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값 안정되나 했더니”… 러, 흑해 곡물수출 봉쇄에 서방 ‘비상’

라이베리아 국적 벌크선 '오스프레이 S'(Osprey S)호가 곡물 수출이 재개됐던 우크라이나 초르노모르스크항에 도착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을 위한 협정에서 빠지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하면서 우크라이나의 곡물에 부분적으로 의존하던 서방은 다시 비상이 걸렸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은 일제히 러시아를 향해 결정 번복을 촉구하면서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 정책 고위대표는 30일(현지 시각) 트위터를 통해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과 전화 통화를 하고 흑해 협정 및 우크라이나의 곡물·비료 수출을 보장하기 위한 조처의 조율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보렐 고위대표는 별도 게시글에서 “흑해 곡물 수출 협정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러시아의 결정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글로벌 식량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곡물·비료의 주된 수출 루트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라며 “러시아에 결정을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그가 언급한 협정은 흑해를 지나는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 선박의 안전 보장을 골자로 한 ‘흑해 곡물 이니셔티브’ 협정으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지난 7월 22일 유엔과 튀르키예(옛 터키)의 중재를 받아들여 내달 19일까지 한시적으로 유지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군이 자국 흑해함대를 공격했다며 전날 협정에서 탈퇴하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서방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의도적으로 ‘식량 무기화’ 카드를 다시 꺼낸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번 러시아의 조처가 겨우 안정세에 접어든 국제 식량 가격을 다시 치솟게 하며, 에너지값 급등으로 초래된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부추기는 악재로도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집계하는 세계식량가격지수는 전쟁 초반인 지난 3월 역대 최고치인 159.7까지 치솟았다가 9월에는 136.3으로 6개월 연속 하락했다. 그러나 세계 최대 곡물 수출국 중 하나인 우크라이나의 흑해 항로가 다시 막힐 경우 식량 가격은 언제든 다시 뛸 가능성이 크다.

오아나 룬제스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대변인은 이날 “러시아가 결정을 재고하고 가장 필요한 이들에게 식량 공급될 수 있도록 (시한 연장을 위한) 협정 갱신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같은 날 폴란드 외교부는 트위터에서 “흑해 곡물 이니셔티브를 중단하기로 한 러시아의 결정은 모스크바가 어떤 국제적 합의도 유지할 의사가 없다는 또 다른 증거”라면서 “폴란드와 EU 파트너들은 우크라이나 및 필수품 운송이 필요한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더 노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러시아와 서방·우크라이나 간 ‘중재자’를 자처해온 튀르키예도 급히 러시아 설득에 나섰다. 튀르키예의 한 관계자는 러시아를 설득하기 위한 협상을 벌이고 있다며 “모든 대화 수준에서 러시아와 전화 외교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고 스푸트니크 통신이 이날 전했다. 이 관계자는 협상 연장 여부가 불투명하지만 합의 도출에 대한 희망이 아직 있다고 덧붙였다.

블룸버그 통신도 튀르키예와 러시아 간 협상이 월요일까지 계속될 예정이라는 튀르키예 당국자의 발언을 전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