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크고 더 중요한’ 문제 - <좋은 불평등> 논쟁을 이어가며
2022. 10. 31. 07:01
〈좋은 불평등〉은 한국 불평등의 발생 원인을 분석한 책이다. 책의 부제는 ‘글로벌 자본주의 변동으로 보는 한국 불평등 30년’이다. 책은 크게 세덩어리로 돼 있다. 앞부분 40%는 한국의 불평등 30년이 실제로 어떤 메커니즘으로 움직였는지 다룬다. 후반부 40%는 최저임금 1만원에 대한 평가를 중심으로 ‘진보경제학 비판’을 다룬다. 맨 마지막 20%는 전망 및 대안을 다루고 있다.
최근에 만난 학생운동 경력이 있는, 1980년대 중반 학번의 어떤 경제전문가 A는 〈좋은 불평등〉에 대해 재미있는 코멘트를 해줬다. A는 나에게 “80년대 많이 접했던 아주 잘 만든, 그러나 데이터가 풍부하게 수록된, 정치 팸플릿을 접하는 기분이었다”라고 말해주었다. A의 분석에 크게 동의했다. 〈좋은 불평등〉은 실제로도 과거에 ‘노동운동하기 위해, 공장 가던 기분으로’ 쓴 책이다. 〈좋은 불평등〉 집필의 궁극적인 목적은 ‘진보의 혁신’이다.
〈좋은 불평등〉 집필 목적은 진보 혁신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3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성장론’을 전면적으로 표방했다. 한국 진보세력이 성장론을 전면에 내건 경우다. 둘째, 불평등과 성장론을 연계했다. 불평등을 줄이면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가정했다. 셋째, 소득주도성장론 정책의 대부분은 진보적 노동정책과 진보적 복지정책으로 구성돼 있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에 대한 ‘생산적 토론’을 하려면 ①성장은 어떻게 작동하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 ②불평등과 경제성장의 관계는 어떠한지 ③한국 진보세력의 노동정책과 복지정책은 무엇인지 등을 재평가해야 한다. 그래야만 ‘역사의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 있다.
윤형중의 〈좋은 불평등〉 비판을 접하며 안타까웠던 건 크게 2가지 때문이다. 하나는 윤형중의 비판 논거 자체가 매우 혼돈스러운 수준이었다. 다른 하나는, 매우 지엽적인 시비걸기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윤형중이 더 크고, 더 중요한 논점을 중심으로 논의를 이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윤형중은 지난 호에 쓴 비판 글에서 자신이 〈좋은 불평등〉 책을 비판하는 이유가 크게 2가지라고 했다. 첫째, 등호와 부분집합을 구분하지 않았고, 둘째, ‘특정 요인의 과대평가’라고 했다. 전자는 ‘한국의 하층=노인’이라는 식으로 등호로 표현하면 안 되기 때문이란다. 한가한 비판이다. 〈좋은 불평등〉에서는 “한국 하층의 다수는 ‘저임금 노동자’가 아니라 ‘노인’이 가장 큰 덩어리”라고 했다. 윤형중 비판이 한가하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지난 호에서 윤형중이 쓴 글에서도 “하층의 상당수는 노인”이라는 점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윤형중의 반론 글에는 다음의 두 문장이 등장한다.
“당연히 노인의 상당수는 하층이다”(윤형중의 글 2번째 문단), “이처럼 하층의 상당수는 노인이다.”(윤형중의 글 4번째 문단)
“노인의 상당수가 하층”이고 “하층의 상당수가 노인”이라는 윤형중 주장과 “하층의 가장 큰 덩어리는 노인”이라는 최병천 주장은 서로 다른가. 두 주장은 사실상 같은 내용 아닌가? 윤형중이 ‘비판을 위한 비판’에 매진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이유다.
둘째, 윤형중은 〈좋은 불평등〉에서 특정 요인을 과대평가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각 원인의 불평등 기여율을 “엄밀히~~~” 따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완벽하게, 엄밀히, 정확하게, 빈틈없이….” 이런 수사어(修辭語)들은 좋은 표현이 아니다. 굳이 적용하려면 본인 스스로에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 세상에 ‘엄밀히~ 정확하게~, 완벽하게~, 빈틈없이~’ 논의를 전개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되겠는가.
윤형중이 매우 좋아하는 ‘요인별 분해’에 관한 연구를 하나 소개한다. ‘산업노동연구’ 제23권 2호(2017)에 수록된, ‘임금 불평등 변화의 요인분해: 2006-2015년’ 논문이다. 정준호·전병유·장지연의 공동연구다. [표]는 임금불평등의 상대적 기여도를 보여준다. 임금불평등의 상대적 기여도를 보면 ①기업 규모(22.0%) ②근속(20.3%) ③교육연수(12.9%) ④성/남성(8.8%) ⑤직종(8.5%)이다. 이들 5가지 요인의 합계는 72.5%다. 윤형중이 좋아하는 ‘요인별 분해’ 방식에 의하면, 우리는 각 요인의 상대적 기여도를 ‘열거하는’ 방식의 서술에서 멈춰야 한다. 그 이상을 언급하면 안 된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은 ‘학자들의’ 학술연구에서는 유용할지 몰라도 대중적 소통에서 효과적인 방식은 아니다.
〈좋은 불평등〉을 집필하기 전에 정준호·전병유·장지연의 연구 논문을 봤다. 다만 이 논문과 최병천 접근법의 차이점은 ‘원인의 원인’을 묻는 것이었다. 왜 수많은 요인 중에서도 ①기업 규모 ②근속 ③교육연수 ④성/남성 ⑤직종의 5가지 요인이 임금불평등 변동의 72.5%를 설명하는 것일까? 다시 말해 ‘원인의 원인’은 무엇일까 물었다. 한국 경제의 여러 특성을 종합해볼 때, 5가지 요인을 동시에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를 도출해보자면 ‘수출-제조업-대기업-남성 사업장’이다.
‘중국발 불평등’이 불평등 원인의 원인
공자는 일이관지(一以貫之)라는 표현을 썼다. 어떤 현상을 분석함에 있어서 ‘한방에 관통하는’ 이치를 일컫는 표현이다. 일이관지의 문제의식에 의하면, 한 번 더 질문할 필요가 있다. ‘수출-제조업-대기업-남성 사업장’의 임금은 ‘왜, 무엇 때문에’ 변동하는 것인가? 그 고민의 결과물이 바로 ‘중국발 불평등’이었다.
한국의 진보세력은 임금불평등의 주요 요인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핵심으로 제기했다. 하지만 요인별 상대적 기여도 분석에 따르면, 정규직/비정규직과 같은 ‘고용형태’의 불평등 요인은 1.0%에 불과하다. 종합해보면 ①기업 규모 ②근속 ③교육연수 ④성/남성 ⑤직종의 5가지 요인은 ‘중국발 불평등’의 요인과 가장 상관관계가 높다. ‘엄밀히’를 좋아하는 윤형중 비판을 고려해도 중국발 불평등이 ‘가장 크고, 가장 중요한’ 비중이었다.
윤형중에게 오히려 되묻고 싶다. 첫째, 최저임금 1만원 정책은 성공했다고 생각하는가? 둘째, 중국발 요인이 불평등 변동의 ‘가장 큰’ 요인이라는 〈좋은 불평등〉의 핵심 주장에 동의하는가? 셋째, 불평등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한국 진보의 3대 적폐론(재벌·신자유주의·비정규직)이 여전히 ‘가장 크고,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하는가? 넷째, 한국 진보의 불평등 담론이 다분히 ‘내부 원인’에 함몰돼 있으며, ‘로빈 후드적 접근’에 몰입돼 있다는 최병천 주장에 동의하는가?
등호와 부분집합의 차이점, ‘엄밀히~~~’ 같은 지엽적인 시비걸기가 아니라 한국 진보의 불평등 인식을 제고하는 생산적 토론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논쟁이 ‘더 크고, 더 중요한’ 문제를 다뤄야 하지 않을까? 4가지 질문에 대한, 윤형중의 답변을 듣고 싶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좋은 불평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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