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물이 블루오션이다
[이중열 물복지 연구소장·전 수자원공사 처장] “전기는 국산이지만 원료는 수입입니다.” 요즘은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어디서 본듯한 문구일 것이다. 2010년에 한국전력공사가 도로나 주택가 곳곳의 배전함에 붙였던 에너지 절약 슬로건이다. 전기는 국산이지만 그 전기를 만드는 원료는 석유, 석탄으로 수입이 많다는 뜻이다.
물이라고 다 같은 물이 아니다. 강물도 있고 바닷물도 있다. 바닷물을 마실 수 있는 담수로 바꾸는 것을 ‘해수 담수화’라고 한다. 만성적 물 부족 지역인 서해안, 남해안이나 섬마을 주민들에겐 꼭 필요한 공정이다. 그런데 이 공정을 감당할 주요 장비며 기술은 유감스럽지만 ‘메이드 인 코리아’가 아니다.
산업의 측면에서는 물을 ‘공업용수’와 ‘순수’와 ‘초순수’로 분류한다. IT, 석유화학, 바이오 등의 기업은 ‘순수’급 이상의 물을 사용해야 한다. 물을 ‘순수’ 이상으로 정화하는 기술도 역시 일본 등 외국에 의존하고 있다. 산업을 위한 물이 국산이 아니라는 얘기다.
물 산업은 미래 먹거리다. 말 그대로 블루오션이다. 2020∼2030년 세계 인프라 투자수요 전망을 살펴보자. 요즘 잘나가는 통신은 0.17%에 그쳤다. 전력이 0.24%, 도로가 0.29%인데 물 산업은 1.03%, 1조 370억 달러다. 물 산업의 지속적 발전성을 보여준다.
물 전문 리서치 기관인 영국 GWI도 글로벌 산업용수 시장이 2024년 23조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또 해수 담수화는 UAE, 사우디아라비아, 중국 등이 대규모 프로젝트를 계획 중이며 매년 15%씩 성장할 것이라는 예측도 덧붙였다.
대표적인 물 산업은 해수 담수화와 고부가가치인 ‘순수’와 ‘초순수’를 생산하는 기술로 나눌 수 있다. 반도체로 먹고사는 한국에서 순수, 초순수 등 산업용수의 수요는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 수요에 비해 공급을 위한 설비와 기술력이 너무 부족한 실정이다. 대한민국 대표기업 삼성전자가 사내에서 물 절약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뒤늦게 국토교통부가 2006년부터 VC-10 사업으로 해수담수화 플랜트 사업단(Sea HERO) 추진을 시작했다. 선진국 추격형 R&D로 959억 원의 정부예산을 투입해 역삼투 방식의 대형화 및 국산화를 목표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또 환경부는 초순수 생산 국산화를 위한 실증플랜트(2,400㎥/일)를 구축하고 전문인력 270명을 양성해 2025년부터 5만㎥/일의 초순수를 생산, 국내 기업에 공급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런 국책 R&D사업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대기업, 중소기업이 함께 협업해 수출까지 염두에 둔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해수 담수화와 초순수 사업은 복합적인 플랜트 설비 사업이다. 미래시장을 이끌고 수출 상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몇몇 대기업의 참여로 그쳐서는 안 된다.
국책 R&D사업에 공정별로 중소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어야 한다. 단위 공정별 1~2개사를 선정해 국산화 개발을 유도해야 한다. 그래야 두꺼운 기술 인력층을 만들 수 있다. 또 해외 발주의 경우 전 과정을 일괄적으로 수주하는 턴키 방식이 대부분이므로 건설사 및 설계사도 참여해 자체 기술력을 확보하도록 해야 한다.
국내엔 물 관련 대기업이 다수가 있다. 역사도 20~30여 년에 이른다. 그런데 아직도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업체는 없다. 이유가 뭘까? 물 산업은 기술력의 산업이다. 순수, 초순수 및 해수 담수화의 경험이 있는 엔지니어 층이 너무 빈약하다. 그러다 보니 하수처리장 및 소규모 상수도 시설의 운영 관리에만 몰두한다. 매출 실적 대부분을 상하수도 관련 부문에서 만들고 있는 실정이다. 드넓은 바다를 두고 좁은 우물 안에 매인 꼴이다.
산업화가 늦어 식민지를 경험했다. 생존과 산업에 꼭 필요한 미래 먹거리 물 산업에 뒤처지면 또 다른 ‘식민’을 경험할 수도 있다. 물 관련 기업과 정부의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이 절실하다.
권소현 (juddi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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