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작업 고집하는 英 패턴왕 “목판화 전통 있는 한국과 영국, 멀지만 연결돼 있어”
2009년부터 韓 건물 디자인에 참여...까사미아 매장 새단장
직접 만든 패턴 목판화에 새겨 수작업으로 찍어내
“기술에 반대 안해... 그간의 삶이 응축돼 있기에 몸 쓰는 것 선호”
패턴(pattern)은 같거나 비슷한 무늬가 반복되는 것이다. 오늘날 디자인 업계에서 쓰이는 많은 패턴은 고도로 진화된 컴퓨터 기술을 통해 손쉽게 구현된다.
영국 현대 미술계의 패턴왕이라고 불리는 리차드 우즈(Richard woods)는 직접 만든 패턴을 거대한 목판에 조각한 뒤 종이에 찍는 수작업을 고집한다.
완성 후에도 직접 붓을 들고 하나하나 리터치를 해야 직성이 풀린다. 최신 기술에 반대하진 않지만, 이런 작업 방식이 60년대에 태어나 시골에서 살아온 자신 그 자체를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 2009년부터 청담동 MCM 사옥, 서초동 하몬플라자, 양재동 하이브랜드, 파크로쉬 리조트 호텔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한국과 인연을 이어온 리차드 우즈가 이번에는 가구 브랜드 까사미아와 손을 잡았다.
신세계까사는 까사미아 매장을 리뉴얼하는 공간혁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서래마을점을 아트살롱으로 바꿨다. 평범한 매장 외벽을 그의 대표작 ‘홀리데이 홈’으로 꾸미고 내부에도 그의 작품을 전시했다.
4층은 아예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조성했다. 라이프스타일 디자인 플랫폼 아키텍트데이션이 1년에 4회 이상의 전시를 선보일 예정이다. 현재는 리차드 우즈의 새로운 작품 ‘빅 가든’을 전시했다. 판매 공간을 상설 전시 장소로 만든 파격적인 시도다.
지난 25일 까사미아 서래마을점에서 만난 리차드 우즈는 “영국 전통 목판화에서 모티브를 받아 작업을 하는데, 한국도 목판화의 문화가 있다”며 “굉장히 떨어져 있고 별개인 것 같지만 어느 순간에 연결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우즈의 작품은 원색과 두꺼운 검정 윤곽선이 결합 돼 만화 속 그림을 연상케 하는 것이 특징이다. 서래마을점에 전시된 ‘빅 가든’에도 이런 작가적 특성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둥글둥글한 꽃 모양 패턴과 원색이 다양하게 조합된 패턴은 도시에서 산업화된 방식으로 길러지는 식물들을 떠올리며 그린 것이라고 했다. 다음은 우즈와의 일문일답.
-한국의 어떤 특성에서 예술적 영감을 받았나.
“도시에서 자연이 어떻게 살아남는지 관심이 많다. 서울은 굉장히 도시적이고 인구 밀도가 높은데 사람들이 나무를 가꾸는 데 관심을 갖는다. 어느정도 자연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 같다.”
-영국의 전통 문양과 자연에서 영감을 얻는데, 한국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다른 나라이지 않나.
“영국 전통 목판화에서 영감을 받아서 작업을 하는데, 한국에도 목판화 문화가 있다. 두 나라가 굉장히 떨어져 있고 별개인 것 같은데 어느 순간에 연결된 부분이 있어서 한국에서 작업 의뢰도 많이 받는 게 아닌가 싶다.”
-이번 까사미아 프로젝트를 수락한 계기는.
“그동안에는 새로 디자인한 건축물을 야외공간에 두는 작업을 했다면, 이번 프로젝트는 내부를 꾸미는 작업이고 일반적인 미술관이 아니라 물건을 판매하는 매장이라는 점이 흥미롭다고 느꼈다. 그동안 서울을 몇번 방문한 적이 있어 찍어둔 사진이 많았기 때문에 진행도 빨리 할 수 있었다.”
-이번에 새롭게 그린 작품 ‘빅 가든(big garden)’은 어떤 이미지를 형상화한 것인가.
“단순한 꽃을 형상화한 것이다. 식물을 산업화된 방식으로 기르는 데서 영감을 받은 패턴을 만들고 싶었다. 직선적이고 정렬이 잘 돼 있고 반복적인 패턴 말이다. 어렸을 때 부모님 집 뜰에서 식물이 마음대로 아무렇게나 자연스럽게 자라다가 어느날 부모님이 가꾸기 시작하면서 아주 가지런해진 것을 떠올렸다.”
-작업은 어떻게 진행하나.
“패턴을 먼저 그리고, 전기톱 등을 이용해 목판에 조각을 한다. 하나하의 목판이 굉장히 크다. 목판을 바닥에 두고 그 위에 종이를 올리고 롤러를 이용해 찍어낸다. 인쇄기(printing press) 같은 기계는 사용하지 않는다. 작품을 직접 포장해서 보낸 뒤 한국에 며칠 머무르면서 덧칠을 약간씩 하는 작업(rework)을 했다.”
-수작업을 고수하는 이유는.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몸을 써서 직접 부딪히면서 작업하는 걸 너무 좋아한다. 세심하고 정교하게 작업하기 보다는 먼지도 묻고 자연스러운 걸 선호한다.”
-언젠가 컴퓨터 기술이 사람 손을 대체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나는 기술에 반대하는 사람은 아니다. 작업 과정에서 컴퓨터를 많이 사용하기도 한다. 내가 만약 50년 후에 태어났다면 이런 작업 방식을 고수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1960년대에 태어났고 시골에서 자랐다. 몸을 많이 쓰면서 자랐던 게 응축돼 지금의 내가 되었기 때문에 이런 방식으로 작업하는 것이다.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수작업을 하는 건 아니다.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멋있는 예술 작품이 사람 손에서 태어났을 수도 있고 기계가 만들었을 수도 있다. "
-까사미아 서래마을점을 찾는 사람들이 어떤 느낌을 받기를 바라나.
“작품을 만들고 나면 사람들에게 어떤 메시지나 느낌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길 바란다.”
-개인적으로 영감을 준 한국 예술가가 있나.
“1960~1970년대 지어진 한국 건축물을 좋아한다. 한국 영화도 좋아한다. 박찬욱 감독 영화는 거의 다 봤다. 영국에서 이번주에 개봉한 ‘헤어질 결심’도 보러갈 생각이다.
한국 영화를 보면 하나의 이야기 안에서 코미디, 폭력, 로맨스 등 다양한 장르가 섞여있고 내러티브(서사)가 살아있다.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더이상 새로운 내러티브가 없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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