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농사 두렵다”…기름값 상승에 시설농가 ‘걱정 태산’
면세등유값 1년전보다 62%↑
시설하우스 비용 감당 힘들어
보온커튼·수막시설 등 ‘안간힘’
난방 포기 출하시기 늦추기도
보조금 지원 등 대책마련 시급
“각종 농자재값에다 인건비까지 크게 상승해 농사지어도 남는 게 없는 실정인데 면세유 가격마저 급등해 올겨울 농사가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겨울이 다가오면서 시설하우스 농가들의 근심이 커지고 있다. 기름을 때서 하우스 난방을 해야 하는데 국제유가 상승으로 인해 면세유 가격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기 때문이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하우스 난방에 사용하는 면세등유 가격이 25일 기준 1ℓ당 1418원을 기록했다. 고점을 찍었던 7월 1486원에 비해 다소 낮아졌지만 1년 전(876원)에 견줘 61.8%나 올랐을 정도로 여전히 비싸다. 635원이었던 2년 전과 비교하면 2배 이상 급등했다.
이에 농가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전북 완주에서 다육식물 시설재배를 하는 이용찬씨(68)는 “처음 시설재배를 시작했을 때는 면세유 가격이 이렇게 높이 올라갈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며 “다육식물은 겨울철 시설난방이 필수라 올겨울을 어떻게 날지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충남 논산시 연무읍에서 딸기농사를 짓는 조창수씨(45)는 “지난겨울 비닐하우스 7동을 난방하는 데 700만원이 들었는데 올겨울에는 1100만원 이상 들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조씨는 비닐하우스를 삼중으로 한 데다 수막재배시설도 가동하고 다겹보온커튼까지 설치해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그는 “기름을 때는 것은 난방을 위한 보조적인 수단이어서 그나마 부담이 덜하지만 수막이나 다겹보온커튼 없이 기름 난방에만 의존하는 농가는 타격이 훨씬 크다”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로 부랴부랴 난방시설을 추가로 설치하는 농가도 늘고 있다. 연무읍의 한 딸기농가는 최근 비닐하우스 15동에 1억원가량을 들여 다겹보온커튼을 설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수막시설 설치를 위해 관정을 새로 뚫는 농가도 적지 않다. 하지만 지하수가 전반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라 수막시설을 충분히 가동하기는 쉽지 않은 실정이다.
기름 난방을 줄이려는 농가도 나오고 있다. 포도농가 송석환씨(58·대전 동구 구도동)는 “지난해 전체 비닐하우스 4290㎡(1300평) 가운데 990㎡(300평)에서 기름 난방기를 가동했는데 올해는 면세유 가격 추이를 보고 난방 면적을 더 늘릴지 줄일지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난방을 하지 않으면 기름값은 덜 들겠지만 수확시기가 늦어지고 가격도 낮아지기 때문에 고민이 크다”고 밝혔다. 수확시기가 늦어질수록 홍수출하로 가격이 더 많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우려된다는 얘기다. 송씨에 따르면 올해 포도가 처음으로 나온 6월에는 1㎏에 2만5000원 이상 받았지만 9월에는 8000∼9000원으로 떨어졌다.
제주 하우스감귤 산지에서도 면세유 가격 급등의 파장이 우려되고 있다. 고정훈 표선농협 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 소장은 “유가 고공행진이 계속된다면 경영 압박을 심하게 받는 농가들이 가온을 미루는 사례가 속출할 수 있다”며 “자칫하면 내년 후기 하우스감귤 또는 극조생감귤 출하기(8∼9월)에 홍수출하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더 나아가 면세유 문제로 인해 겨울철 농사 중단 사태까지 우려되고 있다. 경기 용인의 토마토농가 정진근씨(70)는 “한 작기에 약 4000만원의 난방비가 들어가는데 최근 기름값은 급등한 반면 토마토 가격은 하락해 도저히 수지타산을 맞출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겨울 농사를 중단하고 내년 봄부터 다시 재배할 계획인데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아예 난방이 필요 없는 작물로 전환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농가들의 걱정은 앞으로 더 커질 전망이다. 향후 면세유 가격이 더 오를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최근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오펙플러스(OPEC+)가 원유 감산에 합의하면서 국제유가는 내년 상반기까지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에 따라 면세유 가격 상승분을 보전해주는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는 최근 ‘2023년도 농식품 핵심 정책사업 예산 증액 요구사항’을 발표하고 난방용 면세유 보조금 지원 예산을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최범진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정책조정실장은 “면세유 가격 급등으로 인한 농업 생산비 증가는 농업 경영 불안을 야기할 뿐만 아니라 생산활동 위축과 농산물 가격 상승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며 “유가연동보조금제 도입 등을 통해 면세유 가격 상승분을 보전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올 11월부터 내년 3월까지 사용하는 난방용 면세유에 대해 가격 상승분의 일부를 일정 한도로 보전해주는 방안을 시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논산·대전=서륜 기자, 완주=박철현, 서귀포=심재웅, 용인=최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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