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주세요" 비명 가득한 이태원 골목…눈앞에서 세명 숨졌다

김도엽 기자, 하수민 기자 2022. 10. 31. 05: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르포] 이태원 참사 현장 12시간의 기록
29일 오후 16시쯤. 가족 단위로 이태원을 방문한 시민들이 축제를 즐기고 있다./사진=김도엽 기자

"이번 역은 이태원, 이태원 역입니다."

안내방송이 나오자 조용하던 지하철에서 군데군데 신이 난 목소리로 속삭이는 대화가 들렸다. "2번 출구 맞아?!"
29일 오후 4시쯤 이태원역에 도착한 지하철 6호선 열차가 들썩였다. 열차 한 량에 앉아있던 백여명 중 대다수의 목적지가 이태원이었다. 앉아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일어났고, 한 열차에서 족히 400~500명은 돼 보이는 인파가 쏟아져나왔다. 3년만에 재개된 핼러윈 축제 현장을 취재하러 온 기자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에스컬레이터 줄은 한 바퀴를 돌아 길게 서 있어서 계단을 이용하는 게 더 빨랐다. 주요 상권과 가까운 1, 2번 출구 계단은 이미 축제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태원 거리는 재즈 음악이 흘러나오며 생기가 넘쳤다. 사람이 몰려서 조금 북적였지만 이동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지경은 아니었다. 사람들의 '흥분된 목소리'가 '살려달라는 비명'이 되기까지 9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29일 밤, 이태원역 삼거리 일대에서 수많은 인파로 도로가 인도로 사용되고 있다. /사진=김도엽 기자
오후 6시부터 '내 발로 걷기 힘든' 이태원 거리, 등 뒤에선 "밀고 갈까?"

오후 6시쯤 기자가 시민을 만나며 인터뷰를 진행한 사이에 이태원의 혼잡도는 눈에 띄게 올라갔다. 참사가 난 이태원동 119-7 일대를 포함하는 이태원 거리를 150m 이동하는데 7~8분가량 걸렸다. 특히 사고가 난 골목 인근에서는 '내 발로 걷기'보다는 '남의 등에 떠밀려' 이동해야 했다. 기자의 뒤에서도 "밀고 갈까?" 하는 이야기가 들렸다.

이태원 거리는 메인도로인 이태원로를 제외하면 폭이 4~5m 수준으로 성인 네 명 정도가 서로 방향을 교차해서 지나가면 가득 차는 정도다. 좁은 골목을 마주보며 식당과 클럽 등이 빼곡히 자리를 잡고 있다. 이날은 이태원 대목을 노린 클럽 등에서 가게 입구 가까이에 철제 펜스를 쳐서 폭이 족히 1m는 더 좁아졌다. '우측 통행'이라는 개념은 차츰 없어졌다.

해가 지면서부터는 이태원역 1번, 2번 출구로 이동이 불가능해졌다. 역 입구 인근부터 수백명의 인파가 이태원 거리로 향했다. 이태원역 삼거리를 기준으로 전후좌우 모두 수백명의 사람들이 사고가 난 이태원 거리를 목적지로 가고 있었다.

오후에 들려오던 재즈 음악 대신 강렬한 힙합 음악이 귀를 때리며 정신을 빼앗았다. 좁은 골목길에 좌판을 펴두고 얼굴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 핼러윈 소품을 파는 상인들, 그리고 그 틈새에서 전도하는 종교인과 지나가는 시민이 한 데 뒤엉켰다. 100m를 걷는 데 족히 10분은 소요됐다. 사람들은 이런 상황은 아랑곳 하지 않고 핼러윈을 즐겼다. 귀를 때리는 음악에 맞춰 환호성을 지르고 움직이기 힘든 인파속에서도 몸을 흔들어 댔다.

저녁 8시쯤 이태원 거리는 더 이상 걸을 수 없는 수준이 됐다. '자칫 잘못하면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사고가 난 현장은 좁은 골목의 내리막길이었고 수천명이 운집해있었다. 그리고 위태롭게 스마트폰을 잡고 한 손을 높이 올린 시민들이 많았다. 의도치 않더라도 '툭'하고 밀린다면 그대로 도미노처럼 넘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 순간까지 이태원 거리에는 질서를 통제하는 경찰이나 구청 관계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경찰은 불법 촬영, 마약 등 범죄를 제어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29일 밤, 사고현장에서 피해자들이 구조되어 나가고 있다. /사진=김도엽 기자
밤 10시쯤 터져 나온 비명, 눈 앞에서 숨진 이들
밤이 되면서 인도와 도로의 구분이 희미해졌다. 사람들은 쏟아져 나왔고 왕복 4차선 도로의 양 끝 차선이 사실상 인도가 돼버렸다. 너무나 많은 인파에 경찰의 교통 통제도 먹혀들지 않았다. 일부 시민은 반대편으로 건너가길 기다리면서 지하철 환풍구 위에 올라서는 위험천만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경찰과 소방, 상인회가 쳐둔 환풍구 주변 안전띠와 펜스는 무의미했다.

밤 10시쯤. 좁은 골목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비명을 듣고 대규모 압사 사고가 발생한 현장에 도착한 때에는 소방과 구급대원, 경찰이 구조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100~200명은 돼 보이는 이들이 한 데 수십 겹으로 깔려 "살려주세요", "너무 아파요"라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이미 가장 아래쪽에 깔린 일부 시민은 의식이 없어 보였다.

곧이어 경찰이 "비키세요!" "나가세요!"라며 현장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이미 많은 시민이 사건 현장을 지켜보면서 일대 질서가 혼란이 빚어진 것이다. 경찰과 소방은 주변 시민들을 강력하게 제재하면서 현장의 진입로를 확보했다. 소방이 현장에 의료용 산소를 뿌리며 피해자들의 호흡을 도왔다. 경찰과 소방 인력이 총동원되어 구조에 나섰지만, 워낙 좁은 공간에 많은 피해자가 밀집되어 몸이 엉켜있어서 구조에 난항을 겪었다.

구조가 시작된 지 30분쯤 지나자 계속해서 들것이 오르내렸고 피해자들이 실려 나갔다. 사건 현장은 처참했다. 유혈이 낭자했고, 비명은 그칠 줄 몰랐다. 소방과 경찰, 그리고 현장을 지켜보던 시민이 힘을 합쳐 구조에 나섰다. 소방이 구조된 피해자를 수미터 이동시켜 눕힌 뒤 심폐소생술(CPR)을 하고 산소호흡기를 채우는 조치를 계속했다. 그러나 한꺼번에 너무 많은 피해자가 발생한 탓에 소방 당국은 우선 조금이라도 생명반응이 있는 사람들을 먼저 병원으로 이송했다. 더 이상 손쓰기 어려운 사람들은 모포를 덮어두고 이송 후순위로 밀렸다. 기자가 보는 눈앞에서 세 명이 유명을 달리했다.

이후 현장은 철저하게 통제가 이뤄졌고 소방과 경찰은 구조 및 수색작업에 온 역량을 쏟아부었다. 사고 소식은 SNS(사회관계망서비스)와 언론을 통해서도 급속히 퍼져나갔다. '일부 사람이 마약을 한 상태로 거리를 걷다가 엉켜 사고가 발생했다'는 루머가 인터넷을 중심으로 떠돌았다. 새벽 4시까지 사망자는 146명, 부상자는 150명으로 확인됐으며, 이후 사상자는 더 늘었다.

[관련기사]☞ '20분간 울며 CPR' 배우 윤홍빈 "이태원 참사 전조증상 있었다"6층 창문으로 들이닥친 외국인…30대 여성, 새벽 3시 '봉변'"송중기·김태리 데이트" 사진의 반전…알고 보니 현빈·손예진"야 밀어, 우리가 더 힘세"…유튜버의 '이태원 참사' 증언2021년 이태원 사진 보니…"예견된 참사였다"
김도엽 기자 usone@mt.co.kr, 하수민 기자 breathe_in@mt.co.kr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