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포 하나, 눈물 닦을 휴지조차 없다" 황망한 유족들 '분노'
사망자 154명, 일산동국대병원 등 40여 개 병원 분산 안치
"공부 잘하던 열여섯 외동아들"…사무치는 유족들 '오열'
이태원 핼러윈 압사 참사 후 꼬박 24시간 가까이 지난 시각. 30일 오후 10시쯤,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 지하 2층에 마련된 A씨의 빈소에선 유족들의 울음 소리와 한숨 소리가 연신 터져나왔다. 이날 밤 기준 이대목동병원엔 참사 희생자 3명의 빈소가 마련됐다.
빈소 안에 급하게 마련된 A씨의 영정 사진과 촛불 앞에 선 유족들은, A씨 사진을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숙이고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 유족들은 다른 유족의 등을 쓰다듬어주기도, 울음을 터뜨리기도 하며 빈소를 지켰다. 이대목동병원 지하 1층에 마련된 B씨의 빈소에서 땅바닥만 하릴없이 응시하던 한 유족의 눈 밑엔 멍 자국이 자리하고 있었다.
밤 되자 빈소 속속 마련…황망한 유족들 '오열과 탄식'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국대병원 장례식장 지하 2층에도 희생자 2명의 빈소가 차려졌다. 오후까지 유족들의 비통한 울음소리로, 수많은 인파로 가득찼던 장례식장에 밤이 찾아오자, 비교적 적막이 맴돌기 시작했다. 일부 유족들은 여전히 장례식장 앞에서 눈시울을 붉히고 오열하며 서로를 부축하고 있었다.
숨진 30살 아들을 찾아 일산동국대병원 장례식장에 온 유족 김모(59)씨는 취재진 앞에 서 울분을 토로했다. 김씨는 "생떼 같은 애들이 죽을 수가 있느냐, 너무 화가 난다"며 "우리 아들이 사고가 났다든가 이랬으면 차라리 괜찮겠다. 멀쩡한 길 걷다 죽었는데 (후속)조치가 미흡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장례식장 안에) 모포 하나 없이 춥고, 다른 유가족은 아까 유족 눈물 닦을 휴지 하나 없다고 얘기했다"고 유족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을 꼬집었다. 김씨는 "(경찰에게 먼저 연락 받은 게 아니라) 우리가 먼저 실종자센터에 전화해서 여기 온 것"이라며 "유가족에 대한 거는 뭐든지 빠르게 진행할 수 있게끔 하겠다고 했다"면서도 "(그런데) 지금 (검안서를) 몇 시간 동안 기다리고 있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김씨의 지인 권모(59)씨는 서울시 측의 후속조치 미흡을 꼬집었다. 권씨는 "서울시에서 공무원들 파견된 데는 아무도 없다"며 "지금 전담하겠다는 경찰분들도 잠깐 얼굴 비쳤다가 문의하면 모른다, 병원 측에 (검안서) 물어보라 그래서 원무과에 직접 다녀왔다"고 말했다.
권씨는 또 "(아들 잃은) 엄마가 나서서 하고 있긴 하지만, 서울시 후속조치가 정말 무책임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공부 잘하던 외동아들 잃었다"…유족들 길고 슬펐던 '하루'
유족들의 황망함은 사고 직후부터 온종일 지속됐다. 이날 오전 7시쯤, 밤새 한남동 주민센터에서 조카 C(16)군의 소식을 하염없이 기다리던 D씨는 "너무 많이 눈물 흘려서 이제 눈물이 살짝 마른 그런 상황"이라며 허탈함을 전했다.
"공부만 하던 애에요. 외동아들이요. 기숙사 생활 하다가 (주말 맞아) 잠깐 나와서 이번(핼러윈)에만 딱 한번 놀고서 공부 더 하겠다고 그랬는데…(부모님에겐)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였어요."
D씨는 "오늘(30일) 오후 조카 시신을 서울삼육병원에서 확인했다"며 "미성년자니까 지문이 없어서 유품 먼저 확인한 뒤 DNA를 채취하고 대조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공부만 하던 조카가 중학교 친구와 함께 둘이서 이태원 핼러윈 파티 현장을 찾았던 것"이라며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라 부모는 완전 쓰러진 상태"라고 전했다.
오전 7시 반쯤, 주민센터에서 외동딸인 E(37)씨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아버지(67)와 어머니(61)의 속도 타들어갔다.
E씨의 어머니는 "(우리 딸이) 취업을 빨리 한 편이라 무역회사에 입사해 최근에 대리가 됐다"며 "딸이 연락을 안 받길래 남편이 계속 전화를 했는데 새벽 3시에 경찰이 받았다"고 전했다. E씨의 아버지는 "날이 좀 쌀쌀하다고 옷도 따뜻하게 입고 나가라고 했는데"라며 허망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오후 들어 결국 E씨의 사망 소식을 확인한 어머니는 실신해 병원으로 옮겨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친구를 잃은 외국인들 또한 슬픔을 삼키지 못했다. 호주에서 온 네이슨씨는 "친구 1명이 사망했고, 2명이 부상을 입었다"며 "현장에 있었고 경찰관에게 (희생자 중) 친구가 있다고 말했는데, 신원 확인이 안 된다며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태원에 거주하는 스리랑카인 레하스씨도 "친구 무하마드 지나트(27)가 실종됐다"며 "어젯밤(29일) 9시에 같이 저녁 먹고 나는 일하러 가고, 친구는 새벽 1시부터 연락 안 받다가 지하철에서 핸드폰이 발견됐다"고 말했다. 레하스씨는 취재진에게 "혹시 외국인 몇 명 죽었는지 알 수 있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사망자 154명, 일산동국대병원 등 40여 개 병원 분산 안치
일산동국대병원의 경우 당초 병원으로 온 사망자 20명 중 14명을 안치했고, 이날 오후 10시 기준으로 9명이 타 병원으로 옮겨지고 5명이 남아있다. 유족들의 비통한 오열은 하루 종일 이어졌다. 앞서 오후 1시쯤, 시신을 확인한 뒤 오열하며 나가던 F씨는 장례식장 입구를 채 나서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연신 "어떡해, 어떡해"를 반복하며 오열하던 F씨는 10여 분간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속속 도착한 유족들은 서로를 부축하고, 휴지로 터져나오는 눈물을 닦으며 가족의 시신을 확인하고 나왔다. 사망한 25살 여성의 큰이모라는 G씨는 "오늘(30일) 아침에 조카 소식 듣고 달려나왔다"며 "조카의 친구가 힘들어한다"고 말하며 친구를 부축해 장례식장을 떠났다.
실종자 신고접수 상황실이 설치된 한남동 주민센터도 사고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유족들의 울음소리로 메워지기 시작했다. 숨죽이며 가족의 소식을 기다리던 새벽과 달리, 신원과 사망 확인이 됐다는 전화를 받은 유족들은 전화로 주변에 상황을 알리며 울음을 터뜨렸다.
센터 앞엔 애도를 표하는 조기가 게양돼 바람에 속절없이 나부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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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민소운 기자 solucky@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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