과 함께 광주로 왔습니다.

휴대전화 앨범에 저장된 딸 아이 사진에서 한참 눈을 떼지 못하던 어머니는 "아이가 너무 예뻐요. 꽃다운 나이잖아요. 아직 할 일도 많고 결혼도 해야 하고…"라며 "아직 아이 마지막 모습을 못 봤어요. 보면 아이를 떠나보내는 것 같아서 지금도 못 보겠어"라고 울먹였습니다.

그러면서 "인파가 그렇게 많은데 어떻게 통제하지 않을 수 있냐"며 "지금도 애타는 부모들이 많이 있을 거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함께 이태원을 갔던 A씨 친구 B씨의 빈소도 이날 오후 11시쯤 같은 장례식장에 마련됐습니다.

B씨도 3개월 전 서울에서 직장을 잡아 홀로 상경했습니다.

전날 뉴스에서 이태원 참사 소식을 들을 때만 해도 B씨 부모는 딸 아이가 그곳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걱정된 아버지가 다음날 오전 6시쯤 전화했지만, 수화기 너머 들리는 목소리는 낯선 남자였습니다.

'휴대전화를 이태원에서 주워 보관하고 있다'는 말에 아버지는 곧장 서울로 향했습니다.

서울서 만난 이는 휴대전화를 건네주면서 '내 친구가 이태원에서 참변을 당했다. 따님을 찾고 있다면 실종신고를 해보시라'고 했고, 아버지는 서울서 실종신고를 한 뒤 하염없이 딸아이의 소식을 기다렸습니다.

한참을 기다리던 중 들려온 소식은 사망자 가족에 포함됐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휴가 때마다 가족들을 보러 광주로 왔던 딸이었는데, 몇 주 전에 봤던 얼굴이 마지막이 될 거라고는 아버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평소 착하고 생활력이 강했던 딸은 부모의 자랑이었습니다.

사고 전날 친척끼리 모인 B씨 외할머니 기일 자리에서도 B씨에 대한 자랑이 이어졌다.

B씨 외숙모는 "딸이 '일이 재밌다', '3개월 만에 승진해 꼭 서울서 성공할 거다'라고 했다더라"며 "월급을 받으면 꼭 엄마에게 선물도 해주고 참 예쁘고 착한 아이였다"고 전하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이어 "고등학교 다닐 때도 엄마가 항상 차를 태워 등하교시킬 정도로 귀하게 키웠다"며 "엄마는 딸이 더 좋은 직장을 잡아, 서울로 이직한다고 할 때 좋으면서도 멀리 보내려니 불안했는데 결국 이렇게 됐다고 많이 슬퍼한다"고 눈물을 닦았습니다.

영정 사진을 멍하니 보고 있던 B씨 오빠는 "이런 일을 겪게 돼 충격적이고 참담한 심정"이라고 말을 아꼈습니다.

서울 이태원 압사 참사 사망자 151명 중 광주 시민도 3명 이상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현재까지 남성 2명과 여성 1명 등 3명이 전날 이태원을 방문했다가 사망했고, 여성 1명은 뇌사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사진=연합뉴스

[디지털뉴스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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