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난민은 전체 인구 0.007%…‘가짜 난민’은 없다”
“제주 예멘 4년…아프간과 왜 달랐나”
외국인보호소·트랜스젠더 난민 등 이슈 관심
2018년 제주 예멘 난민들과 2021년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들 모두 ‘난민’이지만 이들에 대한 한국 사회의 반응은 엇갈렸다. 내전을 피해 제주에 온 예멘인에겐 “가짜 난민” “범죄 우려” 등의 혐오성 반대 여론이 컸던 반면, 탈레반 정권을 피해 입국한 아프간 특별기여자 378명은 비교적 많은 지원과 환대를 받으며 정착했다.
지난 33년간 몸 담은 유엔난민기구(UNHCR)를 한국대표부 대표 임기를 끝으로 31일 은퇴하는 제임스 린치(65)는 지난 3년여간 한국에서 지내면서 비슷해 보이는 두 가지 사안에 대한 한국 사회의 상반된 반응에 큰 관심을 뒀다. 그가 내린 결론은 “(정부가) 어떻게 메시지를 전달하느냐”의 문제였다.
지난 27일 서울 중구 유엔난민기구 사무실에서 만난 린치 대표는 “아프간에서 한국정부가 펼친 ‘미라클 작전’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부모가 한국전쟁 때 구출된 ‘크리스마스의 기적(흥남 철수작전)’을 떠올리게 했다. 시민들이 이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도와야 하는 이유를 인식하게 된 계기였다”고 말했다. 그는 예멘 난민 사안에서도 “이들이 처한 상황과 한국에 올 수밖에 없던 이유가 정확히 전달됐다면 대중의 수용도가 높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출신 변호사였던 린치는 1989년 유엔난민기구 태국 사무소를 시작으로 이라크, 키르기스스탄, 방글라데시 등 난민이 있는 현장 13개국을 누볐다. 2019년 7월 한국 대표 부임 전에는 7년간 동남아시아 지역대표를 맡는 등 아시아 난민 문제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지난날을 돌이켜보며 “1950년 2차 세계대전으로 발생한 대규모 난민 사태를 해결하고 소멸되는 것을 목표로 만들어진 유엔난민기구가 지금까지 존속하는 것은 슬픈 일”이라며 “지금 세계는 가장 많은 난민이 발생한 순간”이라고 했다.
국내 난민 혐오 여론에 대해 그는 “아인슈타인도 2차대전으로 미국에 넘어온 난민으로, 난민이 지역사회에 기여할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며 시민들의 인식 전환을 촉구했다. 그는 이어 “제주 예멘 난민 사례를 보면, 이들이 경제적 이유로 입국한 ‘가짜 난민’이고 범죄율이 높아질 거란 주장이 있었지만 4년이 지난 지금 그들이 문제를 일으켰다는 소식은 들어보지 못했다”고 했다.
한국이 난민심사제도를 운영한 1994년 7월부터 지난해까지 난민 인정 또는 인도적 체류 자격을 부여받은 외국인 수는 3575명으로, 전체 인구의 0.007%에 불과하다. 린치는 이를 근거로 “엄격한 심사를 받고 난민이 된 이들을 일자리를 빼앗는 ‘가짜 난민’으로 부르는 건 합리적이지 않다”는 생각도 덧붙였다.
국내 난민 제도 가운데 린치는 강제추방 대상 외국인들을 수용하는 외국인보호소의 구금 문제엔 단호하게 반대했다. 법무부는 난민신청 절차를 밟는 외국인을 보호소에 수용 중이다. 현 출입국관리법상 구금 기간의 상한이 없고, 아동도 구금 대상이다. 린치는 “아동이 구금되는 경우를 볼 때가 가장 비극적”이라며 “보호시설 개선 필요성이 곧 난민신청자에 대한 구금을 허용하는 이유가 되어선 안 된다”고 했다. 일단 구금되면 존엄한 대우를 받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난민인정률은 10년 넘게 1%대에 머무르는 수준이지만 점진적인 변화도 있다. 지난 18일 서울고법은 성 정체성을 이유로 박해를 받은 트랜스젠더도 난민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린치는 “법무부와도 여러 사회적 그룹 중 누가 난민으로 인정될 수 있는가를 두고 실무적인 논의도 하고 있다”며 “이번 법원 결정은 난민기구에서도 굉장히 긍정적인 발전으로 본다”고 했다. 그는 또 “한국은 체류 중인 우크라이나와 미얀마인에 대한 인도적 특별체류 조처도 시행했는데, 이는 진일보한 결정”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법무부가 추진 중인 이민청 신설에 대해선 “기관 설립 단계부터 난민이나 이주민에 대한 국제적 보호가 고려된다면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했다.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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