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이 다시 뛴다]⑤ 준비 없는 ‘귀농’ 후엔 빚만… 경험·계획·융화가 성공 포인트
“정부 지원금 3억원은 ‘지원’ 아닌 ‘대출’… 상환 계획 철저히 세워라”
월급제나 공동경작으로 체험부터… 지역사회 융화도 중요
인구 감소와 수도권 집중화로 지방 소멸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방 소멸 현상을 막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미래도 어두울 수밖에 없다. 조선비즈는 전국 곳곳에서 지방 부흥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현장과 사람들을 찾았다. 지방에 다시 사람이 몰리고 ‘기회의 땅’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해법이 필요한지 짚어본다.[편집자주]
도시 생활에 지쳐 귀농을 결심한 30대 박가영(가명)씨는 2020년 정부 지원금 3억원으로 경기도에 농장을 차렸다. 저금리로 대출을 받은 박씨는 이른 시일 내에 갚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귀농 첫해에 농사로 손에 쥔 돈은 2000만원뿐이었다. 이자는 물론이고 시설비와 각종 관리비를 감당하기에도 어려운 금액이었다. 빚에 시달리던 박씨는 결국 도시로 다시 돌아오기로 결심했다.
은퇴 후 퇴직금까지 쏟아부어 지방으로 내려온 장년층부터 도시 생활에 치이다 농촌으로 내려온 청년까지 모두가 인생 2막을 꿈꾸며 귀농을 시도하지만, 성공적으로 지역에 자리잡는 사람은 많지 않다. 평생 해본 적이 없는 농업에 뛰어들었다가 실패하는 사람이 많고, 지역 주민들의 텃세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다. 창업보다 힘든 게 농업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성공적으로 지역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앞서 귀농귀촌을 경험한 청년 농부와 전문가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①준비 없는 귀농 늘었다… ‘소득 감소’ 대비해라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귀농어·귀촌인 통계’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귀농가구수는 1만4347가구로 2020년 대비 14.9% 증가했다. 귀농가구주 중 60대가 36%를 차지하며 가장 높은 비율을 보였고, 30대 이하 귀농가구주도 10%를 차지했다.
귀농가구수가 늘어난 것과는 반대로 귀농·귀촌 준비기간은 오히려 줄어드는 추세다. 2018년 27.5개월이었던 귀농 준비기간은 2020년 25.8개월, 2021년 22.9개월로 대폭 줄었다. 귀촌 준비기간도 2018년에는 21.2개월이었지만, 지난해 15개월로 감소했다.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지방으로 향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역귀농’을 택하는 사람도 덩달아 늘고 있다. 역귀농 통계가 따로 집계되지는 않지만, 지자체들은 귀농 인구의 대략 30~50% 정도가 역귀농을 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귀농귀촌종합센터가 발표한 ‘역귀농 희망 이유’ 설문조사에선 ‘소득 부족’이 37.8%를 차지하며 1위를 기록했다. 2위는 ‘농업노동 적응 실패’(18%)였다. ‘2021년 귀농·귀촌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귀농인의 평균 귀농 직전년도 가구소득은 3621만원이었지만, 귀농 첫해 소득은 2622만원에 그쳤다. 연 소득이 1000만원이나 줄어드는 셈이다.
실제 귀농귀촌 선배들은 ‘소득 감소’에 대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딸기재배 4년차인 농부 최지은씨는 유튜브 채널명이 ‘귀농빚쟁이’일 만큼 빚에 시달렸다고 한다. 최씨는 지난 2019년 농업정책자금 3억원을 대출받았다. 이 중 1억2000만원은 농지구입비로, 나머지 1억8000만원은 하우스시설·전기·지하수 개발 등의 농업기반을 만들고 공사하는데 사용했다. 이후 운영비가 부족했던 최씨는 4900만원을 추가로 대출해 총 3억4900만원의 대출금이 생겼다. 시설비와 생산비 등으로도 매년 2000만원 이상의 지출이 발생한다.
이에 비해 수입은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최씨는 첫해 2400만원의 매출을 올리기 시작해 3년차에 3800만원의 수익을 냈다. 대출을 갚아나가면서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수익인 6000만원에는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다.
②자급자족 환상 버려야… 원가 외우고, 판로 개척 나서라
경기도 연천에서 대추방울토마토 농사를 짓고 있는 정기윤씨는 ‘리틀 빚레스트’라는 제목의 유튜브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농업계 고등학교와 농대를 졸업한 그는 자신감을 가지고 귀농을 했지만, 4년차까지 실패를 거듭하며 적자에 시달렸다. 5년차에 접어든 현재도 농사로 버는 연 순수익은 50만원 수준에 그쳐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다.
최씨와 정씨는 ‘철저한 준비만이 답’이라고 말했다. 최씨는 “’지원’이란 것이 돈을 주는 게 아니다. ‘지원, 정책자금’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이 농업 활성화를 위해 돈을 주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든다”면서 “내 신용으로 거액을 대출 받지 못하는데, 농업 기반을 마련한다는 조건으로 대출을 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씨는 “3억원을 3년 거치·7년 상환 조건으로 대출했는데, 올해부터 시작된 원금분할상환으로 인해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며 “생산계획뿐만 아니라, 생산한 농산물에 대한 판매 계획까지 만반의 준비를 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씨는 농업에 뛰어들었다고 ‘농사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어떻게 농장을 경영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 생산비(난방비·인건비·재료비 등)는 얼마 정도 들어갈 것인지 등 지출 계획까지 꼼꼼하게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농업특화 기술사업화 전문회사인 ‘이암허브’를 운영하고 있는 구교영 대표는 “성급한 귀농은 사업 실패나 사기 피해 등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시작부터 뛰려고 하지 말고 ‘걷기부터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접근해야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다”면서 “사업 실패를 방지하기 위해 1~2년 정도 월급제 또는 공동경작 프로젝트를 진행, 기술경쟁력과 사업전략을 구체화한 다음 자신의 사업을 시작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③’시골 텃세’ 극복해야… 장기전 각오하고 스며들어라
귀농귀촌한 청년들이 마주하는 어려움 중 하나가 ‘텃세’다. 경제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시골마을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겉돌다가 결국 도시로 돌아오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조선비즈가 제주도에서 만난 한 감귤농장 체험카페 대표도 제주도 이주 초기 텃세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털어놨다. 제주도는 섬의 특성상 다른 지역보다도 육지에서 이주한 사람에 대한 경계가 심하다고 한다.
5년 전 제주로 이주했다는 A씨는 카페 창업을 꿈꾸며 제주도에 내려왔지만 처음부터 카페 창업에 나서지 않았다. 창업에 필요한 자금을 모을 겸 제주도에 있는 회사에 취업, 1년 동안 회사 생활을 했다. 처음에는 텃세를 느꼈지만 1년 동안 지역 사회에서 다양한 취미 활동과 모임을 하면서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고 한다.
이후 A씨는 푸드트럭으로 장사를 시작해 지금은 감귤농장 체험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카페를 바탕으로 숙박업과 책방으로 사업을 확장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A씨는 “제주도는 독립적인 문화가 아니라 집성촌 문화가 강하기 때문에 육지에서 온 사람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고, 연이 없는 사람에 대한 텃세도 심하다”며 “제주도로 귀농귀촌을 하려면 이런 문화적인 차이를 알고 제대로 준비하고 와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자체 차원에서 귀농인들이 지역 사회에 녹아들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노력도 필요하다는 분석도 있다. 박시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명예선임연구위원은 “기술이나 인프라 지원만으로는 청년들이 농촌에서 생활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지자체가 청년 농업인들의 모임을 후원하는 등 자연스럽게 지역 사회에서 교류하고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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