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의 명암]③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반복되는 ‘밀양 송전탑’
재생에너지의 명암① 태양광에 사라진 염전과 논…갈 곳 없는 임차농들
재생에너지의 명암② 마을을 가른 해상풍력…"인사도 안 한다"
재생에너지의 명암③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반복되는 '밀양 송전탑'
재생에너지의 명암④ 갈등 중재 기관 둔 독일…정의로운 에너지 전환 위해선?
■밀양 송전탑의 기억
몸에 쇠사슬을 두른 노인들이 천막 안을 결사적으로 지킨다. 경찰은 천막을 찢고 진압했다. 넘어지고 울부짖는 사람들. 결국, 천막은 철거됐다. 혼란 속에 마을 분위기는 흉흉해졌다. 어떤 이들은 목숨을 끊었다. 국무총리까지 나섰지만 해결의 실마리는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밀양 송전탑 사태가 빚어낸 장면이다.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 공사 강행을 반대하는 집회에 등장했던 피켓의 문구는 사태를 함축하는 구호가 됐다. 신규 원전에서 생산하는 전기를 도시로,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해 농촌이 고압 송전탑을 품어야 하는가. 대도시에서 전기를 쓰기 위해 시골이 눈물을 흘려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밀양 송전탑 사태는 그렇게 수많은 의문과 상처를 남겼다.
■곳곳에서 발견되는 또 다른 '밀양'들
전남에서도 밀양 송전탑 사태와 비슷한 일이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다. 이번에는 원전이 아니라 급격히 늘어난 태양광과 풍력발전소가 갈등의 계기가 됐다. 신안·영광·함평과 인접한 무안군 운남면과 현경면도 송전탑 문제로 시끄럽다. 여기선 불쑥불쑥 솟아난 송전탑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탑마다 걸린 고압선은 넓게 펼쳐진 논과 포근한 야산의 풍경에 불청객처럼 끼어들었다.
이렇게 무안에 들어선 송전탑이 140여 개다. 앞으로도 100여 개가 더 건설될 예정이다. 이웃한 신안에 태양광과 풍력발전소가 우후죽순 들어서며 영광·함평 등으로 전기를 보낼 선로가 필요하게 됐기 때문이다.
발전소를 운영하는 지역도 아닌데 송전탑이라는 '짐'을 짊어져야 하는 주민들은 단단히 뿔이 났다. 무안군 운남면의 안이녀 씨는 "신안에서 생산하는 전기를 왜 무안군이 받아서 옮겨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되고, 전자파 걱정을 안 할 수가 없다"라며 "신안군은 주민 참여형 발전소라고 해서 이익을 공유하기라도 하는데, 무안은 피해만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영암군 신학리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간척 농경지 한가운데 변전소 건설이 추진되는데, 완공되면 송전탑 19개가 지어지게 된다. 권혁주 반대대책위 사무국장은 "영산강을 낀 천혜의 경관이 훼손되는 것은 물론이고, 송전탑이 논 위를 지나가는 만큼 항공 방제 등을 해야 하는 농민들 입장에서는 불편함과 안전의 위협마저 있다"라고 밝혔다.
■전기는 도시에, 눈물은 시골에
전남의 태양광·풍력발전 용량은 2018년 2,081MW에서 2019년 2,775MW, 2020년 3,967MW로 해마다 3~40%가량 늘고 있다. 전국 광역단체 가운데 1위다. 그런데 전남의 전력 자급률, 즉 전력 소비량 대비 발전량은 이미 184%에 이른다. 지역에서 쓰고도 전기가 한참 남는다는 얘기다. 반면 대도시의 전력 자급률은 서울 11%, 대구 18%, 광주 7% 등으로 매우 낮다. 당연히 수요가 많은 대도시로 전기를 보내야 하는데, 그러려면 농어촌에 송전탑과 변전소를 늘릴 수밖에 없다.
도 단위의 다른 농어촌 지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미 전력 자급률이 100%를 훌쩍 뛰어넘는 상황에서 재생에너지 발전소가 계속 들어서며 '전력 과잉 생산' 상태가 계속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송전탑은 계속 늘 수밖에 없다. 실제로 한국전력공사가 지난해 발표한 '장기 송변전 설비 계획'의 주요 내용도 서남해와 신안 등 대규모 재생에너지 발전단지의 송전망 확충이다.
도시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재생에너지 발전소가 들어선 지역뿐 아니라 주변 지역들 모두 시련을 겪고 있는 셈이다. 정학철 농어촌파괴형 태양광․풍력 반대 전남연대회의 집행위원장은 "땅값 싸고 사람 적게 산다고 농어촌 지역에다 일방적으로 강제적으로 이렇게 추진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 농어촌이 삶의 터전으로서의 가치를 잃게 된다"라고 지적했다.
■동의 없는 사업 추진…새우 양식장 주인의 눈물
다시 밀양 송전탑 사태를 돌이켜 본다. 사태가 격화된 가장 큰 이유는 주민 동의를 제대로 얻지 않은 채 사업을 강행했다는 데 있었다. 밀양 송전탑 건설 계획이 확정된 것은 2003년. 그러나 일부 주민들이 계획을 알게 된 건 2005년이었고, 대다수는 2011년까지도 건설 계획을 자세히 알지 못했다. 당시는 주민 동의가 법적 의무 사항이 아니었다. 그러나 송전탑이 인체에 얼마나 유해하든 탑이 설치되는 지역의 주민들은 이해 당사자임이 분명하다. 이들을 배제한 채로 사업이 추진될 때부터 갈등의 씨앗이 뿌려진 셈이다.
재생에너지 사업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자주 목격된다. 주민 의견이 발전소 건설에 반영되지 않으면서 곳곳에서 사업이 말썽을 빚는 것이다. 무안군에서 새우 양식장을 하는 백수인 씨의 사례가 그렇다. 7년 전부터 양식장을 운영해 온 백 씨는, 근처에서 풍력발전소를 짓는 발파 공사가 시작된 뒤 새우가 죽어 나가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발전소와 양식장의 거리는 300여 미터에 불과하다. 그런데 공사 시작 전까지 동의를 구하는 절차가 없었던 것은 물론이고, 발전소 건설 계획조차 백 씨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양식 사업을 궤도에 올렸고, 큰돈을 들여 양식장 확장까지 한 백 씨는 분통이 터진다. 백 씨는 "이렇게 큰 공사를 하는데 반경 5백 미터 안에 있는 사람들한테는 얘기를 해줘야 할 거 아니냐. 3년 전에만 얘기를 해줬어도 내가 이거 확장을 안 했을 것이다"라고 하소연했다.
완도에서는 면민 70%가 반대 서명에 동참했는데도 태양광 사업이 강행됐다. 화순에서는 풍력발전 사업자가 제출한 주민 동의서에 사망자의 서명이 포함되며 조작 의혹이 일었다. 재생에너지 사업에 주민이 잇따라 배제되는 현실은 도처에 들어서는 송전탑만큼이나 '밀양'을 연상하게 한다.
■주민 배제하는 인허가 제도
전문가들은 현행 인허가 제도가 이런 상황을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3MW 이상의 태양광이나 풍력발전소는 먼저 산업통상자원부의 전기위원회가 사업자 자격을 판단하는 '발전 사업 허가'를 내준다. 이후 각 자치단체가 실제 발전소 건설과 관련한 '개발 행위 허가'를 한다.
그런데 주민 동의 절차는 중앙 정부(산업부)의 위원회가 내주는 '발전 사업 허가' 때만 필요하다. 게다가 사업자가 주민들에게 얻어낸 동의서를 중심으로 평가하고, 자치단체는 의견 제시 정도만 하고 있다. 사실상 동의 절차가 사업자에 맡겨진 셈이다. 그러니 사업자가 일부 주민의 동의로 발전 사업 허가를 따낸 뒤 뒤늦게야 다른 주민들이 반대하는 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조공장 한국환경연구원 연구위원은 "발전 사업 허가 단계에서는 주민들은 사업 자체를 모르는 경우도 많은데, 발전 사업 허가를 받으면 실질적으로 입지는 결정되는 것이고 그 이후 단계에서는 주민 수용성을 심사할 수 있는 절차가 없다"라고 설명했다.
사업이 추진되는 지역의 주민 수용성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는 재생에너지 사업에 대한 큰 밑그림이 없는 탓도 있다. 자치단체와 중앙 정부 차원에서 어디에 어떤 발전소를 지을지에 대한 청사진이 없다는 말이다. 이 때문에 발전소 입지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공공성' 측면은 사라지고, 수익성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사업자가 인허가를 신청한 개별 사업에 대해서만 다투게 되는 것이다.
■전남 22개 시군 중 17곳에 '반대 대책위'
정학철 농어촌파괴형 풍력·태양광 반대 전남연대회의 집행위원장은 "정부의 정책으로 재생에너지 사업이 확대됐는데, 막상 지역에서 분쟁이 발생하게 되면 정부가 전혀 책임지지 않는다"라며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나라 에너지가 어떤 방향으로 갈 건지, 우리 전라남도, 시·군은 어떻게, 어느 정도까지 사업을 추진할 것인지 이런 계획이 없다는 데 있다"라고 말했다.
전남에 있는 22개 시군 가운데 태양광·풍력 반대 대책위원회가 꾸려진 곳은 17곳에 이른다. 어느 특정 지역의 국소적인 문제가 아니라 도내 전체가 재생에너지로 몸살을 앓는 형국이다. 고즈넉한 시골 마을엔 붉은 글씨로 쓴 현수막이 내걸렸다. 평생 논밭을 일구고 고기를 잡던 어르신들은 거리로 나서 머리띠를 두르고 있다. 지역민의 목소리를 충분히 듣지 않고, 문제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지 않고 추진되는 사업이 어떤 결과를 낳을까. '밀양'이 우리 사회에 교훈을 남기지 못했든지, 아니면 우리 사회가 교훈을 너무 쉽게 잊었든지 둘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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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창희 기자 (shar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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