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구잡이 투자에 횡령·배임까지…특례상장의 명과암 [특례상장, 특혜 낀 거품인가①]
실적 불투명, 주가 변동성도 커
취지 걸맞게 성장하는 기업도 있지만
경영난에 시달리다 상폐 몰리기도…투자자 피해 우려
특례 상장 제도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고 있다. 미래가치를 담보로 증시 문턱을 넘지만 정작 경영진의 횡령, 실적 부진으로 상장폐지 기로에 서면서다. 주가 변동성이 큰 만큼 자칫 개인투자자(개미)들의 무덤으로 전락할 여지도 크다. 이러한 리스크에도 특례 상장은 될성부른 적자 기업에 상장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존재의 의미가 있다. 상장 전 부실기업을 걸러내는 장치를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장 후 시장과 정부의 감시 및 관리·감독의 제도 개선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편집자주]
3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05년 특례 상장 제도 도입 이래 총 181개 기업이 특례 방식으로 코스닥 시장에 입성했다. 올 들어선 27곳의 업체가 상장했다.
'기술 특례 상장 제도'란 당장 재무적 성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기술력이나 성장성이 있다면 상장을 허용하는 제도다. 제약·바이오 업체들과 같이 성과를 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업체들에 자금 조달의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에서 2005년 도입됐다.
제약·바이오 기업에 국한됐던 이 제도는 2013년 4월 전 업종으로 확대됐다. 2014년 처음으로 비(非)바이오 업종인 항공 부품업체 아스트가 특례 방식으로 코스닥 시장에 상장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이후에도 2016년 성장성 추천·이익미실현(테슬라 요건) 기업 특례, 2017년 사업기반 모델 특례, 2019년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 특례 제도가 도입됐다. 지난해에는 유니콘 특례 상장도 신설됐다.
특례상장, 부실기업 상장 길 터줬나
증시 통로가 넓어지자 부실 기업 상장에 따른 부작용이 우려스럽다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사실상 자격 미달 기업의 상장 발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성장성 추천 상장은 경영 성과는 물론 기술 특례 상장에서 요구하는 전문평가기관의 기술평가를 받지 않아도 된다. 주관사 추천과 자기자본 10억원 이상, 시가총액 90억 이상, 자본잠식률 10% 미만 조건만 충족하면 된다. 이른바 테슬라 요건 역시 재무 조건만 맞추면 적자 기업도 상장 절차를 밟을 수 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이석훈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한 보고서에서 "특례상장 기업 중 상당수는 상장 후 장기간 지난 후에도 큰 폭의 적자를 보이고 있었으며 자신이 보유한 기술력을 매출로 전환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언급한 바 있다.
횡령·배임, 부실 경영 등의 문제 사례도 적잖게 발생했다. 신라젠을 비롯해 관리종목 지정 직전까지 갔던 헬릭스미스 사태가 대표적이다. 2020년 헬릭스미스는 약 2500억원이 넘는 신약 개발 투자금을 고위험자산에 투자했단 사실이 드러나 논란을 빚었다.
이러한 문제들은 성장성이나 기술력 외엔 이들 기업을 평가할 만한 뚜렷한 지표가 없다는 것에 기인한다. 일반 상장과 달리 경영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 보니 추정치를 기반으로 한 평가만 가능하다.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기존 기업과 비교가 어렵기 때문에 비교군으로 꼽을 만한 업체도 마땅치 않다. 그렇다 보니 평가가치가 맞지 않는 기업을 비교기업으로 내세우거나 미래 실적을 낙관적으로 평가해 공모가가 부풀려질 여지가 있다는 게 일각의 우려다.
실제 신약 후보 물질 개발 업체 보로노이는 상장 전 미래 실적추정치를 높게 설정해 고평가 논란에 휩싸였다. 앱마켓 원스토어는 비교기업으로 세계 시가총액 1위 애플과 글로벌 빅테크 기업 구글을 제시해 눈총을 받았다.
주가 '롤러코스터', 위험 부담 커…개미 무덤 될라
물론 꾸준히 노력해 기술개발, 주가 부양 모두 성공한 업체들도 많다. 상장한 지 5년 만에 라이선스 아웃을 한 알테오젠이 대표적이다. 2014년 상장한 알테오젠은 2019년 라이선스 아웃 후 빛을 보기 시작했다. 매출이 늘면서 적자도 해소했고 주가도 올랐다.
하지만 특례 상장 기업의 주가는 대부분 롤러코스터 흐름을 띈다. 호재나 악재에 급등락하며 마치 작전주와 다름 없는 양상을 보인다. 위험회피 심리가 부각되는 지금과 같은 증시 침체기에선 조정을 더 많이 받는다. 반대로 활황장에선 일반 상장 기업들보다 주가가 더 뛰는 경향이 있다. 재무 성과라는 비교적 객관적인 지표가 있는 일반 상장보다 위험 부담이 큰 이유다.
기술 특례로 상장한 노을은 시가총액이 한때 1100억원까지 치솟았다가 500억원 수준으로 쪼그라들면서 투자자들의 애간장을 태웠다. 올 3월 상장 이후 약 7개월 사이 벌어진 일이다. 지난 28일 종가(5520원) 기준 주가는 공모가(1만원) 대비 45% 밑돌고 있다. 현재 시가총액은 632억원 수준이다. 최악의 경우 미래 가치를 입증하지 못하다가 심각한 경영난에 시달려 상장폐지라도 되면 투자자들의 주식은 그야말로 휴지조각이 될 수도 있다.
이같은 우려에도 거래소는 특례 제도 신설을 통해 상장 장벽을 낮추고 있다. 특례 상장 제도의 유형을 다양화하는 건 더 많은 기업을 유치하겠다는 거래소의 방향성과 부합하기 때문이다. 해외기업의 유치가 사실상 어려운 만큼 특례 상장 제도는 거래소 확장에 좋은 창구가 될 수 있다.
올해 안으로 완료하겠다던 기술력 평가 모델 개선 작업도 상장 요건 강화보단 완화에 가깝다는 게 시장의 판단이다.
김수연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모델 개발은 기존의 상장 요건을 강화하는 게 아니냐는 시장의 우려와는 다른 목적이라고 생각한다"며 "다양해지는 기술특례 업종에 대한 대응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손실을 호소하는 개인들도 특례 상장 기업을 일반 상장과 동일한 시선으로 바라보면 안된다는 지적도 있다. 코스닥 시장은 특례 상장 기업에 한정해 관리 종목 지정 기준 중 일부를 상장 후 3년에서 5년에 걸쳐 유예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경영 성과가 단기간에 나오기 어렵다는 특례 상장 기업들의 고질적인 한계를 반영한 것이다.
업계에선 특례 상장 기업의 주가는 결국 기술력에 달린 만큼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해야 한다는 조언을 내놓고 있다. 한 코스닥 업체 관계자는 "오인된 정보로 인한 피해는투자자 몫인 만큼 일반 상장 기업보다 더 잘 알아보고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계속)
신현아 한경닷컴 기자 sha01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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