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랜드 후폭풍⑤]금융당국 돈 쏟아붓기…미봉책 지적도
[서울=뉴시스] 정옥주 기자 = 금융당국이 레고랜드 사태로 확산된 자금시장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50조원이 넘는 유동성을 투입하고, 각종 규제를 푸는 등 막힌 자금시장 '뚫기'에 나서고 있다. 아직까지 채권 시장의 반응은 냉담하지만 금융당국이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를 추가로 조성하고, 투자 '큰 손'들에 협조를 구하고 있어 시장에 온기가 돌지 주목된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23일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50조원+α 유동성 지원 조치'를 발표했다. 이는 채안펀드 20조원, 회사채·기업어음(CP) 매입 프로그램 16조원, 한유동성 부족 증권사 지원 3조원, 주택도시보증공사(HUG)·주택금융공사의 사업자 보증지원 10조원 등으로 구성됐다.
채안펀드는 가동 발표 이후 속도감 있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 24일 CP 등을 중심으로 매입을 시작했으며, 시장소화가 어려운 회사채·여전채 등의 매입을 재개할 예정이다.
또 당국은 이번주 중 3조원 규모의 1차 추가 캐피털콜(자금 납입 요청)에 나서기로 했다. 20조원 규모의 채권 매입으로 자금경색을 풀어내는 데 부족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추가로 조성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단 캐피탈콜로 인한 금융기관의 출자부담을 완화하고 시장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순차적으로 분할 출자토록 할 예정이다.
증권사들에 대한 유동성 지원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26일부턴 한국증권금융이 중·소형 증권사를 대상으로 한 환매조건부채권(RP)과 증권담보대출을 통해 3조원 규모의 자금 지원을 개시했고, 산업은행이 2조원을 증권사 CP 매입에 투입키로 하는 등 증권사들에만 총 5조원의 자금을 쏟아 부었다. 한국은행도 RP매매 대상증권을 확대하고 증권금융 등에 대해 6조원 규모의 RP매입을 실시하는 등 단기금융시장 안정에 힘을 보탰다.
국민연금 등 '큰손'들에 SOS…"P-CBO 매입하고 과도한 매도 자제"
금융위 관계자는 "지금 시장이 안 좋으니 과도하게 쏠려가지 말고, 기관 투자자들이니 중장기적 시각에서 차분하게 봐달라고 협조 요청을 했다"면서 "유동성은 항상 크런치가 일어날 수가 있으니 시장에서 중심을 잡아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국민연금 등에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의 일환인 신용보증기금의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 발행 물량에 대한 적극적인 매입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P-CBO보증은 개별기업이 발행하는 회사채 등을 기초자산으로 유동화증권을 발행해 기업이 직접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다. 기본적으로 회사채이긴 하지만 신보의 보증으로 안전성이 최고 수준으로 오르기 때문에 미매각 위험이 거의 없고, 조달비용 부담도 완화돼 지금과 같은 금리상승기 기업들의 안정적인 자금확보 수단으로 각광받아왔다.
당국은 이번에 발행 규모를 8조원에서 16조원으로 늘렸고, 매입대상도 신용보강이 필요한 중소·중견기업 회사채와 건설사·여전사로 확대했다. 다만 금융권에 따르면 신보는 지난 27일 P-CBO 5432억원을 발행했으나, 이중 약 1400억원이 투자자를 찾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정부도 기재부 등을 중심으로 범정부 차원에서 공공기관의 채권발행 분산을 추진 중이며, 산은·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의 채권발행도 최소화키로 했다.
은행권에도 은행채 발행을 최소화하고 단기시장 유동성 공급, 채권매입 등을 통해 시장안정을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줄 것을 주문했다. 금투업권도 대형 증권사를 중심으로 증권사 보유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등을 공동매입하는 등 시장안정 기여 방안에 합의했고, 보험업권은 채안펀드의 캐피탈콜 등에 적극 협조하기로 했다. 여전업권에서도 자체 유동성 관리에 만전을 기하는 등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지속 노력할 계획임을 밝혔다.
각종 규제도 완화…회사채 대신 은행 자금길 터준다
이에 따라 금융위는 은행과 저축은행이 기업부문에 충분한 유동성을 공급할 수 있도록 예대율 규제비율을 은행 100%→105%, 저축은행 100%→110%로 6개월 이상 완화했다. 이와 함께 은행 예대율 산출시 한국은행 차입금을 재원으로 하는 금융중개지원대출을 제외, 은행의 예대율 버퍼를 확대했다.
이렇게 되면 은행들에 최대 60조원 규모의 대출 여력을 생겨 회사채 발행이 막힌 기업들에게 자금을 적극적으로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은행 통합 LCR 규제비율 정상화 조치도 6개월 유예했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85%로 완화했던 LCR 비율을 정상화하기 위해 은행들은 LCR을 오는 12월까지 92.5%로 높여야 하는데, 이를 내년 6월 말까지 유예한 것이다. 최근 은행들이 LCR 비율을 맞추기 위해 은행채 발행을 대거 늘리면서 회사채 시장 불안에 일조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하지만 이번 LCR 정상화 조치가 연기에 따라, 은행채 발행 수요가 줄어 채권 시장 안정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당국은 보험회사 유동성비율 규제시 유동성자산의 인정범위도 확대하기로 했다. 또 당국은 필요시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순안정자금조달비율(NSFR) 완화 등 추가조치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채권시장 온기돌까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27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강원도가 레고랜드 사태와 관련해 구체적인 변제 계획을 발표했고 채안펀드 기금 매칭도 점점 눈에 띄게 많아지고 있다"며 "둔촌주공아파트도 사실상 전액 차환에 성공했고 LCR, 은행 예대율 관련 조치 등도 더해져 이번 주말을 지나면 시장 심리도 많이 풀리고 실제로 필요한 것들에 대한 자금 공급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시장에서는 정부가 쏟아내는 완화 정책들이 시장에 일부 안도감을 불러일으킬 순 있겠지만, 회사채 등 단기자금시장까지 온기가 돌기 위해선 시간이 더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안예하 키움증권 연구원은 "자금 경색 우려에 금융당국의 단기자금시장 안정을 위한 다양한 정책이 제시되고 있다"며 "금융당국의 유동성 지원 정책이 집행되면서 시장 불안은 완화될 것으로 예상되나 근본 원인인 금리 인상 기조가 중단되는 것이 아닌 이상 투자심리 회복까지는 다소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정부, 대규모 유동성 투입…괜찮나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원칙적으론 우량 회사채 위주로 매입하는 것이 맞지만 지금은 과거의 채권 시장하고는 상황이 다르다"며 "기업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 충격이 발생하면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시장 안정 차원에서 이러한 기업들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재 채권 시장을 중심으로 신용 경색이 있는데, 위기가 전체 시스템 리스크로 번지지 않기 위해선 신용도가 좀 떨어지는 곳에 대한 신용보강을 해줄 필요가 있다"며 "다만 기업들 중 수익성엔 문제가 없지만 일시적인 유동성 문제인 곳이어야 하며, 이들의 일시적 유동성 위기가 신용 경색으로 더 악화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시장 상황이 불안한 것은 맞지만 증권사들을 비롯해 기업들에 정말 유동성에 문제가 있는 것이냐 하는 부분은 짚어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며 "정부가 마지막에 나와야 할 대책들까지 너무 서둘러 내놓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 관계자도 "이번 기회에 구조조정을 통해 털고 가야한다는 의견과 정책이 너무 서둘러 집행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포함해 다양한 의견이 시장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여러 의견들을 감안해서 정책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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