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채 이자에만 예산 3.5% 소요...곳곳서 ‘국채시장 리스크 관리’ 경고음
국회 예산정책처 “국채 이자 부담 주의 필요”
‘레고랜드 사태’부터 美국채 유동성 위기까지
기재부 “발행량 축소…중장기로드맵 곧 발표”
국내 국채시장 리스크를 바짝 관리하고 나서야 한다는 ‘경고음’이 곳곳에서 울리고 있다. 기본적으로 금리 인상에 따른 국채 이자 부담이 앞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날지 모른다는 예상이 나오는 데다가, 국내에선 레고랜드 사태에 따른 시장경색 사태까지 겹쳐지면서 국채 물량 조절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최근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꼽히는 미국 국채 가격까지 폭락하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위기 요소는 가중된 모습이다. ‘채권시장 안정화’가 내년도 경제 관리의 최우선 과제로 꼽히고 있다.
31일 국회 예산정책처가 작성한 ‘2023년도 예산안 총괄 분석’ 보고서는 “국가채무 규모 증가와 더불어 최근 금리 상승 추이에 따라 국가채무의 이자부담이 증가될 가능성이 있어 재정당국은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며 국채시장 관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지난해 기준 국가채무 이자 지출 중 92.4%가 국채 이자 비용이었다.
◇ 금리 불안에 가만 있어도 국채 이자에 20~30조원 지출
보고서에 따르면, 국채 이자 지출은 2017~2021년 최근 5년 동안 연 18조원 내외 수준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2023년 22조9000억원 ▲2024년 25조8000억원 ▲2025년 28조5000억원 ▲2026년 30조9000억원으로 불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의 경우 본예산(정부안·639조원)의 3.5%가량이 국채 이자를 갚는 데만 고스란히 소진되는 것이다.
문제는 향후 금리의 향방이 더욱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예정처의 ‘조달금리 변동에 따른 2022~2026년 연평균 국고채 이자비용 민감도 테스트’에 따르면, 연평균 국고채 잔액에 대한 이자지출 금액은 23조1275억원(조달금리 3.0% 가정)에서 30조8366억원(4.0% 가정)까지, 신규 발행분에 대한 이자지출은 2조5300억원에서 3조3700억원까지 변동성이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예정처는 관련 리스크 관리가 중요함을 언급하며 상·하반기 연물 구성 달리하는 등 관리 방안 보완을 요청했다. 더욱이 향후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수입 확대와 지출 절감을 통해 재원 여력을 확보하게 되면, 이를 여유자금을 활용하기보다는 국채발행 규모를 축소하는 등의 방향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 ‘살얼음판’ 국내·글로벌 국채시장
예정처에서 지적한 이자 비용 상승 문제를 비롯해, 최근 국채시장 상황은 살얼음판이다. 특히나 국내에선 이른바 ‘레고랜드 사태’까지 덮치면서,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던 국채시장으로까지 그 부정적 영향이 전이됐다. 이에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올해 남은 기간 중 국고채 발행량을 당초 목표보다 과감히 축소하겠다”고 발언한 바 있다. 국고채 발행을 줄여 회사채 등 민간 발행 채권으로의 시중 자금 분산을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추 부총리의 발언 이튿날, 기재부는 다음달 경쟁 입찰 방식으로 발행할 국고채 규모를 총 7조원으로 발표했다. 코로나 사태 이후 가장 작은 규모의 발행량이다. 통상 연말 발행량이 4~6조원에 달한다는 점을 참고할 때 12월 경쟁 입찰 방식 발행 규모는 이보다 더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정부의 올해 공식적인 국채 발행한도는 177조원인데, 이 중 이미 155조원가까이 발행을 마쳤고 11월 경쟁입찰 발행 계획이 7조원인 점을 참고하면 15조원 정도의 여력이 남는다. 여기에 국채 축소, 초과 세수에 따른 상환재원 등을 제외하면 그 한도는 더욱 줄어든다.
최근엔 미 국채의 유동성 위기까지 불안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뉴욕채권시장 벤치마크 금리인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올해 1월 연 1.631%였지만 9개월 만인 지난 21일(현지 시각)엔 연 4.291%까지 치솟았다. 1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전례 없는 국채 가격 폭락(금리 상승)에 미 재무부는 20년 만에 처음으로 유동성 공급을 위해 국채를 사들이는 ‘바이백’(조기 상환) 프로그램 도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처럼 언제, 어디서 또 글로벌 채권시장을 뒤흔들 변수가 등장할지도 모를 일이다. 영국의 리즈 트러스 전 총리는 지난달 대규모 감세안을 내놓으면서 파운드화 가치 폭락과 국채 금리 폭등 등 영국시장을 비롯해, 세계 금융시장에 대혼란을 일으켰다. 최근 리시 수낵 신임 총리의 등극으로 일단은 안정된 모습이나, 국채 유동성이 원활하지 않은 탓에 언제든지 상승세로 돌아설 수 있다는 불안감이 짙다.
◇ ‘대책 골몰’ 기재부…기시행 外人 비과세 효과도 기대
이 때문에 국채시장 리스크 관리 방안에 대해 기재부도 골몰하는 분위기다. 기재부는 ‘국채시장 중장기 로드맵’을 마련해 조만간 발표할 계획이다. 동시에 금리 위험을 헤지할 수 있는 ‘변동금리부(FRN) 국고채’ 역시 중장기적인 검토 사안으로 보고 해당 상품의 필요성과 효과 등에 대한 연구 용역에 나설 예정이다.
외국인 국채 투자 비과세 효과도 기대 중이다. 비거주자·외국법인 국채 등에 대한 이자·양도소득 영세율 적용과 관련한 ‘법인·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안은 지난 27일자로 공포돼, 지난 17일자부터의 양도 및 이자 지급분에 대해 적용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외국인 투자자들이 우리 국채시장에 많이 들어오면 조달금리 비용 하락도 기대할 수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우리 국채 시장의 경우) 외국 채권에 비해서 금리가 높다고 평가되고 있는데, 외국인 수요가 늘고 구성이 다양해지면 되면 가격이 올라가고 조달금리는 하락하는 효과가 있게 된다”고 했다.
당국은 또 당장의 단기자금시장 혼란이 일찍이 안정되기를 바라고도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최근의 (자금시장 안정화 관련) 정부와 한국은행의 대책이 나오면서 채권시장에서 불안이 전염됐던 국채 금리가 빠르게 안정을 찾아가는 효과가 있었다”며 “안정 조치의 효과가 특수채·은행채·여전채 등까지 얼마나 빠르게 확산될지가 관건일 것”이라고 했다.
이어 “국채 이자 비용이 크다고 해서 무작정 줄이는 게 아니라, 있는 상태에서 최소한으로 하면 좋은 것”이라며 “가장 중요한 건 시장에 불필요한 혼란을 줘선 안 된다는 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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