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욱의 기후 1.5] 안에선 외면, 밖에선 주목…'한국의 바람'

박상욱 기자 2022. 10. 31.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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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55)
한국-덴마크 녹색성장 동맹 11년 톺아보기 (하)

'세계 최초 녹색성장 동맹'을 맺은 두 나라, 한국과 덴마크의 에너지전환을 살펴보는 마지막 순서입니다. 2011년,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경제적 목표와 환경적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자던 두 나라는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먼저 동맹의 한 축, 덴마크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바람의 나라'로 거듭났습니다.

1990년 이래, 덴마크의 풍력발전량은 증가세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0여년 전, 덴마크의 연간 풍력발전량은 610GWh에 불과했습니다. 당장 풍력발전이 턱없이 부족한 오늘날 우리나라의 풍력발전량의 5분의 1 수준입니다. 그런데, 해마다 증가를 거듭하다 한국과 녹색성장 동맹을 맺은 2011년, 풍력발전량은 9,774GWh로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2020년엔 무려 1만 6,353GWh의 전력을 생산했습니다.

우리나라는 그사이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2018~2020년 최근 3년간 풍력발전량은 2,465GWh에서 3,153GWh로 늘어나는 데에 그쳤습니다. 물론, 태양광발전은 같은 기간 9,208GWh에서 18,248GWh로 크게 증가했지만요. 얼핏 '덴마크보다 한국이 더 나은 것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는 숫자입니다. 하지만 '비중'을 보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2020년, 덴마크에서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의 발전비중은 무려 84.3%에 달했습니다. 반면, 그해 한국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6.6%에 그쳤죠. 한국보다 국토 면적도, 인구도 적은 만큼 전체 전력수요 자체가 적다 보니 풍력과 태양광 합산 발전량은 한국이 더 많음에도 발전비중은 반대로 차이가 난 겁니다.

1990년 610GWh였던 덴마크의 풍력발전량이 30년 후 16,353GWh로 늘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갑자기 바람이 더 많이 불어서가 아니라, 그 바람을 비로소 '제대로 활용'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더 많은, 더 효율이 좋은 발전기를 늘려나간 것이죠. 최근 10년간 발전설비 용량의 변화를 살펴봤습니다.

2012년 당시 덴마크에 설치된 풍력발전설비의 용량은 총 4,162MW였습니다. 2021년엔 7,014MW로 크게 확대됐고요. 태양광 역시, 2012년 402MW에 불과했던 것이 2021년 1,540MW로 늘어났습니다. 어떻게 수많은 터빈이 설치될 수 있었던 걸까요. 덴마크라고 해서 처음부터 풍력터빈의 가격이, 이를 설치하는 비용이 남들보다 저렴했던 것은 아닐 텐데 말입니다. '글로벌 해상풍력 1위'인 덴마크의 에너지 기업, 오스테드 본사에서 그 이유를 들어봤습니다.

“사업 초기, 각종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으로 여겨졌던 것은 '재생에너지는 비싸다'는 인식이었습니다. 재생에너지를 그저 확대하는 것뿐 아니라 '재생에너지 사업이 성공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도 중요했죠. 때문에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비용을 줄이고, 발전단가를 내릴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공급 계약을 체결한 여러 기업과 협력을 하며 터빈의 사이즈를 키워온 것 역시 그러한 노력 중 하나입니다. 1991년, 0.5MW 짜리 터빈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점차 터빈을 키워 오늘날 12MW 터빈까지 만들게 됐죠. 이렇게 터빈이 커지며 사업성을 개선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이젠 해상풍력의 발전단가가 도리어 석탄발전 보다 낮아지게 됐습니다.”
잉그리드 라우머트 오스테드 수석 부사장

오스테드는 '화석연료에서 청정에너지로 전환한 최초의 에너지 기업'으로 꼽힙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친환경'이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스테드의 전신인 동에너지(DONG Energy)는 덴마크의 국영기업으로, 이름 그대로(DONG, Danish Oil and Natural Gas) 북해의 석유와 천연가스를 이용한 에너지 사업을 벌였죠. 당시엔 유럽에서 가장 탄소 집약적인 에너지 기업 중 하나였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석유공사와 가스공사가 합쳐진 에너지기업과 같았던 동에너지가오스테드로 이름을 바꾼 것은 2017년입니다. 당시 운영 중이던 석탄화력발전소의 단계적 폐지를 결정하는 한편, 석유 및 천연가스 사업을 매각하게 됐죠. 더 이상 DONG이라는 이름과 상관없이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에 나선 겁니다.

북해의 거친 바람은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돕는 순풍과도 같았습니다. 덕분에 덴마크의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은 빠르게 늘어날 수 있었습니다. '재생에너지로 전기를 만들어 내기에 기후가 적합하지 않아'라는, 한국에서는 쉽게 접할 수 있는 주장이 나올 리 만무한 환경이었던 것이죠. 그런데, 한국의 환경이 정말 재생에너지에 적합하지 않은 걸까요? 많은 이들이 '적합하지 않다'고 하지만, 그러한 주장에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지만. 정작 '왜?'에 대해선 과학적인, 경제적인 근거를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덴마크와 한국의 풍질(風質)을 살펴봤습니다.

바람이 강할수록 붉게, 약할수록 파랗게 칠해진 지도입니다. 강한 바람으로 온통 붉게 표시된 덴마크의 풍질 지도와 달리, 한국의 지도는 색으로 보더라도 온화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한반도 3면의 바다는 노랑~빨강색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내륙에서도 동해안 태백산맥 일대와 중남부 내륙의 소백산맥 일대는 붉게 표시됐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풍력발전을 하기엔 충분하지 않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기에. 숫자와 같은 객관적인 지표에 따라, 냉정히 투자 여부를 판단하는 재생에너지 사업자에게 한국의 풍질에 대해 물었습니다.

“한국의 풍질이 북해만큼 좋은 것은 물론 아닙니다. 하지만 사업 타당성을 확보하기엔 충분할 정도죠. 해안선으로 멀어질수록 풍질은 더 좋아지고요. 아직 한국은 해상풍력발전 초기 단계인 만큼 발전단가는 높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점차 발전설비가 늘어날수록 이 역시 차차 내려갈 걸로 예상합니다. 때문에 한국 해상풍력의 시장성이 괜찮다고 판단하며, 이에 앞으로도 한국 시장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일 계획입니다.”
라스 루스 CIP 어소시에이트 파트너

덴마크의 CIP(Copenhagen Infrastructure Partners, 코펜하겐 인프라스트럭쳐 파트너스)는 에너지 인프라에 투자하는 펀드 운용사입니다. 덴마크의 국민연금을 주축으로 만들어진 곳인 만큼, 투자에 신중할 수밖에 없는 곳입니다. CIP는 COP(Copenhagen Offshore Partners, 코펜하겐 해상풍력 파트너스)라는 해상풍력 개발 및 운영사와 함께 움직이는데, CIP/COP는 이미 한국에서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중입니다. 그리고, CIP/COP처럼 한국의 바람에 주목해 풍력발전 사업에 나선 해외 기업은 여럿입니다.

“한국에서 개발 중인 부지에 1.6GW 규모의 풍력발전 사업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아시아 지역에서의 첫 대규모 프로젝트로 대만의 사례를 꼽을 수 있습니다. 현재 대만 창화에서 900MW 규모의 해상풍력 발전단지를 운영중인데요, 인천에서의 1.6GW 프로젝트가 완료되면, 이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해상풍력 발전단지가 됩니다. 연간 130만 가구에 공급할 수 있는 전력을 생산하게 되는데, 한국은 이를 통해 해상풍력의 리더로 거듭날 것입니다.

저희가 해외의 신규 시장에 진출할 때 가장 눈여겨보는 것으로 '일자리 창출'과 '지역 기업과의 성장'입니다. 그런데, 한국 같은 경우에는 이미 풍력발전의 글로벌 공급망에 참여 중인 기업이 다수 포진되어 있죠. 이미 한국 기업들과 2조 3천억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한 상태입니다.”
잉그리드 라우머트 오스테드 수석 부사장

우리나라에서 한국의 풍력 잠재력을 바라보는 관점과 해외에서 한국의 잠재력을 바라보는 관점은 너무도 달라 보입니다. 재생에너지에 주력하는 글로벌 기업뿐 아니라 쉘, 토탈 등 여전히 화석연료가 주력인 글로벌 에너지 기업조차 한국의 풍력 시장에 진출하는 중이지만 여전히 국내에선 '우리나라에서 무슨 풍력발전이냐'는 목소리가 지배적인 것이죠.

지난달 152번째 연재 〈[박상욱의 기후 1.5] 세상에 착한 에너지는 없다?〉에서 '한국에 재생에너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주장은, 국내 재생에너지 산업의 발달을 막고, 해외 사업자들에게 시장을 내어주기 위한 목적 외에는 그 쓰임도, 근거도 찾을 수 없다고 설명해 드린 바 있습니다. 우리가 정작 우리의 앞바다에 무관심한 지금의 상황. 누군가에겐 '절호의 기회'일 수 있습니다.

우리보다 풍질은 좋을지언정, 태양광 발전을 위한 입지 조건은 나쁜 덴마크조차 풍력과 태양광 모두를 늘리는 데에 큰 힘을 쏟고 있습니다. 덴마크처럼 앞바다에 석유나 천연가스도 없는 한국이 재생에너지 확대에 적극 나서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 멀리, 중동의 석유나 북유럽의 바람이라는 '남의 떡'은 커 보이는데, 정작 눈앞의 '우리 떡'은 왜 제대로 못 보는 것일까요.

우리가 늑장을 부리는 사이, 재생에너지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경쟁은 갈수록 격화하고 있습니다. 그간 유럽이 쥐고 있던 초반 패권을 경계하기 위해 중국과 미국은 다른 나라와는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재생에너지 확대에 열을 올리고 있죠. 그런데 태양전지 제조기업과 풍력터빈 제조기업도, 이를 통해 전국 각지에 전력을 보내는 전력 케이블의 글로벌 최고 수준의 기업도 모두 자리한 한국에서는 정작 이러한 위기의식, 시급함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일반 시민뿐 아니라 산업계와 학계 등 곳곳에서도 '재생에너지는 한국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주장이 여전히 들리는 요즘입니다. 부디, '한국은 에너지 자립을 해서는 안 돼'라는 의도는 아니기를, 에너지의 대외 의존이 지속되어야만 본인의 기득권이 유지된다는 이기심에서 비롯된 주장이 아니기를 바라봅니다.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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