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최고 싱크탱크의 경고 “미국은 스스로를 고립해 브렉시트의 길로 가고 있다”
美 정부 고립주의 브렉시트에 견줘 비판
韓 정부에 미국과 프렌드 쇼어링 추진 권해
공급 충격 빈번 예상, 취약 산업은 첨단 제조업, 화학 등 언급
미국 내 최고 싱크탱크의 수장(首長)이 미국의 현 정치‧경제 시스템에 대해 강한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미국의 현재 상황이 자신을 스스로 고립시켜 세계에 대한 주도권을 잃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이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단행해 경제 위기를 겪고 있듯 미국도 국력을 약화하는 길로 가고 있다는 진단이다. 경제 주도권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근시안적 시각이 오히려 미국의 국력을 약하게 하고 있다고도 했다.
한국에 대해서는 미국 정부와 투자와 공급망 구축에서 같은 배를 타는 ‘프렌드 쇼어링’(Friendshoring)을 할 것을 권했다. 한국의 경제성장률(GDP)을 올릴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으로는 적극적인 이민정책을 통한 이민자 활용을 꼽았다.
아담 포센(Adam Posen)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소장은 지난 13일 조선비즈가 주최한 ‘2022 글로벌 경제·투자포럼’ 강연 이후 추가 서면 인터뷰를 통해 이런 내용의 의견을 전했다. 포센은 “세계화의 붕괴에 가장 중요한 2가지 요인 중 하나는 미국이 민족주의 포퓰리즘으로 전락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PIIE는 워싱턴 DC에 본사를 둔 비영리 싱크 탱크다. 포센은 하버드대 정치경제학 박사 출신으로 2013년부터 PIIE를 이끌고 있다. 그는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영국 영란은행(Bank of England) 통화정책위원회 사외자문위원으로도 재직했다.
다음은 포센 소장과의 일문일답.
조선비즈 포럼 강연에서 세계화의 붕괴라는 언급을 했다. 이런 현상의 가장 큰 이유는 뭔가.
“가장 중요한 요인이 2가지 있다. 첫째는 미국이 민족주의 포퓰리즘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것은 미국과 중국 간 긴장 고조다. 이런 2가지 상황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은 타국에 의존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더욱 조장했다. 2가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 것이다. 결국 세계화는 붕괴 수준까지 왔다.”
미국이 포퓰리즘으로 가고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반(反) 개방을 의미하는 고립주의를 표방한다는 말이다. 미국은 최근 좌파보다는 우파에 치우친 형태로 정치의 급진화를 겪었다. 하지만 좌파나 우파 두 극단 모두 이념적으로는 고립주의를 표방한다. 이는 미국 역사에서 반복적으로 보이는 패턴이다. 토착주의와 고립주의의 파도가 커지면서 미 정치계를 장악하고 있다.”
고립주의가 성행하는 이유는.
“중국 때문이다. 중국으로부터 느끼는 경제적, 안보적 위협은 이런 고립주의 감정을 키워가면서 (고립주의가 정당하다는) 일종의 합법성을 부여한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으로 정치적인 움직임에 의한 현상이며 경제 논리에 따른 행위는 아니다.”
그 고립주의의 결과는 무엇인가.
“(세계 정치‧경제에 대한) 미국의 주도권과 회복에 대한 탄력성을 약화하는 게 고립주의의 결과다. 영국이 브렉시트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듯이. 미국은 근시안적으로 (경제 상황) 통제에 대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과도하게 자체 공급망을 구축하기를 원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어떤 식으로 고립주의가 진행됐나.
“미국 경제는 여러 측면에서 20~25년 전보다 세계 경제에 적게 관여하고 있다. 수출과 수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줄었다. 외국인직접투자(FDI)도 미국 경제에서 비중이 줄고 있고 이민이 허락되는 외국인 수도 많이 감소했다. 미국은 미국 시장 개방을 요구하는 그 어떤 무역 거래도 하려고 않는다. 미국의 채권을 사는 외국인 투자자들도 줄었다. 이 모든 현상이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고소득 경제국들이 다른 나라와 개방과 연결을 늘려왔던 지난 20~25년 사이에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실제 포센의 지적대로 세계은행(World Bank)에 따르면 미국의 FDI 규모는 2000년 3491억3000만 달러에서 2020년 1489억1000만달러로 20년 동안 57.3%(2002억2000만 달러) 감소했다. 같은 기간 미 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10.7%에서 10.2%로 줄었고,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14.4%에서 13.3%로 감소했다.
미국은 미국 시장 개방을 요구하는 그 어떤 무역 거래도 하려고 않는다.
미국이 계속 보호무역주의와 폐쇄적 산업정책을 이어간다면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한미 정부가 양국 간 투자와 공급망 구축을 각각 자국 내 방침과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에 합의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프렌드 쇼어링이 되는 전략적 제휴가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국 정부는 자국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반도체 칩과 전기 자동차 제조사, 조선업체, 기타 운송과 기술 산업이 미국 기업과 동일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미국 정부에 요구할 수 있게 된다.”
포센이 말한 프렌드 쇼어링은 친구(friend)와 기업의 생산시설(shoring)을 합친 단어다.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끼리 공급망과 첨단 기술 개발에 협력, 향후 지정학적 리스크를 최소화하며 국제적 분업 체계의 효율성을 강화한다는 개념이다. 우방국과 협력은 강화하되 비우호국과는 배타적인 관계를 설정한다.
미국의 고립주의가 가장 크게 부정적 영향을 주는 한국의 산업은 어떤 분야인가.
“이런 합의를 체결한다고 해도 한국의 정보통신, 전자 기술 제조업체들은 여전히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은 중국 기업들에 고도의 기술이 이전 또는 판매되지 않도록 한국에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 유가나 곡물 가격 등이 급등하는 이른바 ‘공급충격(Supply Shock)’이 발생했다. 앞으로 이런 일이 더 자주 발생할까? 그리고 이런 충격에 가장 취약한 산업은 어디라고 생각하나.
“공급충격이 더 자주 발생할 것이다. 나는 우리가 공급충격이 더욱 빈번한 시기로 접어들었다고 생각한다. 1990부터 2015년까지는 공급충격이 이례적으로 없었다. 일부는 공급충격을 상회하는 주요 기술들의 발전 덕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인터넷, 석유가스 프래킹(물과 모래, 화학제품을 혼합, 분사해 암반에서 석유와 가스를 분리하는 기술), 반도체, 로봇공학 등의 기술 발전이 있었다. 또 일부 이유는 성장에는 기여했지만 구매력이 높지 않은 중국, 인도, 동유럽, 동남아시아 국가 노동력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미국의 압도적인 우위로 인해 지정학적 위협이 매우 낮았던 것도 공급 쇼크가 일어나지 않은 이유다. 그러나 이제 이 모든 요소는 멈췄거나 바뀌었다. 여기에 더해 기후변화와 에너지, 식량, 공중 보건 분야에서 더 많은 공급 충격이 일어나고 있다. (세계 경제는) 점점 더 공급충격에 취약해질 것이다. 가장 취약한 산업으로는 첨단 제조업, 식품 가공업, 화학, 주택 건설업, 보험업으로 예상한다.”
공급충격을 한국은행 등 각국 중앙은행들이 통제할 수 있나.
“분명 어려운 도전이고 나도 아직 답을 모르겠다. 만약 앞으로 첫 번째 공급 충격이 사라지기도 전에 다음 공급 충격이 오는 시대가 온다면 과거 중앙은행이 해왔던 방식으로 대응해서는 안 될 것이다. 반복되는 충격들은 통화정책의 신뢰도를 떨어뜨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한국은 출산율 저하로 노동력 성장 둔화를 겪고 있다. 한국이 이민자 등 외부로부터 노동력을 공급받아야 하나.
“한국과 같은 고소득 경제체제 국가가 이민을 확대함으로써 발전하는 방향은 바람직하다. 이는 경제성장률(GDP)을 높일 수 있는 가장 강하고 빠른 방법의 하나고 세계 경제에 많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재능있는, 때로는 기술까지 가진 많은 사람이 안전하고 자유로운 곳으로 직장을 옮기고 싶어 하지만 미국이 이들을 더욱 적게 받아들이고 있는 게 현재 상황이다. 한국은 이런 상황에서 특히 더 얻을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한국 대학들의 수준, 기술 분야에 대한 영어 지식, 수출 지향성, 그리고 고소득 한국인들이 더 이상 하지 않으려는 서비스직이 많다는 점 등 이민자 수요를 고려하면 한국은 이민자들을 잘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 어떤 입장을 유지해야만 경제적 실리를 얻을 수 있나.
“한국이 미국과 중국에 대한 경제 관계를 관리하는 것은 끊임없는 도전이 될 것이다. 한국이 고수해야 할 기본적인 사항은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한국 경제와 사회는 그 자체로 가치 있고, 중국이나 미국 그 누구도 이를 (특정 방향으로) 강제할 수 없다는 점을 양국에 설득해야 한다. 또 진정한 안보 갈등이 발발하면 한국은 미국과 자유 진영의 편에 설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해두는 것이 좋다.
만약 이런 안보 갈등이 없다면 한국은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무역과 투자뿐 아니라 노동, 환경, 개인정보 보호와 정보에 대한 높은 기준이 한국이 참여하는 모든 경제 협정의 전제가 된다는 점도 한국이 지켜내야 할 가치다. 마지막으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국가 간 통합도 한국이 추구해야 할 목표라고 본다.”
한국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CPTPP)에 가입해야 하나. 가입한다면 어떤 효과가 있나.
“한국이 CPTPP에 가입해야 한다고 강하게 믿는다. CPTPP는 다차원적으로 매우 높은 수준의 합의다. CPTPP가 미국이나 중국 없이 일본, 호주, 멕시코, 싱가포르 등 주요 경제권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한국이 회원국이 됨으로써 중기적으로 한국이 미국이나 중국의 독단적인 요구로부터 완충될 수 있을 것이다.”
포센 소장이 언급한 CPTPP는 일본·호주 등 11국이 회원인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으로 한국의 가입 여부가 현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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