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특구를 가다] ⑨ 기초과학연구원 '국가대표 넘어 세계 선도의 길로'

김준호 2022. 10. 31.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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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대형·집단 기초과학 연구…"집단지성 구축, 세계 수준 연구 능력 입증"
고심도 지하실험실 '예미랩'·중이온가속기 '라온' 등 인프라 구축
대덕특구 전경 [촬영 김준호]

[※ 편집자 주 = 1973년 서울 홍릉의 연구단지를 대체할 '제2연구단지 건설기본계획'이 확정됨에 따라 대전 유성구·대덕구 일원 67.8㎢ 면적에 대덕연구개발특구(대덕특구)가 조성됐습니다. 내년이면 출범 50주년을 맞는 대덕특구는 현재 30여개 정부출연 연구기관과 295개 연구소기업, 1천여개 벤처·중견기업, 다수 대학이 포진해 매년 수만개의 미래형 연구 결과물을 쏟아내는 국내 최대 원천기술 공급지로 성장했습니다. 연합뉴스는 대덕특구 내 연구기관 가운데 핵심 성과를 창출해내고 있는 10곳을 선정해 역사와 연구 성과, 중점 연구 분야 등을 소개하는 기획 기사를 매주 한 곳씩 10회에 걸쳐 송고합니다.]

기초과학연구원 전경 [기초과학연구원(IBS)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대전=연합뉴스) 김준호 기자 = "강원도 정선군 예미산 지하 989m에 위치한 실험실인 예미랩은 기초과학연구원(IBS)이 국가적으로 왜 필요한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성과입니다."

노도영 IBS 원장은 31일 연합뉴스에 "예미랩 준공을 계기로 그동안 국내에서 시도되지 못했던 미개척 분야 연구가 가능해질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예미랩은 지난 9월 IBS가 구축을 마친 세계에서 몇 안 되는 고심도 지하실험실이다.

지하 깊은 곳에 자리한 이 실험실의 연구대상은 하늘 위 우주다.

우주의 26.8%를 차지하지만, 아직 정체를 한 번도 드러내지 않은 '암흑물질'과 현재 우주를 생성할 수 있게 한 '중성미자'의 성질을 규명하는 곳이다.

강원도 예미산 1천m 지하에 세계 6위급 지하실험실 조성 [촬영 문다영]

예미랩이 구축되기 전까지 IBS 연구진은 강원도 양양 양수발전소 내 지하 700m 지점에 있는 터널 한쪽에서 '셋방살이' 연구를 해왔다.

실험 장비를 두고 나면 2명이 겨우 나란히 걸어갈 수 있는 협소한 공간에서 최고 권위 국제학술지인 '네이처'(Nature) 등에 여러 성과를 발표했다.

IBS는 양양 지하실험실의 설비들을 차례로 예미랩으로 옮긴 뒤 내년부터 우주 구조·기원을 밝히기 위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다.

노 원장은 "세계적인 기초과학 연구시설이 마련된 만큼 미국 항공우주국(NASA)을 비롯해 여러 연구진이 예미랩 인프라를 활용한 협력 연구를 제안해오는 등 국제 과학계의 관심이 크다"며 "국가 기초과학연구소로서 IBS는 예미랩과 같은 세계적 기초과학 인프라를 구축·운영하며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하 1천m 지하실험실 '예미랩' [연합뉴스 자료]

2011년 설립된 IBS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기초과학 전담 연구기관이다.

IBS에는 매년 10월 노벨상 발표 시즌마다 '유력 후보'로 꼽히는 연구자들이 대거 포진했는데, 이들처럼 수월성을 가진 과학자들을 발굴해 마음껏 연구할 수 있는 자율적인 연구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IBS의 연구 방식이다.

설립 11년 차를 맞은 현재 IBS는 33개 연구단, 2개 연구소 체제로 운영되면서 국가 기초과학 거점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국내 과학계에서 IBS의 연구실적은 독보적이다.

네이처·사이언스·셀 등 세계 3대 과학학술지(NSC) 논문 게재는 한 국가 혹은 기관의 연구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로 여겨진다. 2014년 9월부터 2018년까지 3대 학술지에 한국인 연구자가 교신저자로 발표한 논문 가운데 37.1%에는 IBS 소속 연구자가 관여했다.

국제 학계에서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네이처 출판그룹은 IBS의 연구 수준을 세계 연구기관과 비교한 결과, 전 세계 정부연구소 중 17위 수준의 경쟁력을 가진다고 평가했다. 출처 NATURE INDEX. [기초과학연구원(IBS)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IBS가 국제 과학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2016년인데, 네이처출판그룹(NPG)이 IBS를 최근 4년(2012∼2015년)간 눈에 띄는 성장을 이룬 '라이징 스타'(Rising Star)로 지목하면서부터다.

2020년 네이처는 IBS를 세계 17위 수준의 정부연구소로 평가했다. 이 모든 게 IBS의 짧은 역사 속에서 이뤄낸 성과다.

네이처는 2020년 발간한 '네이처 인덱스 2020 한국판 특별호'에서 "IBS는 한국 기초과학의 상징이자,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에서 개척자(First Mover)로 전환하려는 한국 연구 개발(R&D) 정책 기조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이어 "지난 10여 년의 한국 기초연구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변곡점은 IBS를 설립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IBS는 예미랩과 같은 대형 기초과학 연구 인프라를 구축·운영하면서, 우리나라에서 하기 어려웠던 대형·장기·집단 기초과학 연구를 수행한다.

한국형 중이온가속기인 라온(RAON)도 IBS가 구축한 대표적인 대형 인프라다.

라온은 초신성 폭발 순간을 재현해 원소의 기원, 즉 우주 근원을 밝히기 위한 대형 장치다.

대전시 유성구에 소재한 라온의 부지 면적은 축구장 130개 크기로, 현재까지 국내에서 건설된 연구시설 중 최대 규모다.

지난 7일 오후 3시 라온은 첫 번째 빔을 인출했는데, 이는 당초 목표한 성능대로 작동되는지를 확인하는 첫 관문을 통과했다는 의미다.

한국형 중이온가속기 라온(RAON)의 저에너지 가속 구간인 SCL3 가속관의 모습. [기초과학연구원(IBS)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인류 근원을 탐구하는 동시에 인류 사회가 현재 직면한 위기에서 국민을 지키는데 필요한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2020년 IBS의 'RNA(리보핵산) 연구단'은 세계 최초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유전자 지도를 완성해 공개했다.

RNA 분야 세계적 석학인 김빛내리 단장이 8년간 연구단을 이끌며 꾸준히 인력과 기초과학 인프라를 구축해온 덕분이다.

연구단은 연구 시작 한 달 만에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정체를 자세히 밝혀낼 수 있었다.

지난해에는 한국바이러스기초연구소를 설립해 바이러스·질환 연구를 수행하는 동시에 국가 바이러스 연구 협력 활성화를 위한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IBS는 대전시민과 과학자들이 함께 과학을 즐기고 문화를 소통하는 공간인 과학문화센터도 운영하고 있다. 대전 엑스포의 상징인 '한빛탑'과 '엑스포 다리'를 바라보는 곳에 있는 센터는 과학을 보고(Seeing), 배우고(Learning), 직접 체험하는(Doing) 복합 문화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IBS는 수월성·개방성·자율성·창의성이라는 4대 원칙을 바탕으로 수학·물리·화학·생명과학·융합 등 분야에서 운영 중인 33개 연구단이 인류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인류 문명을 획기적으로 진보시키는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방침이다.

기관 표지석 [기초과학연구원(IBS)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노도영 원장은 "기초과학에 제대로 투자한 기간은 이제 20년 남짓인데 그 마지막 10년 동안 IBS를 설립·운영하면서 한국 기초과학의 드림팀을 모았다"며 "설립 이후 IBS는 국가 기초과학연구소에 걸맞은 최고의 집단지성을 구축하고, 우리나라도 세계 수준 기초과학 연구를 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최근 인류는 기후변화 등 자연을 훼손하며 야기된 많은 위기를 겪고 있다"며 "이러한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기초과학이 인류와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kjun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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