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져나올 수도 구하기도 어려운 아수라장… 참사 현장엔 주인 잃은 신발 수북 [이태원 핼러윈 참사]
긴박했던 사고 순간
“밤 10시부터 골목에 인파 몰려
앞사람 밀어버리며 가는 사람도”
15분 후 ‘사람 깔렸다’ 신고 접수
구조대원들 인파 뚫고 겨우 진입
골목 중간에선 꼼짝 못해 피해 커
턱 위 올라가고 벽 잡고 버티기도
참혹한 현장
경찰, 유류품 수거해 신원 파악
시민들 헌화·애도 발길 이어져
“인파에 깔렸을 때, 압박감이 너무 심해서 ‘정말 죽겠구나’ 싶었어요.”
생명 살리는 분주한 손길 지난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에 핼러윈을 맞이해 많은 인파가 몰리며 대규모 압사 사고가 발생하자 시민들이 경찰, 119 구조대원들과 함께 환자들에게 심폐소생술(CPR)을 하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 캡처 |
이날 오후 8시 이후부터 인파가 빽빽이 몰린 골목 사진과 동영상이 개인 SNS와 블로그 등에 올라오더니 오후 10시15분쯤 소방당국에 해밀톤호텔 옆 폭 3.2m 정도의 비좁은 경사로에 시민 10명이 깔려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이태원 거리로 나온 인파를 겨우 뚫고 오후 10시22분쯤 현장에 도착한 소방관들은 겹겹이 쌓인 시민들을 구조하기 시작했다.
이후 소방당국은 오후 10시43분 소방대응 1단계, 오후 11시13분 2단계를 거쳐 오후 11시50분에는 소방대응 최고단계인 3단계를 발령하고 전국 6개 시·도소방본부 119구급차 142대 투입을 지시했다. 서울소방본부에는 구급차 52대와 함께 전 구급대원 출동을 요청했다. 타 지역에서 동원된 구급차는 90대로 경기소방본부 50대, 인천·충남·충북·강원소방본부 각 10대씩이다. 소방과 경찰 총 투입 인원은 2692명에 달했다.
20대 남성 B씨도 “기절한 사람이 많았다. 힘들어서 처져 있는 줄 알았는데 입에 거품을 물고 있더라”고 전했다. B씨는 특히 골목길 가운데 쪽에 있던 사람 중 부상자가 많았다고 말했다. 골목길 끝쪽에 있던 시민들은 턱 위로 올라가거나 벽을 붙잡고 버티기도 했는데, 가운데에 있던 시민들은 발들이 뒤엉킨 채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는 것.
이번 사고 이전에도 위험한 상황이 발생했다는 증언도 있다. 20대 여성 하모씨는 “오후 9시쯤 이태원역에 도착해서 해밀톤호텔 옆 골목을 올라갔는데, 사람들이 갑자기 내려와서 뒷걸음질로 내려갔었다. 그때도 사고가 날 수 있었던 것”이라며 “골목이 너무 좁으니까 펜스로 올라가는 경로와 내려가는 경로를 구분해놨으면 더 안전하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눈앞에서 사고를 목격하거나 도로에서 수십명이 CPR를 받는 모습을 본 시민들은 충격을 받은 나머지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하늘색 모포나 옷가지 등이 얼굴까지 덮인 사람들을 보며 시민들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경찰과 소방 관계자들은 이태원로 인근에서 소리를 지르며 지휘봉으로 시민들을 통제하려고 했지만, 인파가 너무 몰려 한동안 제대로 통제되지 않았다. 사고 현장 인근 통행을 막으려는 경찰과 지나가려는 사람들 간에 고성이 오가다 몸싸움 직전까지 번지며 험악한 상황이 펼쳐지기도 했다.
사고 현장에서 친구를 잃어버린 시민들은 늦은 시간까지 현장에 남아 친구의 소식을 기다렸다. 오전 3시 이태원역 주변에 있던 20대 여성 박모씨는 “아까 같이 넘어진 뒤로 친구가 보이지도 않고 연락도 안 된다. 10시30분부터 찾고 있는데, 경찰에 얘기해도 실종자나 사상자 명단이 안 나왔다고만 말해서 일단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30일 새벽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일대는 전날 발생한 압사 참사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쓰레기는 물론 인파에 밀리고 넘어지는 과정에서 벗겨진 신발과 옷가지, 파티용 소품 등 사상자들의 흔적이 길거리에 나뒹굴었다.
경찰은 전날 밤에 이어 이날 오전에도 차량을 통제하면서 진입을 막았다. 일부 차량은 이태원 일대를 우회해 지나가야 했다. 참사가 일어난 이태원 해밀톤호텔 옆 골목을 비롯해 이태원 골목길 곳곳엔 경찰의 출입 통제선이 쳐져 시민들의 통행을 막았다. 사고 현장 앞에는 현장지휘본부가 마련돼 소방당국과 경찰 등 관계자들이 사상자 집계 현황 파악 등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태원 길거리는 온통 쓰레기로 가득해 전날 수많은 인파가 몰려 혼란스러웠던 상황을 짐작게 했다. 휴지와 봉투 등 쓰레기와 함께 풍선·머리띠·가면 등 핼러윈 파티용 소품들이 뒤엉켜 아수라장이었다. 이태원 클럽 등에서 열린 행사를 홍보하는 전단도 길거리에 뿌려져 있었다.
현장에는 많은 시민과 주변 상인들이 “믿기지 않는다”며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사고 현장을 지켜봤다. 전날의 충격이 가시지 않아 밤새도록 현장을 지키고 있는 시민도 있었다. 전날 부산에서 올라온 김지원(40)씨는 “어제 오후 7시쯤 (이태원에) 도착했는데 지하철역에서부터 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며 “비명이 들리고 나서 현장을 본 뒤에야 압사 사고가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됐다.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을 만큼 충격이 커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고 현장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A씨는 “어제저녁부터 사람이 점차 많아지더니 밤부터는 발 디딜 틈도 없어 보였다”며 “마치 ‘도미노’처럼 사람들이 쓰러져 겹겹이 쌓이는 광경을 길 건너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신발이 벗겨진 채 맨발에 흐트러진 옷차림으로 현장을 서성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사고 소식을 들은 시민들의 추모 발길도 이어졌다. 용산구에 거주하는 50대 박모씨는 “전날 밤에 소식을 듣고 잠을 설쳤다”며 “해가 뜨고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걱정돼 현장에 나왔다. (참사) 흔적을 보니 참담하다”고 전했다.
조희연·장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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