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칼끝이 향하는 곳 ‘대선후보 이재명’
대장동 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의혹 제기 1년여 만에 재점화됐다. 그동안 개발 특혜 의혹을 수사해온 검찰이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대표의 정치자금 관련 의혹으로 방향을 급선회했다. 정치자금 수수 및 대장동 비리 은폐 의혹과 관련한 진술이 쏟아졌고, 이 대표의 최측근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과 정진상 민주당 당대표 정무조정실장이 나란히 수사 선상에 올랐다. 앞선 검찰 수사 초점이 민간사업자가 과도한 이익을 챙기는 과정에서 성남시에 끼친 피해 규명에 맞춰져 있었다면, 이번엔 검찰 칼끝이 ‘대선후보 이재명’을 향하고 있다.
검찰 대장동 수사팀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인 지난 7월 대규모 인사와 함께 전면 교체됐다. 새롭게 구성된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3부(부장검사 강백신)는 대장동 민간사업자들이 진행한 위례신도시 개발사업까지 수사망을 넓혔다. 사건을 초기부터 되짚어가며 자금 흐름을 다시 추적하는 등 사실상 재수사에 착수했다.
정치자금 관련 의혹 수사는 지난 1년여간 수사와 재판을 받던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과 대장동·위례 개발사업에 참여한 민간사업자들의 ‘입’에서 시작됐다. 줄곧 혐의를 부인하며 검찰 수사에 비협조적이던 이들은 최근 ‘이 대표 측에 돈을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시사IN〉 취재에 따르면, 10월20일 구속기간 만료로 석방된 유동규 전 본부장이 검찰에 ‘돈을 전달했다’고 진술을 한 건 10월 초다. 앞서 유 전 본부장은 9월26일 위례신도시 개발 비리 혐의(부패방지법 위반 등)로 추가 기소됐다. 대장동 개발사업과 마찬가지로 이 사업에서도 핵심 인물로 지목됐다. 이후 변호인 접견을 거부하고 검찰에 달라진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추가 기소 직전까지 검찰 조사 요구에 불응하다가 구치소에서 체포되기도 했던 점을 고려하면 심경 변화가 컸던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표 측과 민주당 일각에선 검찰이 유 전 본부장을 회유 또는 협박했을 것이라고 추측했으나, 유 전 본부장은 이 대표 측을 향해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법조계에선 유동규 전 본부장이 향후 검찰 수사와 재판 대응 전략을 바꿨다는 해석도 나온다. 유 전 본부장은 지난해 10월 대장동 민간사업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한 대가로 3억5200만원을 수수하고, 사업 이익 중 700억원을 받기로 약속한 뒤 5억원을 건네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로 재판에 넘겨졌다. 지난해 11월에는 특가법상 배임 혐의로, 올 9월26일엔 앞서의 위례신도시 개발사업 비위로 추가 기소됐다. 유 전 본부장은 현재 대장동과 위례신도시 개발사업 비리 의혹의 ‘정점’으로 지목돼 있다. 결정권자가 따로 있다고 주장하고, 이를 입증하면 유죄 선고가 날 경우에도 형량이 줄어들 여지가 있다.
실제로 유 전 본부장 측 변호인은 10월24일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58차 공판에서 정영학 회계사를 상대로 “대장동 개발의 사업자 선정 절차를 정하는 과정에 당시 성남시장이었던 이재명 대표 또는 성남시청의 지시가 내려온 것 아니냐”라고 묻기도 했다. 앞선 재판 과정에서 유 전 본부장 측이 이 같은 취지의 질문을 한 적은 없었다.
검찰은 유 전 본부장과 대장동 민간사업자들의 정치자금 관련 진술 신빙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들이 정치자금이 전달된 시기와 장소,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특정해 진술했다는 것이다.
위례 개발사업 수사 과정에서 첫 진술
정치자금 관련 의혹에 대한 첫 진술은 위례 개발사업 수사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시사IN〉이 입수한 ‘위례신도시 개발 특혜’ 사건 공소장(피고인 유동규·남욱·정영학 등 대장동 사업 관계자)을 보면, 남욱 변호사가 유동규 전 본부장에게 ‘2014년 6월까지는 돈을 쓸 수 있게 해주겠다’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김용 부원장과 정진상 실장 등에 대한 접대 정황도 담겨 있다.
2014년 자금 전달의 흔적은 대장동 개발 특혜 사업 수사 과정에서 먼저 확인된 바 있다. 남욱 변호사는 지난해 10월 수사 과정에서, 2014년 대장동 사업의 또 다른 핵심 관계자 김만배 전 〈머니투데이〉 부국장을 통해 유동규 전 본부장에게 3억5200만원을 줬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당시 남욱 변호사가 마련한 돈은 대장동 개발사업 과정에서 분양 대행을 맡은 분양 대행업체 A사 대표와 토목업자 B씨 등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A사 대표와 B씨 등이 대장동 사업을 따내기 위해 남 변호사 등에게 자금을 건넸다고 판단한다. A사 대표의 경우 박영수 전 특별검사의 인척이다. 박 전 특검은 화천대유 고문을 맡은 바 있다. 유 전 본부장은 지난해 남 변호사 등에게 3억5200만원을 건네받은 혐의(뇌물)로 재판에 넘겨지면서도, 돈의 사용처는 밝히지 않았다. 그가 3억5200만원 가운데 1억5000만원을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1억원)과 정진상 정무조정실장(5000만원)에게 전달했다고 진술한 건 최근이다(〈그림 1〉 참조).
검찰은 재수사 과정에서 남 변호사가 2021년 4~8월, 유 전 본부장에게 네 차례에 걸쳐 현금 8억4700만원을 줬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남 변호사가 돈을 만들어 당시 유 전 본부장과 동업(유원홀딩스)을 하고 있던 정민용 변호사(전 성남도시개발공사 투자사업파트장)에게 돈을 건네면, 유 전 본부장이 이를 넘겨받아 이재명 대표의 최측근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에게 전달했다는 내용이다(〈그림 2〉 참조).
남욱 변호사가 마련한 현금 일부를 정민용 변호사에게 가져다주는 일종의 ‘중간 전달책’ 역할을 맡았던 천화동인 4호(남욱 변호사 소유) 사내이사 C씨의 경우, 자신이 정 변호사에게 돈을 전달한 시간과 장소 등을 메모로 기록해 보관하고 있었다. 검찰은 지난 10월 중순께 이 메모를 C씨 사무실에서 확보했다. 메모에 적힌 내용은 돈을 마련한 남욱 변호사, 전달한 정민용 변호사, 중간 전달책 C씨, 유동규 전 본부장 등의 진술과 대부분 일치했다. C씨의 메모에는 2021년 8월에 전달한 돈이 ‘1억4300만원’으로 적혀 있었는데, 따로 조사받은 이들이 ‘1억4700만원’이라고 바로잡기도 했다. 남욱 변호사가 정민용 변호사에게 돈을 전달한 장소로 지목된 아파트의 차량 출입 기록과 당시 정황이 담긴 CCTV 등 ‘물증’도 검찰이 확보한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돈을 주고받는 장면은 포착되지 않았다고 한다.
검찰은 김용 부원장이 지난해 건네받은 돈을 총 6억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남욱 변호사로부터 나온 8억4700만원 가운데 1억원은 유 전 본부장이 직접 쓰고, 지난해 8월에 전달된 1억4700만원은 같은 해 9월께 남 변호사에게 돌려준 것으로 알려졌다.
김용 부원장은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10월22일 구속됐다. 대장동 사업 관계자들이 돈을 전달했다고 지목한 2021년 김 부원장은 이재명 대표의 대선 경선 캠프 총괄부본부장을 맡고 있었다. 대장동 사업이 진행된 2010년부터 2018년까지는 성남시의원을 지냈다. 김 부원장은 “유 전 본부장에게 정치자금 명목으로 돈을 요구한 사실도, 실제 건네받은 사실도 없다”라고 밝혔다. 검찰이 확보했다는 돈 전달 내역이 담긴 메모, 아파트 주차장 차량 출입 내역 등은 유 전 본부장이 남 변호사 측에서 돈을 받은 사실을 입증할 뿐, 김용 부원장이 돈을 받았다는 내용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의 주장은 허구 그 자체”
검찰은 돈 전달에 관여한 관계자들 진술이 모두 일치하는 것을 근거로 김 부원장을 압박하고 있다. 남욱 변호사가 정민용 변호사와 유 전 본부장을 통해 김 부원장에게 돈을 건넬 때 담은 가방과 상자 등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진술을 뒷받침하는 물증이 될 수도 있지만, 김 부원장에게 돈이 전달됐음을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따라 최장 20일의 구속기간에 김 부원장이 실제 돈을 받았는지부터, 받았다면 이재명 대선 캠프에 사용했는지, 이재명 대표가 관련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등을 확인할 방침이다. 대장동 사업 관계자들과 성남도시개발공사 실무진 등을 상대로도 집중 조사 중이다. 대선 캠프 관계자들도 줄소환해 김용 부원장의 당시 역할과 캠프의 자금 흐름 등을 확인할 방침이다. 검찰은 다른 갈래로 김 부원장의 재산 형성 과정도 짚어보고 있다.
이재명 대표의 또 다른 최측근으로 꼽히는 정진상 정무조정실장도 검찰 수사 선상에 올랐다. 정 실장은 2014년 남욱 변호사로부터 5000만원을 받았다는 의혹과 함께, 유 전 본부장 등으로부터 2013년 술 접대를 받았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증거인멸 교사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가 진행 중이다. 앞서 “대장동 사건으로 압수수색을 받기 직전 정 실장이 휴대전화를 버리라고 했다”라는 유 전 본부장의 진술이 나왔다. 유 전 본부장은 지난해 9월29일 검찰이 자택을 압수수색하자 창밖으로 휴대전화를 던졌다. 검찰은 휴대전화 포렌식을 통해, 정 실장과 유 전 본부장이 압수수색 직전 여러 차례 연락을 주고받은 것을 확인했다. 대장동 수사와 별개로 ‘성남 FC 후원금 의혹’을 수사 중인 수원지검 성남지청 형사3부(부장검사 유민종)는 정 실장을 핵심 피의자로 지목하고 출국금지했다. 전반적인 검찰 수사에 대해 정진상 실장은 “검찰의 주장은 허구 그 자체다. 소환하면 언제든지 성실하게 조사를 받겠다”라고 밝혔다.
이재명 대표 측과 민주당은 검찰 수사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이 대선과 연결된 정치자금 의혹으로 흐르면서 당에 직접적인 위협으로 전환됐다는 데 공감대가 만들어졌다. 문재인 전 대통령을 겨냥한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검찰 수사도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만큼 민주당 내 계파와 진영의 구분 없이 공동대응 전선을 펼쳐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민주당은 최근 김용 부원장이 근무한 민주연구원 압수수색에 대해 중앙당사 침탈이라며 규탄했다. 특검 카드를 꺼내며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시정연설에 불참했다. 이재명 대표 측과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유동규 전 본부장과 대장동 사업자들의 진술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도, 구속된 김용 부원장에 대해서는 ‘신뢰’의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 김용 부원장 수사 결과에 따라 검찰 칼끝이 이 대표를 직접 겨냥할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하는 것으로 보인다. 계파 색이 옅은 의원들 사이에선 상황을 냉정히 지켜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소수의견이다. 한 민주당 재선 의원은 “단일 대오를 형성하는 데 아직까지 큰 이견은 없다”라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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