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광·폐조선소에 ‘스타트업 감성’ 더하니 관광객 북적

춘천·속초·평창·태백=장우정 기자 2022. 10. 31.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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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경제 살리는 로컬 스타트업]⑤ 강원
기술보다 지역 자원 내세워 새 시장 개척
”시장 작고 투자 어려워 지자체 도움 필수”
강원 태백에 마지막 남은 광산. 철암역 앞(철암역두) 장성광업소 선탄시설 전경. 2024년 폐광을 앞두고 있다. /태백=권숙연 PD

강원 태백시 철암역 앞(철암역두)에 서니 국가등록문화재 장성광업소 선탄장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대지면적 5만1703㎡(약 1만5640평)의 거대한 시설물은 원탄을 저장, 운반, 가공 처리하는 곳이다. 시설은 수시로 굉음을 내며 선별된 석탄 가루를 떨어뜨렸다.

우리나라에 마지막 남은 탄광 네 곳 중 한 곳인 장성광업소는 2024년 폐광을 준비하고 있다. 태백시에 따르면 장성광업소 폐광 시 지역경제 피해 규모는 2359억원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생산량이 8만8000톤(7월말 기준)까지 쪼그라들고, 일할 인부마저 500명선으로 호황기의 10%에 그쳐 폐광은 미룰 수 없는 과제라는 데 많은 시민이 공감하고 있다.

장성광업소 인근에서 만난 한 주민은 “철암에 근로자들을 포함해 1500명밖에 안 산다”면서 “빨리 폐광을 해서 관광을 육성해야 먹고살 수 있다”고 말했다. 8월을 기점으로 인구 4만명 선이 붕괴된 태백은 지역경제를 이끌던 이곳이 사라질 경우 ‘인구 3만명’도 어려울 수 있다는 위기감이 확산 중이다.

고향 태백으로 돌아와 문화 기획자로 활동 중인 김신애 무브노드(공유 오피스) 대표는 광산이 모두 사라진 태백의 미래 먹거리를 위해 ‘광광스토리지’라는 청년마을 만들기 프로젝트에 뛰어들고 있다. 빛 광(光), 광산 광(鑛)을 조합한 이 프로젝트는 빈 광산의 빛을 밝힌다는 뜻이 있다. 김 대표는 “석탄을 실어 나르던 운탄로를 강아지 산책코스로 만든다든가 광산 트래킹 코스를 개발하는 식의 콘텐츠를 준비하고 있다”면서 “태백 하면 석탄(광산)인 만큼 광산 문화를 우리가 이어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왼쪽부터 속초 핫플레이스 '칠성조선소'의 최윤성 대표, 평창 차박캠핑 명소 '산너미목장'의 임성남 대표, 태백에서 활동하는 문화기획자 김신애 무브노드 대표. /속초·평창·태백=권숙연 PD
그래픽=손민균

최대 도시 원주와 도청 소재지인 춘천 정도를 제외하곤 ‘인구소멸 위험지역’으로 분류된 강원도에 스타트업 바람이 불고 있다. 도시 생활에 지친 청년 창업가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지역 자원을 스타트업 성장 방식으로 풀어내며 관광객들의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이다. 외지 출신 창업가들도 속속 뛰어들고 있다. 대부분 스타트업이 기술 위주인 것과 대조된다.

가장 대표적인 성공 사례 중 하나는 속초의 명소 ‘칠성조선소’다. 청초호 호숫가 뻘밭을 메워 원산조선소라는 이름으로 1952년 문을 연 이곳은 2대째인 2017년 8월까지 소형 어선을 주로 만들고 수리하다가 3대째인 최윤성 대표 때에 그 기능을 멈추고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했다. 조선소 사택은 카페로, 조선소 자리는 문화공간으로 각각 개조해, 관광객들이 일부러 찾아와 인증샷을 찍는 속초 명소로 자리 잡았다.

홍익대 미대 출신인 최 대표는 “2013년부터 레저 선박을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조선업이 어려워지고 어민이 줄면서 공간을 변화시키게 됐다”면서 “속초 인구가 약 8만명, 인근 고성·양양까지 합쳐도 20만명이 채 안 되지만 (강원도는) 170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곳이 만큼 성수기 효과가 있는 점은 장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1년의 반은 비수기이기 때문에 인력 운용·고용이 어렵지만, 그럼에도 서울 생활에 지친 이들에게는 만족도가 클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강원도 속초의 유명 복합문화공간 '칠성조선소' 전경. 조선소로 운영되던 공간을 유지하면서 카페 등으로 관광객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속초=권숙연 PD

평창의 차박(차에서 숙박) 캠핑 명소 산너미목장의 임성남 대표도 서울 소재 동물 약품 회사에서 6년을 일하다 고향으로 돌아와 가업을 이어받았다. 아버지 때 흑염소 농장으로 운영되던 이곳은 임 대표가 오고 나서 차박이라는 신규 서비스로 이전보다 더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캠핑 열풍, 소셜미디어(SNS) 인증 덕분이었다.

임 대표는 “서울에서 사회생활을 한 덕분에 유휴지를 활용할 수 있는 아이템, 이를 확장시킬 수 있는 네트워크를 접목시켜 목장의 가능성을 좀 더 볼 수 있게 됐다”며 “평창은 스키장 등 관광지 대부분이 북부에 몰려 있어 산너미목장이 있는 남부의 경우 상권, 인프라가 낙후돼 있는 게 사실이지만 아무 것도 없는 만큼 기회도 있다”고 말했다.

평창 산너미목장을 찾은 캠핑족들이 식사를 즐기고 있다. /평창=권숙연 PD

업계 관계자들은 지리적·경제적으로 척박한 강원도에서 스타트업이 속속 등장한 데는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가 구심점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 2015년 박근혜 전 정부는 춘천에 데이터센터를 두고 있는 네이버(NAVER)를 매칭시켜 그해 5월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를 열었다. 네이버 출신 한종호 현 소풍벤처스(강원 기반 스타트업 투자사) 파트너가 초대 센터장을 맡았다. 올해 3월까지 두 번 연임을 해서 3번의 임기를 지냈다.

당시 같이 만들어졌던 전국 창조경제혁신센터 중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카카오가 매칭)와 함께 매우 잘 운영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는 스타트업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스타트업얼라이언스(스타트업 지원기관) 출신 이기대 센터장이 그 뒤를 잇고 있다.

한종호 전 센터장은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는 중앙집권적 산업화 시대를 거쳐오면서 대기업의 생산기지 역할을 하거나 잘하고 있는 기업을 유치하는 데만 익숙했지, 지역 내에서 작은 기업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시스템(생태계)을 만들려는 시도가 거의 없었다”며 “돈을 아무리 풀어도 생태계가 만들어지지 않는 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인 만큼 여러 관계자들이 연계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상호작용을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유행처럼 퍼지던 기술 스타트업 발굴보다는 지역 유산을 활용해 시장을 만들어 나가는 로컬 기업 발굴하고, 이들을 연결해서 지자체들이 일을 줄 수 있게끔 했다”고 덧붙였다.

강원 소재 많은 스타트업의 멘토로 활동 중인 이선철 감자꽃스튜디오 대표는 지자체가 더 많이 도와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련성 기자

전문가들은 지방자치단체가 적극적으로 도와줘야 청년 로컬 스타트업이 생존하고 성장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가 발굴한 로컬 스타트업을 지원해주는 이선철 감자꽃스튜디오 대표는 “로컬 자체로는 시장이 작아 공공시장을 시장의 범주로 봐야 생존할 수 있다”면서 “지자체는 이들이 지역에서 버텨주는 것에 대한 대가를 지원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보조금뿐만 아니라 각종 정부 사업으로 현지 스타트업에 일거리를 줘야 한다는 취지다.

이기대 강원창조경제혁신 센터장도 “로컬 생태계는 지역 커뮤니티에 더 좋은 기능,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투자 수익을 기대하는 민간이 돈을 넣고 싶어 하지 않는 만큼 공공 지원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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