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뒤 폐모듈 쓰레기 '대란' 온다"…고장난 태양광 모으는 獨기업
[편집자주] 대한민국에선 매일 50만톤의 쓰레기가 쏟아진다. 국민 한 명이 1년 간 버리는 페트병만 100개에 달한다. 이런 걸 새로 만들 때마다 굴뚝은 탄소를 뿜어낸다. 폐기물 재활용 없이 '탄소중립'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오염 없는 세상, 저탄소의 미래를 향한 'K-순환경제'의 길을 찾아본다.
10월19일(현지시간) 써늘한 아침, 독일 북부 항구도시 함부르크를 출발한 열차가 약 3시간 후 북서부 지방의 공업도시 귀터슬로(Gutersloh)역에 도착했다. 역에서 다시 차로 15분 가량 달려 마리엔필드(Marienfeld) 소재 독일 재활용 기업인 '라일링'(Reiling)의 태양광 폐모듈 처리시설을 찾았다.
100년 기업 라일링은 현재 창업주의 4대째가 운영하고 있다. 유리, 목재와 페트(PET) 등을 주로 다뤄온 기업으로, 2007년부터 태양광 폐모듈을 건축 단열재 등으로 재활용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라일링이 지난해 처리한 태양광 폐모듈은 약 5000톤으로 독일 전체 연간 발생량의 10% 정도를 차지했다.
이곳에 들어오는 태양광 폐모듈은 독일 연방환경청의 위임을 받은 EAR재단(Stiftung Elektro-Altgerate Register)의 요청에 따라 태양광 패널 제조사들이 옮겨온 물건들이다. 독일은 전자·전기 제품의 폐기물 관리방법을 규정한 법인 일렉트로G(일렉트로게)에 따라 제조사들이 태양광 패널 수거와 운반비용을 부담한다.
제조업체가 태양광 폐모듈을 운반해오면 여느 재활용센터와 마찬가지로 하차 전 트럭 무게를 재는 것으로 공정이 시작된다. 폐모듈을 내린 뒤 트럭 무게를 다시 한 번 재면 폐모듈이 얼마나 입고됐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곳 재활용센터에선 유리와 페트 등 다양한 재활용 소재를 처리할 수 있는데, 태양광 모듈은 유리와 같은 재활용 라인을 활용한다. 태양광 모듈은 주로 120×80㎝ 크기 제품들로 알루미늄틀(프레임) 안에 '전면유리-EVA필름-태양광셀-EVA필름-뒷판' 순으로 구성된다. 여기에서 유리는 전체 태양광 모듈의 76%를 차지하는데, 이를 재활용할 수 있도록 걸러내는 게 공정의 목표다.
먼저 태양광 폐모듈을 잘게 파쇄한다. 라일링의 태양광 부문 말테 피슬라케(Malte Fislake) 매니저는 "과거에는 모듈을 감싸고 있는 프레임을 제거하고 전선 등 전기 부품을 일일이 탈거했다"면서 "최근에는 공정에 들어가는 인력과 비용을 줄이기 위해 곧바로 파쇄공정부터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파쇄를 마친 태양광 모듈은 컨베이어 벨트 위 분리기로 올라간다. 체를 사용해 곡식에서 껍질같은 불순물을 걸러내는 것처럼 레일을 좌우로 진동시켜 공정별로 소재를 걸러낸다. 가장 무거운 알루미늄 프레임 조각을 걸러내고 남은 태양광 패널을 다시 파쇄, 진동세기와 체 크기를 바꿔가며 공정을 반복하면 패널 전면에 붙어있던 유리를 구분해 낼 수 있다고 한다.
피슬라케 매니저는 "태양광 모듈에서 나올 수 있는 중금속 오염을 막기 위해 카드뮴 소재 태양광 패널은 공정에 투입하지 않는다"며 "태양광 모듈을 처리하는 모든 공정에는 물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재활용 공정에서 추출된 유리는 대부분 건축에 쓰이는 단열재로 활용된다. 유리를 녹여 창문과 같은 판유리를 만들기 위해선 불순물을 제거해야 하는데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는 쉽지 않다고 한다. 라일링의 연구개발(R&D) 부문 민 둑 당(Minh Duc Dang) 매니저는 "재활용 유리로 새 제품을 만들기 위해선 유리 1톤당 불순물이 3g(그램) 이하로 떨어져야 한다"며 "현재 순수한 유리와 실리콘을 얻어내기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했다.
라일링은 현재 독일 북서부 뮌스터(Munster) 지역에 연간 처리량 최대 4만톤 규모의 태양광 폐모듈 전용 처리시설을 짓고 있다. 내년 초 준공 예정인 뮌스터 공장이 가동되면 태양광 모듈의 성능 검사부터 재사용, 재활용까지 한번에 처리할 수 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라일링은 독일 내 태양광 폐모듈이 증가함에 따라 뮌스터와 마리엔필드 등 재활용 처리시설 4곳을 합쳐 1년에 5만톤 규모 처리 시설을 운영할 계획이다.
당 매니저는 "뮌스터 시설이 완공돼 태양광 폐모듈 처리에 집중하면 재활용 유리 순도를 높여 판유리 제작도 가능해지고. 실리콘도 잉곳(반도체 등 원료를 녹여 원통형으로 추출한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며 "최종 목표는 이 재활용 소재들을 활용해 새로운 태양광 모듈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밝혔다.
5년 뒤 기대수명을 다 한 태양광 폐패널(폐모듈) 발생량이 급격히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플라스틱, 폐배터리에서처럼 태양광 자원순환 체계 구축이 시급하다는 주장들이 나온다. 재사용까지 아우를 수 있는 관리체계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30일 환경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RPS(대규모 발전사업자의 일정비율 신·재생에너지 의무공급 제도)를 도입한 2012년부터 태양광 발전설비 신규 보급량이 본격적으로 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들의 기대수명(15~30년)이 도래하는 2027년 이후 태양광 폐패널 발생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에너지공단 신재생에너지 보급 통계에 따르면 국내 태양광 보급 실적은 △2018년 2.6GW △2019년 3.9GW △2020년 4.7GW △2021년 4.4GW로 나타났다. 2021년 말까지 국내 태양광 총 보급량은 21.7GW였다.
태양광 폐패널은 △2023년 988톤에서 △2024년 1110톤 △2025년 1223톤 △2027년 2645톤 △2029년 6796톤 △2032년 9632톤이 발생할 것이란 전망이다. 2023~2032년 새 발생하는 태양광 폐패널 규모만 10배 가까이 늘어난다.
서울연구원이 지난 2020년 발간한 '태양광 폐모듈 관리체계 구축방안'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서 시장점유율이 가장 높은 '결정질 실리콘계 태양광 모듈'은 통상 76%의 강화유리, 8%의 알루미늄(프레임), 5%의 실리콘, 10%의 고분자(밀봉재와 백시트 호일 등), 1%의 구리와 은 등으로 구성됐다.
태양광 업계에서는 이같은 구성을 토대로 현재 기술 수준으로는 태양광 폐모듈의 구성 소재 중 최대 98%까지 재활용이 가능하다고 본다. 주로 유리, 알루미늄, 은, 실리콘 등을 추출해 새 모듈 제작에 재활용할 수 있단 뜻이다.
정부도 현재 관련 제도·시설 구축을 준비중이다. 우선 환경부는 2023년 1월부터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에 태양광 폐모듈을 포함시키기로 했다.
EPR이란 제품의 생산자에게 제품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을 회수하고 재활용하는 의무를 부여하는 제도다. 재활용 의무를 부담하는 생산자가 회수와 재활용에 드는 비용을 부담하면 이를 재활용 업체에 지원금으로 제공하는 형태다. 태양광 패널 제조·수입업체별 재활용 의무량 미달성시 부과금은 kg당 727원으로 산정됐다.
환경부는 현재 EPR 제도 시행과 함께 '태양광 패널 공제조합' 설립도 준비중이며 설립 신청서 및 사업 계획서 등을 제출한 단체들의 사업 타당성과 실현 가능성 등을 검토중이다.
현행은 태양광 폐패널 발생시 가정용에 대해서는 생활폐기물로 분류·배출, 지방자치단체 집하장에 보관됐다 재활용 업체로 인계된다. 또 발전사업용에 대해서는 사업장폐기물로 분류·해체된 뒤 재사용 가능패널은 해외로 수출되거나 재활용 업체로 인계되고 있다.
현재 폐기물 관리법에 따라 태양광 폐패널 재활용 업체는 전국 두 곳으로 경북 김천의 윤진테크, 경기 인천의 원광에스앤티다. 두 곳을 합치면 연간 4200톤의 처리능력이다. 지난해 말에는 충북 진천에 연간 최대 3600톤을 처리할 수 있는 '태양광 재활용센터'가 준공돼 본격 사업을 준비중이다.
공제조합이 설립된다면 '가정용 폐태양광 패널 회수체계'를 마련, 가정에서 콜센터에 수거를 요청하면 공제조합이 일괄적으로 이를 다시 재활용업체로 인계되도록 할 예정이다. 발전사업용에 대해서는 '전국 거점수거체계'를 마련, 재활용업체에 인계되도록 할 계획이다.
한편 재활용 뿐만 아니라 태양광 폐패널 발생량을 줄이려면 재사용에 대해서도 논의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업계 전문가는 "현재는 태양광 폐패널 회수·철거 업체가 실제 다루는 폐패널 수치가 어느 정도인지에 관한 통계 관리 등이 미흡할 뿐만 아니라 재사용을 위한 국내 인증 체계마저 마련돼 있지 않아 재사용 인프라가 준비되지 않은 실정"이라며 "일부 재사용이 가능하다고 판단되는 패널들은 국내 대비 일조량은 풍부하지만 좀 더 저렴한 에너지 설치 비용을 요하는 다른 국가들로 수출되고 있는데 보다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업계에 따르면 태양광 폐패널 중 약 80%는 더이상 발전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제조된 지 약 20년이 지나 발전 효율이 떨어진 상태다. 전기차 폐배터리를 ESS(에너지저장장치)용으로 재사용 가능하듯 태양광 폐패널도 재사용처를 구할 수 있단 뜻이다.
태양광 폐패널 재사용을 국내 도입하기에 시기상조란 의견도 맞선다. 20년 전 통상 태양광 패널의 최대 효율이 15% 안팎인점을 감안하면 현재 10% 안팎까지 떨어졌을텐데 재사용에 실효가 있는지 의문이고 자칫 우리보다 기술이 앞선 다른 국가들의 폐패널이 국내로 대량 유입될 수 있단 우려에서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업계로부터 재사용이 필요하단 의견이 있단 점은 인지하고 있다"며 "실효나 국내 산업 경쟁력을 지키는 측면 등 여러 부분들을 함께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현재의 태양광 폐모듈 재활용 시설의 용량으로 2027년까지 재활용 처리가 가능한 것으로 판단하며 연내 확대 예상용량까지 감안시 2032년까지 처리가 가능할 것"이라며 "회수·재활용 체계 구축을 위한 공제조합 신청단체의 적합 여부는 현재 검토중으로 11월 중 결정될 것으로 보이고 내년 EPR 운영에 차질이 없도록 준비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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