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SPC그룹 적용 어렵다?

주하은 기자 2022. 10. 31.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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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바게뜨로 유명한 SPC그룹의 계열사 공장에서 샌드위치를 만들던 스물세 살 노동자가 기계에 끼어 숨졌다. 위험성을 알고도 안전 설비를 갖추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월15일 SPC그룹 계열사 SPL 평택공장에서 작업 중 소스 배합기에 빠져 숨진 노동자를 위한 추모 공간이 공장 입구에 마련되어 있다. ⓒ시사IN 신선영

10월15일 오전 6시께 경기도 평택시에 위치한 SPL 공장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SPL은 파리바게뜨, 던킨도너츠로 유명한 SPC그룹 계열사로 식빵, 샌드위치 등 완제품과 냉동 생지(제빵용 반죽)를 생산하는 회사다. SPL 노동자인 피해자 A씨(23)는 공장 3층 냉장 샌드위치 공정에서 저녁 8시께부터 다음 날 아침 8시까지 이어지는 야간근무 중이었다.

사고는 퇴근을 불과 1시간 반가량 앞두고 일어났다. 재료를 혼합해 샌드위치 소스를 만드는 교반기에 A씨의 몸이 끼었다. 높이 105㎝, 가로·세로 90㎝ 규격의 교반기엔 소스가 가득 차 있는 상황이었다. 목격자도, 현장을 비추는 CCTV도 없어서 사고가 난 정확한 시각과 사고 원인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회사는 ‘10월15일 안전사고 발생경위 및 경과보고서’에 “작업자의 불안정한 자세 또는 미끄럼 상태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기록했다.

A씨를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은 작업반장 B씨였다. 앞선 보고서에 따르면 B씨는 오전 6시15분 기계에 빨려 들어간 A씨를 발견하고 이내 현장관리자에게 알렸다. 현장관리자는 보고를 받고 8분 뒤인 6시25분에야 119에 신고했다. 그사이 동료 작업자들이 교반기 안에 차 있던 소스를 비우고 A씨를 확인했으나 이미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A씨는 오전 6시20분께 사망한 것으로 추정됐다.

SPL에 따르면 A씨는 최초 발견자인 작업반장 B씨와 함께 2인1조 작업 중이었다. 그러나 B씨는 사고가 일어난 시각에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한국노총 SPL노조에 따르면 B씨는 치즈 비닐 포장을 벗기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A씨가 기계로 빨려 들어갈 때 기계를 멈추는 등 빠르게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최태호 고용노동부 산재예방감독정책관은 “사업장에서 2인1조 근무를 매뉴얼에 정해놓고 지키지 않았다면 중대재해처벌법에 위반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에 따르면 사업장은 각 특성에 따라 ‘유해·위험 요인을 확인하여 개선’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만약 SPL에서 혼합기 작업 시 2인1조를 유해·위험 방지조치 중 하나로 정한 바 있다면, 법 위반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의당 이은주 의원실에서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SPL은 사고가 난 것과 동일한 종류의 교반기 ‘안전작업 표준서’에 작업 인원을 2명이라고 명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SPC그룹 정도 되는 회사가 어떻게…”

10월16일 정의당 이은주 의원이 SPL 평택공장에 방문했다. 사망사고가 난 교반기 공간은 흰 천으로 덮여 있었다. ⓒ이은주 의원실 제공

실제 작업은 2인1조 구조로 흘러가지 않았다는 증언도 나왔다. 한국노총 윤홍식 SPL노조위원장은 〈시사IN〉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2인1조 규정은 없었다”라고 말했다. 작업량이나 작업 형식에 따라 교반, 재료 준비 등 업무 배정을 했을 뿐 2명이 1개의 교반기를 담당하는 형식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만약 이 증언이 사실이라면 작업반장 B씨가 교반기에서 이탈한 것은 우연 또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상시적인 일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기계설비에서부터 이미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했다는 점도 지적됐다. 산업안전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사업주는 ‘기계의 가동으로 근로자에게 위험이 미칠 우려가 있을 경우’ 혼합기에 덮개 등 필요한 설비를 구비해야 한다. 특히 혼합기의 입구에 근로자가 떨어져 위해를 입을 우려가 있을 때는 해당 부위에 덮개를 설치해야 한다고도 특정해 명시했다.

SPL도 근로자가 기계에 말려 들어갈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이은주 의원실에서 제공한 현장 사진에 따르면, SPL은 동일한 종류의 교반기에 ‘협착/말림 위험’ ‘구동 중 접촉 금지’라는 경고 문구를 붙여놓았다. 그러나 물리적으로 위험을 차단할 수 있는 장치는 미비했다. 사고가 난 기계에는 덮개가 부착돼 있지 않았다. 수동으로 덮고 열 수 있는 뚜껑이 있긴 했지만 고정돼 있지 않은 상태였다.

뚜껑이 덮이지 않았을 때 작업을 멈춰줄 자동방호장치(인터록)가 설치된 기계도 일부에 불과했다. 같은 공장에 있는 교반기 9대 중 2대뿐이었다. 자동방호장치는 뚜껑이 열릴 경우 자동으로 기계 작동을 멈춘다. 따라서 작업 도중 노동자가 기계 내부로 떨어지더라도 기계는 이미 멈춘 상태이거나 곧 멈추게 된다. 하지만 A씨가 작업하던 기계는 자동방호장치가 없는 7대 중 하나였다.

조사를 맡은 한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이번 재해에서 키포인트는 결국 자동방호장치라고 말했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의무를 어겨 사망자가 한 명 이상 발생했다면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라 처벌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요새 산업 현장에 가보면 중소기업들도 협착과 관련해 센서 등 안전장치가 잘 구비돼 있어 깜짝 놀라곤 한다. 개인적으로는 SPC그룹 정도 되는 회사가 어떻게 자동방호장치 같은 장비도 없었는지 실망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사망사고 이후 SPL과 고용노동부의 대처는 사람들을 더욱 분노하게 만들었다. 고용노동부는 사고 직후 자동방호장치가 없는 7개 교반기에 대해서만 작업중지 명령을 내렸다. 자동방호장치가 있는 나머지 기계는 법령상 작업중지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SPL은 사고 이후에도 나머지 교반기를 이용해 작업을 계속했다. 이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자 사고 이튿날 고용노동부는 나머지 교반기 2대에 대해서도 작업중지를 권고했다.

SPC그룹 전체에 대한 비판 여론과 달리,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이 SPC그룹에까지 이르긴 어려운 상황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기자회견에서 “SPL은 SPC그룹의 계열사이지만, 완전 독립돼 있고 경영책임자가 따로 있어서 SPC그룹에까지 책임을 묻긴 어렵다. 구체적으로 (SPL) 경영에 관여하지 않은 사람을 대주주라고 처벌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분노는 SPC그룹 전체를 향했다. 사람들은 SPC그룹 계열사를 정리한 사진을 공유하고, “피 묻은 빵을 먹지 않겠다”라며 SPC그룹 산하 브랜드에 대한 불매운동에 동참했다. 

주하은 기자 ki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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