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사 골든 타임은 4분, 10분 지나면 소생 어려워…장기 파열·복강 내 출혈로 숨졌을듯
서울 용산구 이태원 도심 한복판에서 발생한 압사 사고로 150여명이 목숨을 잃는 대형 참사를 지켜본 의료계는 많은 인파가 몰린 좁은 장소에서 발생한 사고로 인명 피해가 커졌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뉴스1에 따르면 의사들은 희생자 상당수가 외부 압력에 의해 폐 기능을 상실하고 심장이 멈추는 심정지 상태에 빠졌다가 골든타임 내에 응급처치를 받지 못해 사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심정지가 아니더라도 높은 압력에 장기가 파열된 부상자들이 복강내출혈로 인해 숨진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를 지낸 내과 전문의는 30일 "이태원 상황을 지켜본 결과 인파가 몰리면서 사람이 피라미드 돌을 쌓듯이 사고를 겪었다"며 "맨 아래에 있는 사람은 최소 수톤에 이르는 하중을 그대로 전달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하중을 느끼면 즉시 사망에 이를 수 있다"며 "사람은 큰 하중을 받으면 폐 기능이 급격히 떨어지고 혈액순환이 되지 않아 심장이 못 뛴다. 사망 사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남궁인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도 이날 페이스북에서 "사람들이 엉키고 넘어져 자신의 몸을 통제할 수 없게 되면 도미노처럼 하중이 누적돼 쌓여 인체를 누르면 흉부를 압박한다"며 "흉부가 압도적인 압력으로 눌리면 숨을 쉬어도 흉강이 팽창하지 못한다. 압박에 의한 질식"이라고 말했다.
심정지 상태에 빠진 환자들을 신속하게 치료하는 골든타임을 놓칠 수밖에 없었던 현장 환경도 인명 피해 규모를 키웠다.
심정지 환자가 후유증 없이 회복할 수 있는 치료 골든타임은 발생 후 4분으로 알려져 있다. 심정지가 5~10분 이어지면 조직 속 산소가 급격히 떨어지며 뇌와 장기에 손상이 발생한다. 심정지 발생 후 10분 이상 지나면 심각한 조직 손상으로 인해 현재 의술로는 효과적인 소생법이 없다.
내과 전문의는 "관련 동영상을 보면 구조대가 와도 압사 사고 현장에서 사상자를 쉽게 빼내지 못했다. 그만큼 무게가 사람에게 쏠린 것"이라며 "사고 후 4~5분이 지나면 회복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의사는 "젋은 20대는 심정지가 와도 심폐소생술을 하면 다른 연령대에 비해 조금은 회복 가능성이 높다. 드물지만 심정지 후 5분이 지나도 회복하는 경우도 있다"면서도 "하지만 이마저도 골든타임을 놓치면서 사망으로 이어진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압사 사고를 겪은 사람들은 장시간 저산소증을 겪었을 것이고, 심박이 정상적으로 균형을 이루지 못해 뇌에 산소를 공급하지 못해 사망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하철만 봐도 출퇴근 시간에는 심각한 과밀화로 가끔은 숨쉬기 어려운 상황을 겪는다. 이태원은 외부지만, 그 과밀 정도가 지하철의 2배 이상이었을 것"이라며 "압사 사고는 국내에서 흔히 보기 어려운 사고 유형"이라고 지적했다.
노영선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도 이날 YTN 뉴스특보에 출연해 "사상자가 쌓이고 쌓이면서 구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며 "심정지 골든타임은 4분 이내"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장기 파열에 의한 사망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이날 새벽 '현직 의사가 보는 사망자 더 무서운 점'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그는 "영상을 보면 깔린 사람들이 호흡을 못해서 사망하는 것 외에도 구조돼 숨은 쉬지만 사망하기 직전인 사람들이 많다"며 "배에 피가 찬 게 보이는데, 혈복강(복강내출혈)이고 빨리 수술하지 않으면 사망한다"고 우려했다.
이어 "지금 사망자는 맨 밑에 깔려 숨을 못쉬는 사람들인데 곧이어 나오는 사망자는 중간층에서 압박당해 장기가 파열해 피가 터지는 경우"라며 "이런 케이스가 교통사고로 한두명 생기면 응급수술을 하지만 지금처럼 대규모로 생기면 서울권 응급의료인력으로 감당하지 못해 결국 수술을 못받고 죽는 사람이 다수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현장 구조에 참여했던 한 의사는 YTN 인터뷰에서 "CPR(심폐소생술)을 하면서 여러 환자들의 복부가 팽창하는게 보였고 사망한 환자들에서도 복부 팽창을 확인했다"며 다만 "가스가 찬 것인지 출혈이 생긴 것인지 확인하진 못해 정확히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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