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물이 블루오션이다

권소현 2022. 10. 3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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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열 물복지 연구소장·전 수자원공사 처장] “전기는 국산이지만 원료는 수입입니다.” 요즘은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어디서 본듯한 문구일 것이다. 2010년에 한국전력공사가 도로나 주택가 곳곳의 배전함에 붙였던 에너지 절약 슬로건이다. 전기는 국산이지만 그 전기를 만드는 원료는 석유, 석탄으로 수입이 많다는 뜻이다.

다른 말로 바꿔보자. “물은 국산이지만 기술은 수입입니다”는 어떨까? ‘에이, 그럴 리가 없다’고? 아니다. 정말이다. 우리 강과 바다에서 퍼온 물을 외국 설비와 기술로 가공해
반도체등 산업용수로 쓴다. 경제대국의 체면에 자존심 상한다.

물이라고 다 같은 물이 아니다. 강물도 있고 바닷물도 있다. 바닷물을 마실 수 있는 담수로 바꾸는 것을 ‘해수 담수화’라고 한다. 만성적 물 부족 지역인 서해안, 남해안이나 섬마을 주민들에겐 꼭 필요한 공정이다. 그런데 이 공정을 감당할 주요 장비며 기술은 유감스럽지만 ‘메이드 인 코리아’가 아니다.

산업의 측면에서는 물을 ‘공업용수’와 ‘순수’와 ‘초순수’로 분류한다. IT, 석유화학, 바이오 등의 기업은 ‘순수’급 이상의 물을 사용해야 한다. 물을 ‘순수’ 이상으로 정화하는 기술도 역시 일본 등 외국에 의존하고 있다. 산업을 위한 물이 국산이 아니라는 얘기다.

물 산업은 미래 먹거리다. 말 그대로 블루오션이다. 2020∼2030년 세계 인프라 투자수요 전망을 살펴보자. 요즘 잘나가는 통신은 0.17%에 그쳤다. 전력이 0.24%, 도로가 0.29%인데 물 산업은 1.03%, 1조 370억 달러다. 물 산업의 지속적 발전성을 보여준다.

물 전문 리서치 기관인 영국 GWI도 글로벌 산업용수 시장이 2024년 23조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또 해수 담수화는 UAE, 사우디아라비아, 중국 등이 대규모 프로젝트를 계획 중이며 매년 15%씩 성장할 것이라는 예측도 덧붙였다.

대표적인 물 산업은 해수 담수화와 고부가가치인 ‘순수’와 ‘초순수’를 생산하는 기술로 나눌 수 있다. 반도체로 먹고사는 한국에서 순수, 초순수 등 산업용수의 수요는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 수요에 비해 공급을 위한 설비와 기술력이 너무 부족한 실정이다. 대한민국 대표기업 삼성전자가 사내에서 물 절약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뒤늦게 국토교통부가 2006년부터 VC-10 사업으로 해수담수화 플랜트 사업단(Sea HERO) 추진을 시작했다. 선진국 추격형 R&D로 959억 원의 정부예산을 투입해 역삼투 방식의 대형화 및 국산화를 목표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또 환경부는 초순수 생산 국산화를 위한 실증플랜트(2,400㎥/일)를 구축하고 전문인력 270명을 양성해 2025년부터 5만㎥/일의 초순수를 생산, 국내 기업에 공급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런 국책 R&D사업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대기업, 중소기업이 함께 협업해 수출까지 염두에 둔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해수 담수화와 초순수 사업은 복합적인 플랜트 설비 사업이다. 미래시장을 이끌고 수출 상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몇몇 대기업의 참여로 그쳐서는 안 된다.

국책 R&D사업에 공정별로 중소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어야 한다. 단위 공정별 1~2개사를 선정해 국산화 개발을 유도해야 한다. 그래야 두꺼운 기술 인력층을 만들 수 있다. 또 해외 발주의 경우 전 과정을 일괄적으로 수주하는 턴키 방식이 대부분이므로 건설사 및 설계사도 참여해 자체 기술력을 확보하도록 해야 한다.

국내엔 물 관련 대기업이 다수가 있다. 역사도 20~30여 년에 이른다. 그런데 아직도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업체는 없다. 이유가 뭘까? 물 산업은 기술력의 산업이다. 순수, 초순수 및 해수 담수화의 경험이 있는 엔지니어 층이 너무 빈약하다. 그러다 보니 하수처리장 및 소규모 상수도 시설의 운영 관리에만 몰두한다. 매출 실적 대부분을 상하수도 관련 부문에서 만들고 있는 실정이다. 드넓은 바다를 두고 좁은 우물 안에 매인 꼴이다.

산업화가 늦어 식민지를 경험했다. 생존과 산업에 꼭 필요한 미래 먹거리 물 산업에 뒤처지면 또 다른 ‘식민’을 경험할 수도 있다. 물 관련 기업과 정부의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이 절실하다.

권소현 (juddi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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