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 부재가 부른 통제 불능, 이태원 인명 피해 키웠다
[이태원 참사]
150명이 넘는 압사자가 나온 이태원 참사를 두고, 대규모 참사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는 만시지탄 목소리가 나온다. 종교시설, 축구장, 공연장 등이 아닌 ‘길거리’에서 초대형 압사 사고가 발생한 요인을 분석했다.
①10만 이상 인파
코로나 대유행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 없이 3년 만에 핼러윈 행사가 열리자 사고 29일 당일에만 10만명 이상 인파가 몰렸다. 코로나 이전 핼러윈 때와 비슷한 규모라는 얘기도 있지만, 좁디좁은 골목길이 얽혀 있는 이태원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인파인 것은 분명했다.
평소 이태원을 즐겨 찾았던 이들에게도 이날 인파는 이례적이었다. 매년 버스킹(거리공연)을 하려고 이곳에 온다는 김아무개(37)씨는 “차도를 점거해 걸어 다닐 정도로 사람이 가득 찼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건 처음 봤다”고 했다. 참사 발생 직후인 30일 새벽 1시께까지 이태원역에서 녹사평역으로 가는 길에는 핼러윈 분장을 한 사람들이 길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이태원 주민 이아무개씨는 “(사고 현장은) 매번 많은 사람이 통제를 받지 않은 채 이동하는 골목”이라며 “이런 사고가 언제쯤 날 줄 알았다. 관광특구라고 해서 매번 이렇게 사람이 몰려 난장판이 된다”고 했다. 지난 15~16일에도 이태원에는 ‘지구촌 축제’가 열려 연인원 100만명의 사람이 오갔다고 한다. 다만 당시에는 행사를 주최한 용산구청에서 도로 통제, 안전펜스 설치, 안내원 배치 등 관리를 맡았다. 경찰과 구청 쪽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핼러윈 행사의 경우 행사 주최자가 따로 없는데다, 집회·시위 등도 아니어서 안전 대책 등을 마련할 이유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주변 담배 가게에서 근무하는 김형준(20)씨는 “지구촌 축제에선 통제가 잘됐지만, 이번에는 경찰 인력도 적었고 통제가 안 됐다”고 말했다.
서울교통공사는 참사 당일 이태원역 이용객(승하차 포함)이 13만131명이라고 밝혔다. 이는 전날(5만9995명)보다도 2배를 웃도는 수치다. 같은 ‘핼러윈 토요일’이었던 1년 전 이용객(5만9609명)보다 2.2배 많다.
②경사진 좁은 골목
사고 현장인 해밀톤호텔 부근은 티(T) 자형 골목으로 돼 있다. 사고는 이 삼거리에서 이태원역으로 향하는 너비 3.2m, 길이 40m 내리막 골목으로 사람들이 급격하게 몰려들며 발생했다. 성인 4명이면 너비가 꽉 차는데, 10명은 있었다고 한다. 이 골목은 삼거리 지점에서 아래로 10m 정도까지 경사도가 특히 급하다. 현장 목격자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삼거리에서 “밀어, 밀어”라는 얘기가 들렸고 앞에 있는 사람들이 그 힘에 눌려 넘어지면서 아수라장이 됐다고 한다. 선택규(27)씨는 “골목 아래에선 위로 올라오려고 하고, 뒤에선 밀어내면서 문제가 커진 것 같다. 뒤에서 미는 힘이 강해서 우르르 넘어졌다”고 했다. 앞에선 “살려달라, 밀지 말아달라”고 외쳤지만, 소용이 없었다는 것이다.
밤 11시30분께 현장을 목격한 최승환(21)씨는 “사람들에게 휩쓸려서 (해밀톤호텔) 뒷골목 중 큰 골목에서 이태원역 쪽으로 내려오는데, 옷이 다 벗겨진 사람들이 실려서 내려오는 걸 봤다. 워낙 주변이 좁고 시끄러워서 뭔 일이 났는지 아마 대부분 몰랐을 것”이라고 했다.
클럽 골목으로 알려진 이태원 세계음식거리에 설치된 부스들이 사고에 영향을 줬을 수도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세계음식거리는 해밀톤호텔 뒤쪽 골목이다. 이태원역 메인 도로와 세계음식거리가 인파로 가득 차면서, 두 길을 연결하는 좁은 골목에서 이번 참사가 발생했다. 세계음식거리 양방향 인파가 만나 좁은 내리막 골목으로 한꺼번에 빠져나가면서 병목현상이 생긴 것이다. 경찰이나 용산구청에서 사전에 보행자 동선을 통제하는 일방통행 등 조처를 했다면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③구조 지체
구조 지체도 희생자 규모를 키웠다. 이태원 지리에 밝은 현장 경찰들도 전혀 손을 쓰지 못했다고 한다. 이태원파출소 간부급(경위) 경찰관은 “소방대원도 못 들어갔는데 우리가 어떻게 진입하나. 신고는 계속 접수됐는데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파출소) 앞 인도까지 사람이 꽉 차 있었다”고 했다.
10만명 이상의 인파가 몰린 이태원로 주변에는 불법 주정차 차량들로 인해 사고 직후 구급차가 진입하기도 쉽지 않았다. 소방당국에 “사람이 깔렸다”는 신고가 최초 접수된 시각은 밤 10시15분이었다. 해밀톤호텔 건너편 이태원119안전센터의 펌뷸런스(펌프차+구급차)가 사고 현장에 도착한 것은 6분 뒤인 밤 10시21분이었으나, 인파를 헤치고 사고 현장에 접근해 구조 활동을 시작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고 한다. 골든타임을 놓친 셈이다.
상황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자, 소방당국은 밤 11시13분 소방 비상 2단계로 대응 수위를 올렸다. 첫 신고 이후 1시간이 지난 뒤였다. 인근 소방서에서 출동한 구급차도 녹사평역에서 이태원역으로 들어가는 골목에서 진입을 시도했지만, 불법 주정차 차량 때문에 경찰 통제를 받으면서 겨우 이동해야 했다. 구급차가 제대로 지나갈 수 있는 차로가 확보되지 않아 병원으로 옮기는 시간도 지체됐다.
구급차가 골목까지 오지 못하면서 심정지 상태로 쓰러진 이들이 도로 한가운데 방치돼 있기도 했다. 현장에 있던 지아무개(30)씨는 “경찰이나 구급차가 들어오기 힘들었다. 민간인이 돕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염건웅 유원대 교수(경찰소방행정학)는 “압박으로 인해 하중을 받으면, 심장이나 뇌로 이동하는 혈류가 멈춘다. 골든타임이 4분이지만, 이 경우에는 당장 심폐소생술(CPR)을 해도 살리기 쉽지 않다. 소방차도 쉽게 들어오지 못하면서 사고가 더 커진 측면이 있다. 골목길도 좁아 환경적 측면에서도 이번 사고는 모든 게 나쁘게 작용했다”고 말했다.
곽진산 고병찬 이우연 안태호 기자 kj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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