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당신 잘못이 아니다"...피해자에 '2차 가해' 멈춰야

강은영 2022. 10. 31.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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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가족 유경근씨 "충분히 대비 가능했던 참사"
민변 "이태원 참사 사회적 재난...피해자 혐오 대처해야"
3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마련된 '핼러윈 인파' 압사 사고 희생자 추모 공간에 시민들이 헌화한 국화꽃과 추모 메시지가 놓여 있다. 연합뉴스

세월호 유가족인 유경근 전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이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발생한 참사에 대해 "핼러윈 파티에 간 당신, 당신 자녀의 잘못이 아니다"며 충분히 대비할 수 있었던 참사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참사를 두고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2차 가해' 우려가 나오고 있어서다. 일부에선 벌써부터 "개인이 이태원에 갔다가 사고났는데 왜 국가가 보상해주느냐", "죽어도 싸다" 등이 제기되고 있다.

유 전 위원장은 지난 30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태원 참사, 당신 잘못이 아니다'는 글을 올렸다. 그는 "끔찍한 일이 또 일어났다. 새벽녘 비몽사몽 중 소식 보고선 악몽을 꾸는 줄 알았다"며 "악몽보다 더 끔찍한 짓들이 여전히 자행되고 있다"고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비판했다.

그는 과거 영국에서 발생한 압사 사고를 언급했다. 유 전 위원장은 "1989년 4월 15일 영국 셰필드 힐즈버러 축구경기장에서 열린 FA컵 준결승전에 2만5,000명의 관중이 찾았고, 수용 가능 인원을 훌쩍 넘긴 숫자였다"고 했다. 이어 "경기 시작 6분 만에 참사가 일어났다. 이미 꽉 찬 입석 관중석에 끊임없이 사람들이 밀고 들어왔다"며 "결국 일찍 들어와 맨 앞에 있던 사람들이 철조망펜스와 뒤 관중들 사이에 끼었고 철조망펜스가 무너지면서 수많은 사람이 밀려 넘어졌다"고 설명했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등 야당 '이태원 참사 대책기구' 관계자들이 30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세계음식거리 핼러윈 참사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이한호 기자

이 사고로 96명이 숨지고 700명 이상이 다쳤다고 했다. 유 전 위원장은 "그 후 벌어진 일들은 이보다 더 끔찍하고 잔인했다. 경찰과 언론 그리고 소위 어른이라는 것들은 참사의 책임을 관중에게 돌렸다"고 썼다.

유 전 위원장은 "유가족들은 온갖 폄훼와 조롱을 견디며 숨진 가족의 명예와 참사재발방지를 위해 싸웠다"며 "지역의 시민, 언론, 지자체, 법률가와 전문가들도 힘을 보탰고 결국 27년 만인 2016년 4월 26일 영국 법원은 참사의 책임이 경찰에게 있다고 최종 판결했다. 영국정부는 잘못을 인정하며 공식사과를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태원 참사 피해자와 유가족을 향해 "핼러윈 파티에 간 당신, 당신 자녀의 잘못이 아니다. '죽어도 싼' 일은 더욱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어 "예상 가능했고 그래서 충분히 대비할 수 있었던 참사다.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할 정부의 책임은 무한대"라고 언급했다.

유 전 위원장은 "우리 자녀들, 가족들의 희생을 비하하고 조롱하는 것들이야말로 정신 나간 것들, 철없는 것들"이라며 "정부의 책임뿐만 아니라 악마보다 더 악마 같은 놈들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저 아깝기만 한 청춘들의 희생에 조의를 표한다. 원통함에 목 놓아 울 힘조차 없을 유가족들에게 깊은 위로를 전한다. 함께 울겠다"고 했다.


"이태원 참사는 사회적 재난...피해자 혐오 적극적 대처해야"

오세훈 서울시장이 3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사고 현장을 찾아 이번 참사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도 30일 성명서를 내고 이태원 참사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이태원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참사는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제2조가 규정하고 있는 사회적 재난"이라며 "헌법과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에 따라 재난 피해자의 권리를 보호해야 할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를 상기하며, 피해자 중심적 관점으로 이번 참사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을 촉구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희생자와 그 가족 등 재난 피해자에 대한 혐오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며 "재난 피해자에게 참사의 책임을 전가하거나 피해자의 명예와 인격을 훼손하는 혐오표현은 유가족과 주변인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인권침해행위"라고 경고했다.

언론에도 참사와 관련한 과열된 취재 등을 자제해달라고 했다. 이들은 "이번 참사 피해자의 프라이버시 침해를 방지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며 "언론 등의 과열된 취재, 보도 등으로 참사와 관련된 현장 영상 또는 사진이 SNS 등을 통해 확산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과 없는 영상 및 사진의 확산으로 참사 피해자뿐만 아니라 당시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프라이버시도 과도하게 침해될 우려가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참사와 관련된 영상 및 사진의 무분별한 공유를 막기 위한 대책을 조속히 수립할 것을 요청한다"고 언급했다.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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