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만점 호수길] 울긋불긋 단풍 병풍에 고혹한 왕버들…호수 위로 ‘색다른 가을’ 왔다

지유리 2022. 10. 31.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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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송 주왕산 ‘주산지’ 둘레길
주왕산국립공원에 속한 저수지
300년 넘는 고장의 젖줄·명승지
노약자 걷기 편한 무장애 탐방로
수면에 산·하늘·구름 모두 담겨
물속에 뿌리박은 거목의 생명력
신비로운 물안개 명소로도 정평
 

물속에 뿌리내려 자란 왕버들이 신비로운 정취를 자아내는 주산지. 가을 산과 호수의 매력을 느끼기에 더없이 좋은 여행지다.


가을은 색(色)의 계절이 아닐까. 초록, 한가지 빛깔이던 전국 각지 산맥이 노랑·주황·빨강으로 물든다. 화려한 색채의 틈을 비집고 은빛 억새가 여백을 만들기도 한다. 다채로운 비경을 감상하러 길을 나섰다. 단풍이 든 산책로를 갖춘 물가가 이번 계절 여행의 목적지다.

가을이 완연하다. 하루가 다르게 산과 하늘의 색이 깊어진다. 주변 경치를 반영하는 호수도 시간에 따라 빛을 바꾼다. 그 변화무쌍을 즐기러 경북 청송으로 갔다.

주왕산면에 있는 ‘주산지’는 주왕산국립공원에 속하는 저수지다. 무려 1771년 조선시대 경종 때 축조했다. 지금껏 3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농업용수를 댄 고장의 젖줄이자 유서 깊은 명승지다. 역사보다 유명한 것은 아름다운 풍광. 물속에 뿌리내려 자란 수백년 된 왕버들 20여그루가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산줄기에 둘러싸여 단풍을 감상하기에도 더할 나위 없다. 2009년엔 국토해양부가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100선’ 가운데 하나로 선정됐을 정도다.

청송 나들목에서 차로 30여분 달리면 주산지 입구에 마련된 주차장에 당도한다. 차를 대고 주산지까지는 걸어서 20분 거리다. 주전부리를 파는 노점상이 줄지어 선 골목 초입을 지나면 곧바로 단풍놀이가 시작된다. 단출하지만 가을이 왔음을 느끼기엔 충분하다. 가지 끝에 달린 노란빛·붉은빛 이파리가 포근하게 느껴진다. 산책로는 장애인과 노약자도 걷기 편한 무장애 탐방로다. 완만하게 경사가 있지만 숨이 찰 정도는 아니고 턱이나 계단이 없어 누구나 쉬이 오른다. 나무가 없는 자리는 기암절벽이 채운다. 청송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지질공원이다. 명성답게 곳곳의 암석이 꽤 괜찮은 볼거리가 돼준다.

가을의 다채로움을 드러낸 주산지 탐방로는 사색하며 걷기 좋은 길이다.


이곳저곳에 눈길을 주며 걷다보니 금세 주산지에 닿았다. 탁 트인 모습이 장관이다. 불뚝 솟은 봉우리가 겹쳐지며 골짜기를 만들고 그 앞으로 주산지가 펼쳐진다. 수면에 산과 하늘·구름이 모두 담겼다. 사진을 찍지 않곤 못 배길 만한 비경이다. 카메라를 들이대는 곳마다 ‘인생샷’이다.

기념 촬영도 마쳤겠다 본격적으로 걸을 채비를 한다. 주산지는 길이 200m, 너비 100m 규모의 비교적 아담한 저수지다. 탐방로가 저수지의 절반만 따라서 조성돼 있다. 천천히 걸어도 15분이면 끝에 닿는다. 짧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중간에 전망대와 쉼터가 있으니 오며가며 시간을 보내면 온몸으로 계절을 느낄 수 있다.

탐방로에 서면 가을의 절정을 향해 색을 바꾸고 있는 참나무·단풍나무·낙엽송이 시선을 잡아끈다. 아직까지 버티어 살아남은 녹음은 빛이 바랬다. 이맘때 산은 수채화 같다. 물감에 물을 섞은 듯 옅어지고 흐려진다. 여린 색이 한해가 저물어가는 것을 알려준다.

주차장에서 고작 30여분 걸어왔을 뿐인데 깊은 산속처럼 사위가 고요하다. 자박자박 마른 흙길을 걷는 소리와 샤악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만 귓가를 스친다. 단풍철 등산객이 몰리는 주왕산과 달리 주산지는 한가로운 편이다. 조용히 사색하면 걷기에 퍽 잘 어울린다.

시작점에서 머지않은 첫번째 전망대는 주산지 산책의 백미다. 물가를 향해 돌출된 전망대에 서면 100년 넘은 왕버들이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까이에 있다. 물속에 뿌리내리고 오랜 세월을 버텨온 자태가 고혹적이다. 본래 물가에서 자라는 버드나무는 습한 기후를 좋아하지만 물속에서 숨을 쉬진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곳 왕버들은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고자 호흡뿌리를 발달시켰고 그 결과 지금처럼 물에 잠겨 수십·수백년을 살았다. 안타까운 점은 몇그루가 여름철 강풍에 꺾여 부러졌다는 것. 살아남은 일부도 수령이 오래돼 기세가 많이 약해졌다. 고사가 진행 중인 나무도 있다고 하니 볼 수 있을 때 실컷 즐겨야 한다.

다시 탐방로로 돌아와 10여분 걷는다. 길 끝에는 두번째 전망대가 있다. 이미 눈에 담은 풍경이지만 새로운 자리에 서면 다시 한번 절로 감탄이 터진다. 병풍처럼 둘린 산과 물·왕버들이 한데 어우러져 몽환적인 분위기를 내뿜는다. 푸릇함 대신 울긋불긋한 색을 입은 모습이 마치 옛 필름영화의 한 장면을 틀어놓은 것 같다.

전망대로 내려가는 계단에 잠시 앉는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주산지 전경을 마음속에 아로새긴다.

주산지는 물안개 명소로도 정평이 나 있다. 해 뜰 무렵 운무가 끼면 신비로운 매력이 배가된다. 잎이 떨어진 겨울에는 물이 얼면서 또 다른 풍취를 돋운다. 계절마다 사진작가들이 찾아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구경을 마친 뒤엔 인근에 있는 다른 곳을 둘러보는 것도 좋다. 차로 10여분 떨어진 절골계곡은 죽순 모양의 기암괴석과 울창한 숲이 볼만하다. 한여름에도 얼음이 언다고 알려진 얼음골은 겨울이면 인공폭포에서 빙벽 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내친김에 주왕산 등반에 도전해보는 건 어떨까. 11월2일부터 6일까지 청송사과축제가 열린다. 기간에 맞춰 방문해 가을의 맛과 멋을 두루 즐기는 것도 계절을 만끽하는 방법이다.


청송=지유리 기자, 사진=김원철 프리랜서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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